[최원영목사] 보령을 가다

  • 입력 2024.06.11 14:03
  • 수정 2024.06.13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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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산자연휴양림
미옥서원
보령밀알교회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미옥서점앞에서

월요일 아침 본푸른교회(구리시 토평동)에서 보령밀알교회(이혁의목사)까지 188km. 그리 멀지 않는 거리이다. 항상 떠남은 설레임이다. 아내와 함께 동행하는 시간은 더욱 그러하다. 결혼 후 아내 주중 사역으로 인해 거의 혼자 다닌 적이 많다. 월요중보기도모임을 하루 쉬기로 하고 남편과 함께했다. 30년 이상을 함께 살면서도 단 하루의 시간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다. 거룩한 사역에 매여 있는 몸이다. 스스로 종 됨을 자천했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 없다.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릴 뿐이다. 삶에 지친 영혼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함께해 주는 것이 더 급하기에 그럴 것이다.

오늘의 호스트 이혁의 목사는 해변가 식당으로 인도했다. 식당의 대표 메뉴는 가자미 회 무침과 우럭 매운탕이다. 회 무침은 새콤하면서 맛이 깔끔하다. 무침 자체가 양념을 아끼지 않아 먹음직스럽다. 보기에 좋은 것이 맛도 있다는 말이 낭설은 아니었다. 음식은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 좋은 사람들, 음식의 비주얼, 풍미, 이 모든 것이 더해져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미옥서점
미옥서점

이 목사는 보령의 보석이며 유산이 될 만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미옥서원으로 안내했다. 오서산 중턱에 자리 잡은 서원이다. 서원은 시내에 있어야 한다는 통념적인 생각을 완전 부숴 뜨렸다. 건물의 규모와 디자인, 서원 대표의 선한 품격, 천연자연이 주는 분위기, 이 모든 환경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훔쳤다.

미옥서원 이재종 대표와 숲속 간담회를 가졌다. 이 대표는 영문학 전공 후 강남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하였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기 위해 미옥 서원을 개원했다. 서원의 명칭이 미옥이다. 어머니의 성함이라고 한다. 서원 명칭에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겨진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서원은 한옥으로 지은 게스트 하우스 2동과 독서 및 토론을 할 수 있는 자연적인 내부 공간과 테이블,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종류의 책이 피아노의 선율처럼 동선을 따라 펼쳐져 있다. 모든 공간에서 보고 싶은 책을 끄집어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방문자들은 누구나 책들을 현장에서 구입 가능하다. 나도 3권의 책을 구입했다. 꼭 필요해서 구입한 것 보다 산위 서점이 주는 마력에 끌려 기념으로 구입했다. 특이한 경험을 잊지 않고 남기기 위해서다. 커피 향기처럼 마음에 진한 여운이 남는다. 또한 책을 좋아하는 나그네들이 하루 밤 묵어갈 수 있는 넉넉한 한옥이 준비되어 있다. 주인장의 따스한 배려이다.

이재종대표(가운데)_미옥서원
이재종대표(가운데)_미옥서원

미옥서원은 욕심이 빚어 만든 병든 스트레스 덩어리들이 산새의 평화로움 앞에 한 없이 녹아내리고, 한 잔의 차의 여유로움에 삶의 향기가 운무처럼 오르는 곳, 세속을 씻어내는 잔잔한 영혼의 자유로운 교제, 세속화로 물든 인간 본성의 타락을 잊을 수 있는 그런 장소로 쓰임받기에 충분한 공간적 미학을 제공한다.

이어 성주산자연휴양림에 갔다. 피톤치드(phytoncide)를 경험하기 위함이다. 피톤치드는 식물을 의미하는 피톤(phyton)과 살균력을 의미하는 치드(cide)가 합성된 말이다. 숲속의 식물이 만들어 내는 살균성을 가진 모든 물질을 통틀어 피톤치드라 부른다. 식물이 자신의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박테리아, 곰팡이,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산하는 살생 효능을 가진 휘발성 유기 화합물이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피톤치드는 식물성 살생물질이다. 피톤치드하면 편백나무이다. 편백나무 숲길을 걸었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있다. 400km 운전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나는데 몸이 편안하고 개운했다. 이것이 편백나무 숲길을 걸은 결과인 듯하다.

이혁의목사_보령밀알교회
이혁의목사_보령밀알교회

아쉬움을 뒤로하고 성주산 자연휴양림을 내려와서 오늘 일정의 마무리를 위해 보령밀알교회로 이동했다. 나그네들의 정거장과 같은 소박한 교회 카페가 우리 일정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수박, 갈증에는 역시 달콤함과 수분이 가득한 수박을 따라올 과일은 없다. 이어 직접 로스팅한 커피 향이 카페를 가득 채웠다. 커피는 전 국민이 즐기는 차로 자리매김했다. 물만 마시던 고루했던 나도 커피 도구를 셋팅해 놓고 즐기는 문화에 편승하고 있다. 커피 맛을 느끼고 향을 즐기는 정도로 발전했으니 말이다. 이혁의 목사는 정이 많다. 직접 내린 더치커피 한 병, 더치커피는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모아 한 병이 된다. 더치커피는 정성과 시간이 들어간다. , 등 선물을 일행에게 가득 안겼다.

고속도로를 달려오다가 불현 듯 그냥 스쳐 지나가면 안 될 듯싶어, 마지막 휴게소에서 노흥호목사 부부와 깊은 밤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인생의 묘미 중에 최고의 재미는 수다라고 한다.

미옥서점에서
미옥서점에서

이렇게 월요일 또 하루를 보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다. 선현들은 인생을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말라는 의미일 듯하다. 집착하면 병이 든다. 삶이란 테두리에서 일상의 규칙적인 업무를 잠시 내려놓고 자연과 친해지는 것도 삶을 살찌게 하는 길일 것이다. 때로는 마음을 무장해제하고 웃고 떠드는 자연스러운 시간도 필요하다. 이런 사소함이 양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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