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120명이 예루살렘에 함께 모여 마음을 하나로 하며 오로지 기도에 전념했다.
베드로는 기도 중에 일어나, 열두 제자 중 회계를 맡았던 가룟 유다에 대해 말했다. 유다는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살했다. 이 모든 일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이 시편에 이미 기록된 말씀의 성취임을 강조하며,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해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행 1:16)가 바로 유다를 가리킨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면서 주님의 길을 가로막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나쁜 일과 악한 일에 길잡이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악한 자의 말로는 유통기한이 짧으며, 의인의 길은 영원하지만 악한 자의 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결국 부서지고 흩어지는 인생이 되고 만다.
베드로는 이어서 시편 109편 8절,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가룟 유다를 대신할 새로운 제자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설명했다. 이 사건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베드로는 미리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준비나 지침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시편 말씀을 깨닫게 하셨고, 제자를 세워야 한다는 확신을 주셨다. 이러한 깨달음을 우리는 ‘레마’라고 한다. 하나님은 어떤 순간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섭리하시는 손길을 보여주신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도 지침서와 형식에 익숙해져 있지만, 때로는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령님은 순간순간 우리에게 역동적인 메시지를 주시며, 성령님의 소리에 익숙하지 않으면 인생의 아주 좋은 길을 놓칠 수 있다. 주님의 제자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베드로가 성령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그 순간은 바로 오로지 기도에 전념했을 때였다. 성령님은 우리가 기도에 전념할 때 지혜와 깨달음을 주시며, 환경을 열어가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신다.
가룟 유다의 공백을 메울 제자를 선택하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째,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람"이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행 1:21)라고 했다. 제자 선발의 범위를 정했다. 엉뚱하게 외부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3년 6개월 동안 동거동락한 사람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왜냐하면 제자는 스승의 가치를 계승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은 교회에서 리더를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된다. 후임자를 선정할 때, 생뚱맞은 인물을 세우는 것도 가능하지만, 교회의 형편과 역사를 잘 알고 전임자의 목회 철학을 이어갈 사람이 더 적합할 수 있다.
둘째, "항상 제자들과 함께했던 사람"(행 1:22)이다. 호흡은 함께 하는 시간에 반비례한다. 자연스러움보다 더 아름다움은 없다. 인위적인 결합은 오랜시간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인정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움은 함께 하는 시간에 반비례한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행 1:22)이다. 제자의 사명은 스승을 닮아가는 것이며, 스승의 삶을 증언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면, 그분은 단순히 가치 있게 살다 간 선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대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천하셨다. 제자는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재림을 목숨 걸고 증언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제자를 뽑는 이유였다.
가룟 유다를 대신할 두 사람이 후보로 선택되었다. 바사바(별명 유스도라 하는 요셉)와 맛디아였다. 이제 어떻게 제자를 선택할 것인가? 선거의 문제만 남았다. 비밀 투표를 할 것인가? 아니면 거수로 결정할 것인가? 제자들은 먼저 기도했다(행 1:24).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가를 보이시옵소서”(행 1:24-25).
하나님이 주신 선거 방법은 '제비뽑기'였다. 제비뽑기를 통해 맛디아가 12사도 중 한 명으로 선택되었다. 이 과정은 인간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제도에서 지도자를 뽑는 방법은 선거이다. 선거가 공정하면 이상적이지만, 부정이 개입되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흔들어 버린다. 교단 총회장과 담임 목회자의 청빙, 장로 피택도 투표로 이루어진다. 한 표라도 더 받으면 모든 권한을 위임받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여겨졌다. 하지만 투표의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되면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고, 돈이 선거를 좌우하게 된다. 결국 돈이 없으면 담임목사로 청빙될 수도 없고, 아무리 뜻이 좋아도 총회장이 될 수 없다. 초대교회 제자들은 한 명의 제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제비뽑기를 하게 하셨다. 이 선거에는 인간의 요소가 개입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선거 제도도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교회에서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들은 공동체 내에서 임직자로 적합한 인물인지 잘 알고 있다. 사람의 인격과 성품, 영적 성숙도, 헌신 여부, 믿음의 행함,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지 여부는 함께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미 잘 훈련되고 적합한 인물이라면, 모든 후보를 놓고 온 성도가 기도하면서 비밀투표로 결정하기보다, 제비뽑기로 임직자를 정하는것도 고려해볼 때가 되었다.
제비뽑기의 장점은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것"이다. 인간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다. 둘째,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인간적인 정치나 돈의 개입을 막을 수 있다. 셋째, "공동체의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결과에 대한 승복이 더 쉬워진다. 법원에서 시민 배심원을 무작위로 선정하는 것도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교회선거제도에서 제비뽑기도 이제는 다시 고려해볼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초창기 청교도 교회에서는 목회자를 뽑을 때 때때로 제비뽑기를 활용했다.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는 신앙적 이유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방식과 오늘날의 선거 제도는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인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기도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다. 이제 우리의 선택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