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가 귀한 시절이었던 1960년대 남편이 출장길에 그 귀하고 비싼 바나나를 몇 개 사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줬습니다. 아내는 맛있게 먹은 뒤 껍질을 쓰리기통에 버렸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쓰레기통을 비우던 시어머니의 눈에 바나나 껍질이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그 시어머니와 그 며느리 사이에는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어릴 때 장면입니다. 이런 걸 고부갈등이라 하지요.
한번 꼬이면 풀기가 어려운 게 갈등입니다. 칡[葛]과 등나무[藤]가 같이 자란다면 칡 줄기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 줄기는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다 보니 서로 엉키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바로 갈등(葛藤)입니다.
갈등은 가정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물론 교회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가정의 대표적인 갈등이 ‘고부갈등’이라면 교회의 대표적인 갈등은 아마도 ‘목장갈등’이 아닌가 싶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갈등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어디 목장갈등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발견한 교회 안에서 비일비재한 갈등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을 소개합니다.
갈등을 설명할 때 흔히 등장하는 레빈(Levin)이 분류한 갈등 양상이 교회에도 나타나는 현상을 가끔 봅니다. 소속된 모임에 참여해야 하는데 박 장로와 얼굴 마주치는 것도 싫고 그 모임에 나가기도 싫다(회피-회피 갈등).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전도회도 참석하고 싶고 소그룹선교회도 참석하고 싶다.(접근-접근 갈등). 복을 받고 싶은데 말씀을 가까이 하거나 자주 기도하기는 싫다(접근-회피 갈등).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요한복음 13:4-5)
주께서 하신 모습은 바로 ‘섬김’입니다. 그런데 ‘섬기다’라는 단어의 뜻은 ‘신이나 윗사람을 잘 모시어 받들다’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섬김은 이와 반대로 ‘아랫사람을 받드는 모습’입니다. 갈등을 회피하는 첫 번째 방법은 ‘주께서 하듯’ 섬김입니다.
주께서 하듯
섬김은 반드시 내려놓음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설정한 경계를 침범하거나 무시하게 되면 갈등 관계가 성립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자신이 설정한 그 경계를 스스로 허물어 버리면 그 갈등은 아주 쉽게 사라집니다. ‘나는 잘못이 없다’는 경계, ‘네가 잘못한 것’이라는 경계, ‘그걸 왜 내가 해야 해’라는 경계, ‘그건 네가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경계, ‘그 일은 나와 상관이 없다’는 경계, ‘그건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경계 말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에베소서 6:7)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로새서 3:23)
이 말씀이 갈등을 회피하는 두 번째 방법, ‘주께 하듯’ 섬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께서 하듯, 주께 하듯’ 이웃을 대하면 절대로 갈등 관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주께 하듯
저는 가정에서 먼저 섬김을 실천하는 연습을 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식탁에 앉아 식사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와, 맛있다!”
음식을 정성껏 배려하는 아내의 마음에 저의 섬기는 마음을 전하는 말입니다.
아내가 “반찬이 좀 짠 것 같은데….” 하면
“반찬이니까 당연히 짜지. 밥을 좀 더 많이 먹으면 되지 뭐.”라고 화답하고,
아내가 “좀 싱거운 것 같은데….” 하면
“원래 나이 들면 싱겁게 먹어야 해.” 하면서 맛있게 먹습니다.
뻔한 얘기인데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 이것이 섬김의 출발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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