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가장 어린 나이에 성령이 충만했다고 기록된 사람은 세례 요한이겠지요. 누가복음 1장에는 세례요한이 복중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를 만나자 복중에서 뛰놀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세례요한은 복중에서 복을 받아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저의 딸은 결혼해서 첫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낳을 때까지 저에게 매일 성경 한 구절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 때 은혜 받은 말씀 중 한 구절을 선택해서 보냈습니다. 복중에서 엄마의 말씀 묵상을 매일 들으며 태어난 외손녀는 주일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하나님의 예쁜 자녀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복중에서 이미 복을 받은 저의 손녀입니다.
복중의 복
복중의 복과 복 중의 복은 다릅니다. ‘복중(腹中)의 복’이 ‘뱃속에서 받은 복’을 가리킨다면 ‘복(福) 중(中)의 복’은 ‘많은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을 가리킵니다. 복중의 복을 받은 사람이 세례요한이라면 복 중의 복을 받은 사람은 아마도 아브라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창세기 24장 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복 중의 복은 아마도 아브라함이 받은 ‘나이가 많아 늙어서 범사에 받는 복’이 아닐는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늙어서 범사에 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복인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4장과 25장의 내용을 반복해 읽었습니다.
‘늙은 종에게 며느리 간택을 부탁했고 리브가를 데려와 며느리로 삼았다. 아브라함이 140세가 넘어 새장가 들어 아이 여섯을 낳았다. 자기 재산은 모두 자식에게 고루 분배했다. 175세에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아브라함이 늙어서 범사에 받은 복은 이게 전부였습니다. 특별히 복 중의 복이라고 할 만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최고의 복으로 여기는 재물도 자식들에게 다 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궁금증은 몇 차례 더 읽고 난 뒤에야 풀렸습니다.
복 중의 복
우리에게 있어 무엇보다 복 중의 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은 것이겠지요. 이와 더불어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또 다른 의미의 복 중의 복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주변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생 동행한 늙은 종이 있었고, 많은 자식과 며느리가 있었으며, 후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죽어서 만날 열조까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많아 늙었을 때까지 그의 곁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이 늙으면 젊을 때와 다르게 여러 가지 ‘움’이 함께합니다. 사람이 귀해서 오는 외로움, 몸이 건강하지 못해 오는 괴로움, 언제 죽을지 몰라 느끼는 두려움, 젊은 사람에게 무시 당해 느끼는 서러움, 키오스크 앞에서 느끼는 어려움, 자식들이 외면하면 느끼는 노여움 같은 감정입니다. 우리말에서 ‘-움’으로 끝나는 말을 찾아보면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합성어가 훨씬 많은 반면에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합성어는 몇 개 안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며느리를 맞으며 오는 반가움이 있었을 것이고, 복을 받아 잘 살아가는 자식들로 오는 고마움, 마지막까지 함께한 새로 맞은 아내가 있어서 즐거움을 느끼며 여생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나이 들어 늙었을 때 외로움, 두려움, 서러움, 어려움, 노여움 대신에 반가움, 고마움, 즐거움이 새롭게 움이 튼다면 복 중의 복을 받은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얼마 전 어릴 때 다녔던 고향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그 당시 철없는 저를 따뜻하게 이끌어주셨던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저를 만나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박 장로, 서울에서 복 받고 살고 있지?”
“예, 목사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렇거든 누군가가 자네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시게.”
저에게는 매일 기도해 주시는 고향 교회 성도님들, 제가 섬기는 우리 교회 경로대 어르신들, 저에게 배운 수많은 제자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있기에 저는 어느 누구보다 ‘복 중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반갑고, 고맙고, 즐겁습니다!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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