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 물리면 ‘사고’지만 개가 사람에게 물리면 ‘사건’이다”
언론사에서 재직할 때 사회부의 한 기자에게 들은 말입니다.
그런데 개와 사람의 깨무는 힘을 비교하면 50 대 70으로 사람이 개보다 훨씬 강하다고 합니다. 물론 깨무는 힘이 가장 강한 동물은 악어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이 깨무는 힘을 치과나 동물병원 같은 데서는 치악력(齒顎力)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는 표준어가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서는 교합력(交合力)이란 단어를 표준어로 추천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개가 인간 가까이 존재하다 보니 애완견으로 표현하다 언제부터인가 반려견이란 용어가 표준어로 등재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는 속담처럼 개는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형편없는 존재로 취급돼 왔습니다. 그래서 접두어 ‘개-’가 붙으면 ‘개살구(야생), 개떡(가짜), 개떡(저질), 개꿈(헛된), 개망나니(정도가 심한)’ 등과 같이 부정적 의미로 쓰였는데 최근에는 ‘개꿀맛(진짜 맛있음), 개잼(정말 재미있음), 개드립(성공적 말장난)’처럼 진짜, 정말이란 의미로 변질되어 쓰이기도 합니다.
우리말에서 다른 대상과 비교하면서 이해도를 높이는 수사법으로 비유법이 있습니다. 그 비유법 중에서도 직유법은 비슷한 성질이나 모양을 가진 두 사물을 접속조사 ‘같이’, ‘처럼’이나 연결어미 ‘듯이’로 결합하여 직접 비유하는 수사법입니다. ‘개-’를 예로 들면 ‘개같이, 개처럼, 개 꾸짖듯이, 개 같은’ 등으로 직접 비유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다윗이 요나단을 추억하며 그의 아들 지체장애인 므비보셋을 거두려 하자 므비보셋은 ‘개 같은 나를’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사무엘하 9:8). 하사엘도 엘리사 앞에서 ‘개 같은 종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열왕기하 8:13). 시편에서는 ‘개처럼 울며’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시편 59:6).
말도 아닌 소리를 하는 사람을 향해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 하네’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 ‘개가 풀을 뜯어 먹는지 아닌지’는 왈가왈부할 일이 아닙니다. 개는 육식동물이라지만 어쩌다 풀을 뜯어 먹는 개도 있긴 합니다. 제가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갑자기 개가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풀을 뜯어 먹은 개는 곧 울컥거리며 게워내기 시작했고요. 그때 어른들은 개가 토해 내는 모습을 보고 개가 풀을 먹었기 때문에 토해 내는 게 아니라 (속이 불편해서) 토해 내려고 풀을 뜯어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개는 토해 낸 것을 다시 먹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언 26:11)는 말씀이 기록돼 있나 봅니다. 이 말씀을 대하는 순간 어릴 때 봤던 개가 구역질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개 이야기를 하니 1년 전 제 곁을 떠난 애완견 쿵이 생각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쿵이가 제 곁을 떠난 뒤 한동안 저 역시 ‘펫로스증후군(Pet Loss Syndrome)’으로 상실감을 겪어야 했습니다.
쿵이가 살아있을 때는 ‘페티켓(Petiquette:Pet+Etiquette)’을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그 녀석은 가끔 기분 따라 수틀리면 사람을 물기도 했고, 낯선 사람이나 상황을 보면 멈추지 않고 짖어댔기 때문입니다. 식탁 음식을 호시탐탐 노리는 말썽꾸러기였지만 외출했다 돌아오면 언제나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주었고, 침대 옆이든, 책상 앞이든, 제가 있는 곳에는 항상 머물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병에 걸려 마지막 순간에도 몇 번을 쓰러지면서까지 비틀거리며 저에게 다가와서는 기어이 제 무릎에 누워 마지막 호흡을 멈췄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 같은’이든, ‘개보다’이든, 개와 비교하는 표현은 즐겨 쓰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만 스스로 ‘개 같은’ 존재보다 더한, ‘개보다 못한’ 존재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편입니다.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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