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
봄볕과 가을볕은 어떻게 다르기에, 며느리와 딸은 어떻게 다르기에 이런 속담이 나왔을 까 싶습니다. 바로 “봄볕에 그을리면 보던 임도 몰라본다”는 속담이 해답입니다. 맞습니다. 강한 봄볕에는 사람의 피부가 잘 타지만 서늘한 가을볕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며느리를 딸과 비교해 차별하는 양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속담일 것입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새롭게 만나게 되는 가정을 요즘 들어 시월드(媤world), 처월드(妻world)로 부르기도 합니다. 일종의 현대 신조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시월드로 들어가면 며느리, 남성이 처월드로 들어가면 사위라는 가족적 신분을 얻게 됩니다. 예부터 이 두 경우는 대접이 달랐습니다.
“사위는 백 년 손이요 며느리는 종신 식구라.”
얼핏 생각하면 사위는 뜸한 접촉으로 멀리 대하는 관계로, 며느리는 평생 함께하기에 가까이 대하는 관계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위는 어려운 사이이긴 하지만 손님으로서 장인 장모에게 평생 대접받는 존재로, 며느리는 종신 식구 자격으로 평생 시부모를 대접해야 하는 존재로 취급돼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월드보다 시월드에서 가족 사이에 갈등이 더 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가족 간 갈등인 고부갈등이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2:53)
그런데 성경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갈등은 언급되는데 사위와 처부모 갈등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실제 현실에서도 사위와 처부모 간 갈등은 시부모와 며느리 간 갈등에 비해 거의 노출되지 않은 갈등이지요.
시월드의 시부모나 처월드의 처부모가 쉽게 하는 말 중에서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이다’, ‘아들은 아들이고 사위는 사위이다’라는 말은 ‘며느리는 절대로 딸 같을 수 없고, 사위는 절대로 아들 같을 수 없다’는 자조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딸과 며느리, 아들과 사위는 단순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저의 아들과 딸도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도 있고 사위도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결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수년간 지켜보며 깨달은 것은 아들과 사위, 딸과 며느리는 ‘누가 누구보다 낫다’와 같이 절대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만 사위 대하기가 아들보다 좀 더 어렵고, 며느리 대하기가 딸보다 좀 더 어려운 대상이란 건 사실이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아들과 딸의 부모로서, 며느리의 시부모로서, 사위의 처부모로서 몇 가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먼저, 장점을 칭찬할 때는 가능하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자주 모여 식사도 함께하면서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를 칭찬합니다. 물론 손주 칭찬은 기본이지요.
그다음, 이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필요할 때 의존하는 편입니다. 의공학을 전공한 아들의 수학 전문성, 실용음악을 전공한 며느리의 기악 전문성, 한국어를 전공한 딸의 문법 전문성, 성악을 전공한 사위의 음악 전문성을 존중하고 필요할 때 자문하기도 하고 직접 배우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3분의 1 규칙을 준수합니다. 저는 이를 ‘엄마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무엇을 사거나 선물을 받게 되면 아내는 항상 아들-며느리 몫, 딸-사위 몫, 우리 부부 몫으로 3등분합니다. 어떤 것이든 분량에 차별을 두지 않고 그렇게 공평하게 나눕니다.
현재 모두 같은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는 저와 아내, 아들과 며느리, 청량리 손자와 손녀, 딸과 사위, 남양주 손자와 손녀 등 우리 3가정 10가족 모두 우리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저의 소중한 기도 제목이기도 합니다.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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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본헤럴드(https://www.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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