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창】 자랑 중독

  • 입력 2025.0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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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역 원장의 한글 담은 은혜의 창(窓) (28)

최근 저의 다섯 살배기 어린 손자가 노회에서 개최한 찬양대회에서 유치부 독창 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 전 교인 앞에서 대상을 받은 두 곡을 불렀습니다. 마치 자신에게 엄습하는 긴장을 즐기는 듯 끝까지 다 부르고 후다닥 뛰어 내려오는 모습에 성도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주셨습니다. 어린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워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렸습니다. 다행히 만나는 분마다 먼저 칭찬해 주셔서 사실상 자랑은 불필요했습니다. 드디어 이 글에서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이렇듯 자랑하고 싶은 이면에는 언제나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가 마음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그래, 네 손자 정말 대단하다. 할아버지 닮아서….’ 저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입으로 자랑을 내뱉을 때 그 마음 저변에는 ‘인정 좀 해 줘’ 하는 심리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겠지요.

그러나 실제 가족에게조차 인정받기 힘든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겉으로는, 말로는 수긍해 주는 척할지 몰라도 내심은 ‘별꼴이야, 이제 그만하지, 뭘 그깟 것 가지고, 그걸 자랑이라고, 어디서 자랑질이야, 짜증 나…’ 같은 말을 삼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상에서 ‘입만 벌리면’이란 수식어가 가끔 쓰입니다. 이 수식어에 어울리는 피수식어 중 한 가지가 바로 ‘자랑질이다’가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라면 거의 ‘자랑 중독’ 수준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랑 끝에 쉬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에서 ‘쉬’는 파리 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파리가 쉬를 슬게 되면 그 쉬는 금방 구더기가 되고 그 주위가 끔찍할 정도로 더러워지겠지요.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면 망친다’는 강한 경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랑은 결국 심한 교만(예레미야 48:29)이기 때문입니다.

자랑 중에서도 ‘돈 자랑’이 가장 위험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설프게 돈 자랑을 하다 결국 그 돈 다 날리고 후회의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 어디 한두 사람이어야 말이지요. 돈 자랑 듣고 그 돈을 부러워하는 정도를 넘어 ‘투자처 알선’, ‘사업자금 융통’이란 명목으로 뺏어가고 빌려가면 그 길로 그 돈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의 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히스기야가 모든 것을 다 바벨론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왕하20:13) 그 결과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져 하나도 남지 않게 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자랑도 자신에게는 꽤 위험합니다. 과거의 화려한 업적을 들춰내 자신이 인정받고 싶다는 이면에는 현재의 삶이 너무 초라하거나, 미래에도 과거 수준이나 그 이상으로 개선될 여지가 없는 사람이 주로 과거를 들먹이며 자랑하게 됩니다. ‘나 때는 말이야(라떼 이즈 홀스)’는 현재 자신이 초라하다는 암시를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돈 자랑과 과거 자랑은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다만 어려운 누군가에게 베풀겠다는 결심이 서 있다면 그런 돈 자랑은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한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자랑 또한 지금 형편이 과거보다 낫거나 나아지는 미래 조짐이 보일 때 하는 것은 무방합니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동기 부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랑이란 단어가 100번 넘게 사용된 성경에서 ‘자랑’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쓴 사람은 바울일 것입니다. 바울만큼 출신 가문이나 지위, 혈통, 지식을 지닌 사람도 흔치 않아 바울은 스스로 자랑하고도 남을 만한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하나님을 자랑하고(로마서 2:17), 약한 것을 자랑하되(고린도후서 11:30), 주 안에서 자랑할 것(고린도후서 10:17)을 권합니다.

자랑도 습관이 되면 중독으로 발전됩니다.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jacobp1

홈페이지 www.klpi.kr 휴대전화 010-6745-9927

출처 : 본헤럴드(https://www.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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