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중국에서 칭다오대학 교수 한 분을 만나 그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옌벤 출신 중국 동포인 그가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어느 식당에 들어갔답니다. 식사를 주문하기 위해 중국에서 하던 대로 “복무원(服務員)!” 하고 종업원을 불렀답니다. 주위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돌아보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북한에서 온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사장님’, ‘언니’, ‘이모’ 등으로 부르는 대신에 ‘푸우위안(服務員)’이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식당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호텔, 상점, 지자체, 경찰서 할 것 없이 어디서든 “푸우위안!”이라고 외치면 직원이나 담당자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일컫는 칭호 때문에 부르기가 망설여질 때가 많습니다. 또 칭호는 가리킬 때 쓰는 지칭과 부를 때 쓰는 호칭이 같은 경우도 있지만 다른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사용자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부르는 경우를 예로 들면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양합니다. 교인들은 ‘장로님’, 거래처 사람이나 저에게 강의를 들은 제자들은 ‘원장님’, 제 친구는 ‘박 형’, 후배들은 ‘박 선배’, 선배들은 ‘재역 씨’, 형님이나 누님들은 어릴 때부터 ‘역아’라 부르다가 장로가 된 뒤에는 ‘박 장로’라 부릅니다. 공무원들은 ‘박재역 씨’라 부릅니다. 은행이나 보험사의 직원은 ‘고객님’ 또는 ‘박재역 님’으로 부릅니다. 식당에 가면 물론 ‘손님’이라고 부릅니다. 특이하게 언론사 재직 시절 나이가 저보다 좀 적은 친구가 언제나 생소하게 ‘박 노야’라고 불렀습니다.
노인을 지칭할 때 예부터 남성에게는 ‘노옹(老翁)’ 또는 ‘노야(老爺)’로, 여성에게는 ‘노파(老婆)’로 높여 불렀습니다. 요즘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남녀 불문하고 노인을 ‘어르신’으로 높여 부릅니다. 그래서 저는 은퇴하신 장로님이든, 권사님이든 만나면 ‘어르신’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호칭마저도 듣기 싫어하시거나 저와 좀 살갑게 지내는 분들에게는 ‘형님’이나 ‘누님’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한번은 어느 젊은 여자 집사님 한 분이 나이가 지긋하신 교회 여자 집사님을 ‘집사님’이라 부르지 않고 ‘숙자 언니’라고 부르기에 저 역시 ‘숙자 언니’라고 불렀더니 웃으셨습니다. 그때부터 그 집사님께만 ‘숙자 언니’로 불러드리고 있습니다. 들을 때마다 기분이 참 좋으시다 하셔서 계속 그렇게 부를 생각입니다.
저에게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은 20대 초반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처음에는 적절한 호칭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일일이 직업과 직책을 물어보고 그 직책에 높임 접사나 의존명사인 ‘님’을 붙여 부른다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으로 통일했습니다. 사실은 이름 뒤에 의존명사를 붙여 ‘박재역 님’처럼 부르거나 직책 뒤에 접사 ‘님’을 붙여 ‘원장님’처럼 부르는 게 적절하겠지만 처음 만나 이름도, 직업도, 직책도 물어보기 곤란한 경우에는 ‘선생님’이 무난하리라 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이나 예수를 믿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아직 직분을 받지 못한 분들을 그냥 ‘성도’로 부릅니다. ‘성도님’으로 부른다 해서 상대가 기분 나쁘게 들릴 이유는 없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처럼 ‘기독교 신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동안 이분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성도’가 적절할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님’ 대신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새 가족에게 ‘○○○ 선생님’이라 부르며 다가가면 반가워해 주시니까요. 호칭 중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다운 호칭은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호칭이겠지요. “내 아들아!”, “내 딸아!”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편 2:7)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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