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아침 무섭고 끔찍한 장면이 TV로 생중계되었습니다. 비행기 두 대가 110층 쌍둥이 빌딩에 차례로 부딪히며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었습니다. 2,977명의 사망자를 낸 9.11테러는 전 세계인이 기억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희생자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자 유족이나 살아남은 동료가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이프 온리 신드롬(If only syndrome)’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사랑한다는 말만 해 주었더라면…” “조금만 늦게 출발했더라면…” 하며 눈물을 삼켰다고 합니다.
과거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가정해 보는 뜻을 나타내는 연결어미인 ‘-더라면’은 주로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일을 후회할 때 쓰입니다. 반면, 또 다른 연결어미인 ‘-더니’는 과거에 일어난 사태나 행동에 이어 일어난 상황을 연결하는 기능을 합니다. 두 어미의 차이라면, ‘-더라면’ 뒤에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연결되지만 ‘-더니’ 뒤에는 일어난 일이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행복했을 텐데(행복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이혼한 뒤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과 이혼했더니 더 불행해졌다(불행이 일어났다).”
성경 욥기 3장을 보면 욥은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며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으로 시작해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까지 무려 15번이나 ‘-더라면’으로 연결해 장황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30장 26절에는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로 ‘-더니’를 사용합니다. 욥기 3장과 30장 26절을 연결해 표현하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화가 오지 않았을 것이고(화가 오지 않을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다(화가 일어났다)’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빠르게 해도 이미 늦다는 후회, 지나온 삶을 돌이키며 ‘-더라면’이라고 표현하는 후회는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예방이 최선입니다. 정신건강의학의 이론을 빌리면 사람은 ‘했던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하지 않은 일’을 더 많이 후회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 않아 후회하는 일을 ‘미해결 과제(Unfinished Work)’라고 한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로 명령하셨습니다. ‘하지 말라(don’t)’와 ‘하라(do)’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하게 되면 죄가 되고,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후회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하라고 하신 일을 하지 않아 후회된다면 이는 미해결 과제로서 이제부터라도 해결하면 됩니다.
사람은 후회할 일 앞에서 두 가지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하나는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같은 합리화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면 안 되는데, 분명히 잘못했습니다’ 같은 고백을 동반한 회개입니다.
그렇습니다. 다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후회를 해결할 수 있도록 ‘회개’라는 도구를 주셨습니다. 본의로든, 본의가 아니든 후회할 일을 이미 해버렸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라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만의 엄청난 혜택입니다.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자’에게 한정해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때 회개했더라면’이 아니라 ‘그때 회개했더니’가 정답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켰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사무엘상 13:13)이라고 경고했고,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뻔했다(마가복음 14:21)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반면에 요나는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다(요나 2:7)고 고백했고, 사무엘은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허락하셨다(사무엘상 1:27)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회개했더니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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