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창】 내일(來日)이 오면

  • 입력 2024.08.05 12:04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재역 원장의 한글 담은 은혜의 창(窓) (10)

 

입원실에서 만난 저의 친구는 항암치료 중이라 머리카락은 사라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덮여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손만 내밀어 친구의 손을 잡았습니다. 친구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야, 내가 회복되면 같이 미국 한번 가자. 모든 경비는 내가 부담할게.”  

“ ...... "

 

여기서 회복되면의 어미 ‘-비가 오면처럼 불확실하거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가정할 때쓰이기도 하고 봄이 오면처럼 분명한 사실을 어떤 일의 조건으로 말할 때쓰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친구는 후자의 의미로 회복되면이라고 했겠지만 저로서는 전자의 의미로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來日

내일이 오면이라고 했을 때 자신에게 내일이 오는 상황이 불확실한 사실인지, ‘분명한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에게 내일이 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일보다는 오늘에 집중하라는 명언이 있나 봅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라는 소포클레스의 말처럼 말입니다.

 

오늘을 기준으로 3일 전을 그끄저께라 하고 2일 전은 그저께’, 1일 전은 어제’, 당일은 오늘’, 1일 후는 내일’, 2일 후는 모레’, 3일 후는 글피’, 4일 후는 그글피라고 합니다. 이들 그끄저께-그저께-어제-오늘-내일-모레-글피-그글피 중에서 대부분이 순우리말인데 유독 내일(來日)만 한자어라는 사실은 그만큼 자신에게 내일의 실현이 불투명하다는 의미라고 우길 수는 없지만 참 독특합니다. 내일의 순우리말로 올제하제’, ‘후제라는 말이 있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도 않고 아무도 쓰지 않는 말이니 차라리 내일의 준말인 로 쓰면 순우리말같이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명언은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를 패러디한 다양한 표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자’, ‘내일 할 일을 오늘 하지 말자’, ‘내일 할 일은 오늘 하고 오늘 할 일은 지금 하자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오늘 잠들 때 내일 때문에 잠 못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때처럼 소풍이 기다려지는 내일이 있다면 물론 잠이 오지 않겠지만 성경의 욥처럼 내일이 고통의 날이라면 오늘 잠 못 이루는 건 지극히 당연합니다. 갖고 싶은 것을 다 갖는 것이 행복이라면 갖고 싶지 않은 것을 갖고 있다면 그건 불행입니다. 갖고 싶지 않은데 찾아드는 것, 바로 염려 또는 걱정이 아닐는지요. 욥은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걱정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욥기 14:1).

 

성경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34)

또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양식으로 주시며 오늘 먹을 만큼만 거두고 내일 먹을 것은 내일 거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도 말 안 듣고 기어이 거둬 간직했던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나면서 모세를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온 그날, 그들의 내일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일은 오직 하나님의 날이었기에 그 내일, 그다음 내일 그리고 그 이후 광야 길로 이어지는 수많은 내일의 일을 짐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내일, 그다음 내일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지는 수많은 내일에 일어날 일을 우리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목사님이 자주 하시는 이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길을 아십니다. 그 길로 인도하십니다. 길이 없으면 만드셔서 인도하십니다!”

 

내일(來日)은 하나님의 날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시무하고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jacobp1
홈페이지 www.klpi.kr 휴대전화 010-6745-9927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