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창】 착한 사람 선한 사람

  • 입력 2025.09.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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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역 원장의 한글 담은 은혜의 창(窓) (59)

큰길을 달리다 오른쪽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방향으로 차량이 길게 줄지어 있습니다. 급하게 좀 가야 해서 중간에 끼어들어야 하는데 아무도 쉽게 공간을 내 주지 않습니다. 차마다 앞차 꽁무니에 거의 붙다시피 하며 틈을 주지 않습니다. ‘한 대쯤 좀 양보해 주지, 쫀쫀하게 그러나?’ 하는 마음에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차량이 늘어선 긴 줄 끝에 붙게 됩니다. 긴 줄이 느릿느릿 줄어들면서 답답한 마음이지만 참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저 앞쪽에서 깜빡이를 켜고 새치기를 시도합니다. ‘남들 다 줄서서 기다리는데 저게 뭔 짓이야?’ 하는 마음에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최근에 저는 새치기를 시도하는 사람에게 양보해 주는 사람과 끝까지 양보해 주지 않는 사람을 두고 누가 착한 사람인지, 누가 선한 사람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이 판단에 앞서 착한 사람과 선한 사람은 같은 유형의 사람인지 다른 유형의 사람인지를 나름대로 살펴봤습니다.

우리말에서 ‘선하다’의 ‘선(善)’이 ‘착할 선’이라고 해서 ‘착하다’와 ‘선하다’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착하다’와 ‘선하다’를 선명하게 구분해서 뜻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른 것’으로 개인적 성향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선하다’는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으로 인간관계에서 상대적인 성향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덕’이란 ‘인간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돈 바꿔주는 사람과 제물을 파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엄하게 꾸중하셨습니다(마가복음 11:17). 예수님은 성경적 기준에 따라 선한 행동을 하셨으므로 선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의 편의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착한’ 사람일 수는 있으나 결코 ‘선한’ 사람은 못 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나바를 가리켜 착한 사람(사도행전 11:24)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5장에서는 바나바와 바울이 심하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가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바나바와 밤빌리아의 사건을 소환하며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다’는 바울은 의견 충돌 끝에 헤어지고 맙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버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마가를 생각한 바나바는 착한 사람으로,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 ‘사역에 동참하지 않았던’ 마가를 배제한 바울은 선한 사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후 바울은 마가를 기다렸으며(디모데후서 4:11), ‘나의 동역자 마가’(빌레몬서 1:24)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바울을 선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에 충분합니다. 그처럼 바울은 성경적 기준에 충실했던 사람이니까요.

또 이단이 찾아왔을 때 단호히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않으면(요한2서 1장) 성경적 기준에 따른 사람이므로 선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웃인데 들어오라고 해서 뭐라도 대접해야지’ 하는 사람은 마음이 착한 사람일지 모르나 결코 선한 사람은 못 됩니다. 또 새치기하는 사람에게 양보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 할 수는 없지만 착한 사람으로, 양보하지 않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 할 수는 없지만 선한 사람으로 단정하려고 합니다. 도덕적 기준을 근거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을 착한 사람으로, ‘법대로 사는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법대로 살지 않는 사람’을 악한 사람으로 정의하려고 합니다. 무리일까요?

‘범사에 선한 일의 본을 보이는 것’(디도서 2:7), 그것은 성도의 성경적 사명입니다.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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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본헤럴드(https://www.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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