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백낙준을 친자식처럼 유학 공부시킨 맥큔 선교사

  • 입력 2024.11.2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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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 (392) - 구약성경과 선교 이야기 (20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알켄 암밈 예호두카 레올람 와에드)”(시45:17).

역사는 기억하고 다시 기술하면서 오늘에 그 역사의 정신이 살아난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민족은 역사적 민족과 기억하는 나라들이어서 아직도 남아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성서는 이스라엘의 그 역사를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 민족, 유대 민족은 성서의 종교를 만들어 결국 나라를 회복하였다. 그들은 2000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고토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시편은 바로 그 역사의 정점으로서 신앙고백을 계속 반복하면서 그 신앙의 중심에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役事)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 사랑의 노래,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 맞춘 것)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 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아니 마아세 레멜렉 레쇼니 에트 소페르 마히르)”(시45:1). 이 시편 45편은 왕정 시편으로써 다윗의 왕권과 메시아 시편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하고 예언하는 시이다. 특히 이 왕정 시편 45편은 결혼의 주제로 왕의 즉위 시편을 보여준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와아하로트 케찌오트 콜 비게도테이카 민 헤이케레 센 민니 심메후카)”(시45:8).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우바트 쪼르 베민하 파네이크 예할루 아쉬레 암)”(시45:12).

시편이 악기를 보여주는 표제어의 시편 중에 ‘백합화 곡조’(소산님에 맞춘 것)는 시편 45편과 시편 69편이며 이에 해당한다. 이 왕정 시편은 시편 2; 18; 20; 21; 45; 72; 89; 101; 110; 132편 등이다. 이는 시편의 구성에 지혜 교훈시(알파벳시, 토라시편)와 왕정 시편이 두 날개 구조로 시편의 전체 구조에서 그 중심축을 이룬다. 이 시편 45편은 왕의 결혼 시편으로서 2-9절은 왕 신랑을 묘사하고 있고, 신부는 10-15절에 묘사되고 있다. 이는 분명 이스라엘 왕의 결혼식을 묘사하고 있다. 이 혼인식을 통해 전통적인 이스라엘 왕의 메시아 도래와 혼인을 위한 신부의 가까이 옴을 이야기 한다. 이는 현재의 신랑, 신부의 현존을 말하고 있어서 그 시편의 알레고리적 상징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신랑 왕과 신부 왕비의 혼인식이 아가서에서 나타난 것과 유사하게 볼 수 있으며 정기적으로 이스라엘 왕의 혼인식을 묘사하고 있다. 또 두로의 딸이 왕의 신부가 될 수 있는 개연성을 말한다. 또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경우가 이와 같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웨이트아오 하멤렉 야프예크 키 후 아도나이크 웨히시타하위 로)”(시45:10-11). 이러한 왕의 혼인식 장면은 아가서에서 묘사된 혼인식과 아주 유사하다.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투발레나 비세마호트 와길 테보에나 베헤칼 멜렉)”(시45:14-15).

왕정 시편의 왕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스칸디나비아 신화 의식학파)하는 것과 왕의 의식적 겸비(굴욕)이론 해석(웁살라 학파, 가을 축제의식)이 있다. 시편 45편에서 왕의 보좌가 영원하다는 표현은 왕이 신이라는 것과 멀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키세아카 엘로힘 올람 와에드 쉐베트 미쇼르 쉐베트 말쿠테카)”(시45:6).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알켄 메샤하카 엘로힘 에로헤이카 쉐멘 사손 메하베레이카)”(시45:7). 이러한 시편의 왕정 시편은 대하 28:5절에서 발견되는 솔로몬이 ‘주의 왕국의 보좌에 앉아있다’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영원한 하나님이 그 왕의 보좌가 종말론적 왕으로서 위치하며 이는 강력한 신(엘 깁보르)을 언급하고 있다. 이렇듯 시편 45편은 이사야 9장에 나오는 전사로서 왕의 개념으로 나오는데 이는 왕의 초인간적 권능을 가진 전사로서 나온다.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히쩨이카 쉐누님 암밈 타흐테이카 잎페루 베레브 오에베 함멜렉)”(시45: 5).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하고르 하레베카 알 예레크 깁보르 호드카 와하다레카)”(시45: 3). 쿰란 공동체에서도 시편 45편과 시37편, 시편 127편을 중요하게 해석하고 설명하며 그들은 종말론적인 메시아를 고대하는 시로 즐겨 불리고 암송하였던 것 같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하고르 하레베카 알 야레크 깁보르 호데카 와하다케카)”(시45:2). 이 왕정 시편에서 메시아 시편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말씀을 찾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왕직을 살필 수 있다.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아즈키라 쉼메카 베콜 도르 와도르)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시45:17).

