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를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행 1:16).
120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행 1:14)에 헌신하고 있었다. 그들이 기도에 전념하고 있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예수를 배반하고 자살한 유다를 언급하며, 이는 “성령이 다윗을 통해 예수를 잡는 길잡이”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가룟 유다는 예수 공동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제자로, 회계를 담당할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팔았고, 이 사건은 제자 공동체에 엄청난 충격과 아픔을 안겼다. 베드로는 이 상처를 덮어두는 대신 공론화하며, 사건을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왜 유다는 은 30냥에 스승을 팔았을까? 그렇게 총명한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는 제자들에게 커다란 의문이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의 해답을 성경에서 찾았다.
1. 배신 사건은 성경에 미리 예언된 일이었다
베드로는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유다의 배신이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설명했다.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느니라”(행 1:20).
이처럼 공동체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하지만, 문제는 해결해야 하는 것이며,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성경은 인생의 문제를 풀어주는 해답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길을 찾는 데 익숙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2. 선택의 문제: 선한 길잡이인가, 악한 길잡이인가?
베드로는 유다를 ‘예수를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되었다고 해석했다. 결국,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선한 일에 길잡이가 될 것인가, 악한 일에 길잡이가 될 것인가? 이는 선택의 문제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해하려는 자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를 팔고 일시적으로 권력자들에게 인정받았으며, 물질적인 이득도 얻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그는 깊은 고민과 갈등에 빠졌다. 예수가 잡혀 고문당하고 조롱받는 모습을 보며,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모든 일이 하루 밤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대제사장 가야바 (Caiaphas)은 예수님 당시 유대의 대제사장으로 종교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예수를 죽이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산헤드린 공회를 주도하여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빌라도 앞에서 십자가형을 선동했다. (요한복음 11:49-53). 그의 결말은 신약 이후 기록이 거의 없으나, 그의 가문과 영향력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쇠퇴하였다. 악한 일에 길잡이는 결국 소멸하는 재와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해하는 길잡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국가를 운영하는 공무원, 직장, 가정, 크고 작은 공동체에 속한 우리 모두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한 일에 길잡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악한 길은 유통기한이 매우 짧다. 순간의 기쁨과 성공을 위해 양심과 신앙을 버리고 악한 자들의 길잡이가 된다면, 이는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된다.
우리가 주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꾼으로 선택받고 쓰임 받는 것은 은혜이며 축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때로는 믿음이 강하여 어떤 시험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가도, 한순간 믿음이 약해져 유다처럼 예수를 팔 수도 있고,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는 회개에 있었다. 베드로는 회개하여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유다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3. 악한 자의 길잡이가 되지 않기 위해 경건 생활에 힘쓰라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악한 자의 길잡이가 되지 않도록 경건 생활에 힘써야 한다. 경건 생활은 일상의 삶이며, 선한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한 매일의 훈련이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하셨다. 또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 6:13)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여기서 ‘악’(evil)은 막연한 영적 개념이 아니라, 원문을 보면 정관사(the)와 형용사(evil)가 결합하여 ‘악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악한 사람들로부터 매일, 매순간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또한, 우리가 악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셨다. 악한 사람의 삶은 저주받은 삶이며, 그 영향이 후손들에게까지 미친다. 결국, 악한 길을 선택한 사람은 저주와 사망의 길을 걷게 된다.
4. 생명을 선택하라
모세는 광야 세대에게 설교하며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생명을 택하라”고 권면했다. “내가 오늘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나니… 네가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의 말씀을 청종하고 의지하라”(신 30:19-20).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 순종의 길을 선택할 때 우리는 천대까지 복을 받는 영적 DNA를 세울 수 있다. 구한말 조선왕조는 망했다. 그 결과 열강의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고 나라를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고 주권도 잃었다. 그 치욕의 세월을 보냈다. 공산주의가 이 땅을 붉게 물들이고 희망이 사라졌을때, 미국의 젊은 장병들이 이땅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던졌다. 그 피로 세워진 나라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순종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우리 힘으로 독립을 얻은 것도 아니고 우리힘으로 공산주의를 물리친것도 아니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된것이다. 민족이 잘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 공동체를 이끈 지도자가 되었다. 마리아는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했다. 그 헌신은 교회 공동체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악한 자의 길잡이가 되지 말고, 선한 길을 택하여 선한 도구로 민족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통일대한민국을 열어가는 도구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