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창】 암탉이 울어야

  • 입력 2025.04.0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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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역 원장의 한글 담은 은혜의 창(窓) (34)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아내가 남편을 앞질러 떠들고 간섭하면 집안일이 안 된다는 의미로 널리 알려진 속담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마치 수탉만 울고 암탉은 울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사실은 수탉도 암탉도 모두 웁니다. 다만 수탉은 “꼬끼요”라고 울지만 암탉은 “꼬꼬댁”이라고 운다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닭’인데 ‘암닭’, ‘수닭’이 아니라 ‘암탉’, ‘수탉’으로 쓰는 이유는 고어에서 ‘암’과 ‘수’의 받침에 히읗(ㅎ)이 덧쓰였고, 이 히읗이 따라오는 음절의 초성과 부딪히면서 ‘닭→탉’처럼 거센소리(격음)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규칙은 동물 중에서 유독 네 종류에만 적용됩니다. 바로 ‘돼, 개, 닭, 당’입니다. 암퇘지/수퇘지, 암캐/수캐(암캉아지/수캉아지), 암탉/수탉(암평아리/수평아리), 암탕나귀/수탕나귀가 표준어입니다. 그 외 암콤/수콤, 암캐미/수캐미, 암커미/수커미, 암투더지/수투더지는 죄다 비표준어입니다.

아무튼 암탉은 여성을 비하하는 호칭임이 분명합니다.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쓸 말, 안 쓸 말 구분 않고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여자, 여성, 여인, 여사, 그녀, 그년, 자기, 아내, 마누라, 여편네, 집사람, 안사람, 애 엄마…. 호칭이나 지칭이 많고 많습니다. 여자는 한 남자의 아내나 애인, 여성은 성년이 된 여자, 여인은 어른이 된 여자, 여사는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사전적 의미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영어의 ‘she’에 해당하는 3인칭 대명사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식 외래어란 점에서 사용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또 여편네는 낮잡아 이르는 말(비어)이고, 그년은 격이 없고 속된 말(속어)이라 절대로 쓰면 안 되는 말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부르는 말(호칭)로는 여보, 임자, 자기야, 누구 엄마, ○○아/야 등 다양합니다. 저는 아내를 아이가 어릴 때 아이 이름으로 부르다가 아이가 자라자 누구 엄마라 불렀지 단 한 번도 ‘여보’라 부르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쉰이 넘어 예순에 가까울 무렵 불현듯 ‘여사’에 꽂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김 여사’라고 부릅니다. 아내가 권사로 임직하고 나서 어쩌다 ‘김 권사’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김 여사’가 더 익숙합니다.

암탉이라고 여자를 무시하는 남자들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를 우연히 접하고 혼자 웃다가 그냥 웃을 일이 아닌 것 같아 공유합니다. 나이 들어 여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는 ①돈 ②딸 ③건강 ④친구 ⑤찜질방이라고 하기에 그냥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 남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는 ①부인 ②아내 ③집사람 ④와이프 ⑤애들 엄마라는 말에 남자인 저는 그냥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암탉이라니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니요? 말 나온 김에 속담을 바꾸겠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가 아니라 ‘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흥한다!’로 말입니다. 암탉이 ‘울면’의 ‘-면’이나 암탉이 ‘울어야’의 ‘-어야’는 분명한 일의 조건을 말할 때 쓰이는 연결어미입니다. 다만 조건(암탉이 운다)은 같은데 분명한 일(집안이 망한다/집안이 흥한다)은 확연히 다릅니다.

성경을 보면, 여성인 한나의 통곡은 사무엘을 품에 안게 했습니다(사무엘상 1:10). 에스더의 울음은 아하수에로 왕의 조서를 거두게 하여 수많은 유대인을 살렸습니다(에스더 8:3).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최초로 목격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요한복음 20:15). 베드로 곁에서 울었던 여성들은 다비다를 살렸습니다(사도행전 9:39). 울며 씨를 뿌린 사람이 기쁨으로 곡식 단을 거둔다는 것(시편 126:6)은 성경적 진리입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아닙니다!

‘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흥한다?’ 맞습니다!

울며 기도하는 여성들에게 글쓴이는 남자로서 박수를 보냅니다.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jacobp1

홈페이지 www.klpi.kr 휴대전화 010-6745-9927

출처 : 본헤럴드(https://www.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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