이러한 왕의 귀환과 왕의 도래, 영원한 왕의 현현을 보면서 복음이 최전선에서 선교를 하던 초기 한국 선교사가 있다. 그가 바로 조지 새넌 맥큔(George Shannon McCune 尹山溫 윤산온 1878-1941)선교사이다.

조지 새넌 맥큔(George Shannon McCune 尹山溫 윤산온 1878-1941)선교사와 백낙준 박사
조지 새넌 맥큔(George Shannon McCune 尹山溫 윤산온 1878-1941)선교사와 백낙준 박사

당시 평안북도 정주에 점치러 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용한 점(占)쟁이로 첩(妾)까지 두고 사는 백사겸이라 하는 시각장애인(視覺障碍人, 맹인)이 있었는데 그는 박수무당, 남자 무당으로도 유명했다. 백사겸은 백낙준의 아버지로서 어느 날 굿을 하는데 미국 매킨(Macin) 선교사가 구경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때 박수무당은 아무리 용을 써도 신이 내리지 않으니 땀을 뻘뻘 흘렸다.

그 때 맥큔 선교사는 “당신은 첩까지 두고 용한 점쟁이로, 박수무당으로 살지라도, 죽으면 어디 갈 것 같소? 자식은 어찌 될 것 같소? 자식을 위해 망할 짓을 그만하고 예수님 믿고 천당 가시오”라고 하면서 주머니에 전도지 한 장을 넣어 주었다. 그러자 “나같이 용한 점쟁이한테 예수 믿으라 한다고, 별 미친놈 다 봤다”라고 소리치며 화를 냈다. 그 맥큔 선교사는 가고 나서 겨우 굿을 마쳤다. 그날 이후 용한 점쟁이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쳤다. “당신은 첩까지 두고 용한 점쟁이로, 박수무당으로 살지라도 죽으면 어디 갈 것 같소? 자식은 어찌 될 것 같소? 자식 망할 짓 그만하고 예수님 믿고 천당 가시오”라는 그 책망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급기야 병들어 누웠다. 병상에서 아내가 읽어 주는 전도지 내용을 듣고 듣는 순간에 성령님께서 마음 문을 열어주었다. 드디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기 시작했다.

용한 점쟁이는 귀신보다 더 큰 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식 망하지 않게 하려고 다음날 선교사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자식이 잘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선교사님은 “예수님을 믿으면 자식이 잘되고 복을 받는다”라고 했다. 그는 점쟁이, 박수무당 일을 청산하고,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 그런데 등록한 교회가 건축비가 부족해 공사를 중단하고 있었다.

그러자 백사겸은 그동안 점쟁이, 무당 일로 사놓은 땅을 몽땅 팔아 건축 헌금을 하여 예배당은 완공했다. 그러나 점쟁이, 박수무당을 끊고 건축비로 재산을 몽땅 드리고 나니 심한 가난이 찾아왔다. 동네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적당히 믿어야지 저렇게 미쳐서야 하겠느냐? 저렇게 빈털터리가 되어서 무슨 꼴이냐”라고 욕을 하며 동네 사람들이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러자 맥큔 선교사가 새로 건축한 교회에 사찰로 들어가 일하게 했다.

맥큔 선교사는 신성학교 교장으로서 있으면서 성실하고 똑똑한 백사겸의 아들인 백낙준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유학을 시켰다. 백낙준은 정주군에 있는 영창학교 소학교 과정을 마쳤고 신성 중학교 과정을 마치면서 신구약 성경을 완전히 통독하게 된다. 맥큔 선교사는 백낙준을 아주 사랑해서 친자식처럼 돌보아주었다. 그 후에 맥큔 선교사는 그를 중국 천진에 있는 신학서원에 유학을 보냈고 나중에 22세에 파크대학, 25게네 프린스턴대학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에 27세에 예일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27년 귀국해 연세대 교수가 됐다. 그가 1950년 2대 문교부 장관이 됐고, 초대 참의원 의장(1960.8-1961.5), 1957년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이 됐다. 백낙준(1895-1985) 박사는 한국 교육의 산실이 된 연세대학을 명문대학을 만드는 초석을 세웠고, 연세대의 기둥과 같은 인물이 되었다. 또 그는 교육부의 교육정책을 세우는데 초기 기본 틀을 세웠다. 1985년 90세로 소천할 때 까지 한국 최고의 선각자 중에 한사람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처럼 한 인물이 세워지기에는 선교사들의 겨자씨 사랑과 눈물의 기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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