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창】 너 예수 믿니?

  • 입력 2025.04.2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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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역 원장의 한글 담은 은혜의 창(窓) (38)

“교회는 부지런한 사람만 갈 수 있습니까?”

몇 년 전 제가 하는 강의를 수강하시던 어느 여성분이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분은 남성의 일방적인 이혼 선언에 따라 어쩔 수 이혼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가끔 눈물을 훔치면서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해서’, ‘힘들어’라는 표현을 섞어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한 질문이 바로 “교회는 부지런한 사람만 갈 수 있습니까?”였습니다. 강의 도중에 가끔 저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예시로 들었는데, 그분이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그분은 ‘부지런해야 교회 다닐 수 있구나’ 하고 판단한 듯했습니다.

“교회 다니다 보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저절로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그 짧은 대답은 그다음 강의 때 저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1주일 후에 만난 그분의 손에는 ‘새신자 교재’가 들려 있었습니다. 또 그다음 1주일 뒤에는 십일조헌금 봉투를 보여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분명히 함께하신 것으로 믿어졌습니다.

그로부터 5년 정도 지난 후인 최근에 그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요즘도 예수 믿어요?”라고 묻자 “그럼요, 원장님” 하면서 그다음 이어지는 그분의 말 속에는 이미 새신자의 티를 완전히 벗고 교회 생활에 익숙해진 듯 자연스러운 믿음의 대화가 배어 있었습니다. 믿음의 좋은 사람을 새롭게 만나기 위해 기도 중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라면’이란 표현과 ‘원장님께도 기도 부탁드려요’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제 더는 그분에게 예수 믿느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게 된 셈입니다.

언어는 말과 글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말로 들으면 바로 이해되는 문장을 글로 표현하면 이해하기 어렵거나,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학에서는 문장에 쓰인 단어나 문장의 뜻, 실제 상황에서 말로 나타냈을 경우 그 뜻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그 학문을 의미론이라고 합니다. ‘너 예수 믿니?’라고 적은 문장을 표정과 억양을 곁들여 말로 표현해 보면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① 너 예수 믿니? → 너 예수 믿니? (믿는구나!)

② 너 예수 믿니? → 너 (정말) 예수 믿니? (믿을 수 없는데….)

③ 너 예수 믿니? → 너(도) 예수 믿니? (나도 믿는데….)

④ 너 예수 믿니? → 너 (왜) 예수 믿니?

⑤ 너 예수 믿니? → 너 예수 믿(는 게 맞)니? (그런 못된 말 하게?)

⑥ 너 예수 믿니? → 너 예수 믿(는 게 맞)니? (놀랍구나!)

이들 질문 중에서 질문 ⑤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정말 듣지 않아야 할, 들으면 안 되는 질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신의 이권이 걸린 일이나 돈이 걸린 문제에서 까딱 잘못하면 이 질문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교회를 이전 신축할 때 건축위원으로 동참했던 저는 ⑤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교회 건축을 맡은 회사의 대표는 안수집사라고 했습니다. 건축하기 전 신축 예정 부지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그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지금까지도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막상 건축에 돌입하자 너무나 싸늘했고, 냉정했으며, 폭력에 가까웠던 그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당신, 예수 믿(는 게 맞)나요?’

어느 목사님이 저에게 교열 일을 부탁해 놓고, 일이 끝나자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하고서는 ‘다음 주에’, ‘다음 달에’를 1년 내내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저의 인내심이 바닥나며 제 스스로 마지막 ‘포기 이메일’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때 저는 한경직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펴낸 책의 제목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를 삼켜야 했습니다.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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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본헤럴드(https://www.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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