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창】 그렇군요

  • 입력 2025.09.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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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역 원장의 한글 담은 은혜의 창(窓) (58)

 

전업주부인 제 아내는 65세가 지나면서 남들 다 받는 기초연금이나 장애인연금을 받고 싶다며 지자체에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서 가구 수입이 기준을 벗어났나 봅니다. 농담이었지만 “당신 때문에”라는 그 한마디의 의미를 알아챘습니다. 순수한 자기 수입원이 필요한 아내에게 그때부터 매월 연금액보다 조금 많은 금액을 ‘급여’ 명목으로 이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다 써버립니다. 그것도 모자라면 제가 맡긴 제 카드까지 사용합니다. 주로 교회에서 식사나 커피 대접하기 위해, 넷이나 되는 손주를 위해 쓰는 편입니다. 가끔은 어디에 썼다고 알려주기도 합니다. 저는 그저 “그랬군. 잘하셨네”로 대답할 뿐입니다. 섬기고 베푸는 예쁜 마음에 공감하기에 그렇습니다.

저는 대화할 때 대화 상대에게서 대략 세 가지 유형의 반응을 경험합니다. 첫 번째는 제가 말을 꺼내자마자 “그건 말이죠” 하면서 바로 말을 끊고 받아치는 유형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에만 집중하는 경우이기에 저는 바로 제 입을 닫고 맙니다. 두 번째는 말없이 조용히 듣기만 하는 유형입니다. 무관심하게 자기 생각에만 집중하는 경우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생각해요?” 하고 물어보면 비교적 대화가 잘 이어지는 편입니다. 세 번째는 “그렇군요” 하며 맞장구치고 공감해 주는 유형입니다. 저도 이 유형으로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협상의 원칙 중에서 첫 번째 요소를 ‘공감(Empathy)’이라고 제시합니다. 협상 상대의 말에 공감해 주는 쉬운 방법은 “그렇군요”에 이어 “…라는 말씀이시죠?”라며 상대의 말을 반복하는 ‘백트래킹(Backtracking)’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대화도 일종의 협상입니다. 가족 간에 이뤄지는 대화는 물론이고 교인 간에 이뤄지는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보다 공감으로 사람을 상대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불쌍히 여기셨다(σπλαγχνιζομαι, 스플랑크니조마이)’는 표현이 네 번 나옵니다(1:41, 6:34, 8:2, 9:22). 이 단어의 원래 뜻은 ‘함께 아파하다’로 상대방의 상황에 자신을 대입하여 함께 체험하고 타인의 짐을 나누는 공감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디베랴 호숫가에 서서 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고기가 있느냐”(21:5) 하고 물으셨으며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21:6) 하셨습니다. 달리 하고 싶은 말씀이 많고 많으셨을 텐데, ‘물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화두로 삼으시며 공감 화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저의 아들이나 딸이 어려웠던 때 어쩌다 저에게 돈을 좀 빌려 썼으면 하고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왜?” 또는 “어디에 쓰려고?”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물으면 자식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구겨지겠나 싶어서였습니다. 대답 대신 돈부터 먼저 보냈습니다. “보냈다”, “고마워요!”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서 어느 권사님이 저를 잠깐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몇 년 전 남편 장로님과 함께 이사하시면서 집과 가까운 우리 교회로 나오시는 분이셨습니다. 당연히 신분은 시무 권사가 아니라 협동 권사였습니다. 그분은 은퇴가 불과 몇 년 남지 않았지만 본 교회 시무 권사로 섬기다가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다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내비쳤습니다. 저는 “그러시군요. 제가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임직자 후보 명단에 그분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당회가 열리는 날 조용히 제안했습니다. “그분에게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시무 권사로 임직하도록 합시다”라는 당회장의 권유와 당회원의 동의에 따라 그분의 이름이 후보자 명단에 추가되었습니다. 이번 가을 열리는 임직식에서 그분의 환한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공감해 주는 대화를 위한 필수 요소, 그건 “그렇군요!”와 ‘토닥토닥’이 아닐는지요?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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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본헤럴드(https://www.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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