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탐험가인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남태평양 해저 동굴을 탐사합니다. 그런데 탐사 활동 중 열대 폭풍이 덮쳐 해저 동굴 입구가 막혀버립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다른 입구를 찾아 나섭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다리를 다치고 맙니다. 아들이 겨우 부축해 탈출구를 찾아 헤매게 됩니다. 그때 아버지는 이런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친 몸으로 아들과 함께 나가면 둘 다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사라지면 아들은 살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만이라도 살리는 길을 선택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완강하게 거부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설득합니다. 아들은 울면서 아버지를 물속으로 밀어 넣고 누른 채 죽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호주 영화 ‘생텀(Sanctum)’의 한 장면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처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영어에선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딜레마(dilemma)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 딜레마는 두 가지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지(딜레마의 뿔) 사이의 선택을 뜻합니다. 옛말인 ‘애 볼래 밭 맬래?’ 하는 표현도 일종의 딜레마로 볼 수 있겠지요.
딜레마를 설명할 때 ‘고슴도치 딜레마’를 많이 활용합니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추위에 떨고 있다. 그냥 있으면 얼어 죽겠고, 서로 안고 있자니 가시에 찔려 죽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을 딜레마라고 합니다. 그런데 ‘방향을 바꾸면 1명이 죽고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4명이 죽는다’는 ‘트롤리 딜레마’에서는 반드시 1명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1명과 그 4명이 누구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가장 많이 살리는 선택이 젊은 여성이라면 가장 많이 죽이는 선택은 노년 남성이라는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다윗은 인구조사 후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세 가지 선택지를 놓고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습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 앞에 내놓은 선택지는 첫째는 7년간 흉년, 둘째는 3개월간 적에게 쫓겨 도망 다님, 셋째는 3일간의 전염병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딜레마(dilemma)에 선택지 하나를 더한 것으로 트릴레마(trilemma)라고 부릅니다. 결국 다윗은 기간이 가장 짧은 세 번째 선택지를 선택하면서 백성 7만 명을 잃게 됩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눈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선택지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가항력(不可抗力)입니다.
불가항력이란 인간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힘이란 뜻인데, 달리 말하면 인간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기도 합니다. 장 칼뱅(Jean Calvin)이 제시한 구원의 5대 교리 중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은 불가항력적
인간의 구원과 은혜, 죽음, 영생은 모두 인간의 선택 영역이 아니라 불가항력의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불가항력을 마치 선택의 영역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고, 불가항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가항력 앞에서 이 같은 인간의 무모한 판단은 ‘휴리스틱(Heuristic)’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휴리스틱이란 주먹구구식이나 경험과 상식에 기반하여 단순하게, 즉흥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휴리스틱 현상 중에서 ‘회상 용이성(availability)’이란 현상은 ‘내가 TV에서 봤는데’, ‘내가 겪어봤는데’,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내가 들었는데’, ‘내가 배웠는데’처럼 인간은 배운 만큼 알고, 아는 만큼 기억하고, 기억하는 만큼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에서 읽었는데...’
그래서 알게 된 것은 인간의 구원과 은혜, 죽음, 영생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으로 우리에게 주셨기에 인간으로서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은 없습니다! 할렐루야!!
박재역 원장∥중학교 교사를 접고 동아일보 교열기자로 입사했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직 후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현재는 한국어문교열연구원을 운영하면서 문서 교열과 등록민간자격 '어문교열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경고유명사사전》 (2008, 생명의말씀사), 《교열기자의 오답노트》(2017, 글로벌 콘텐츠), 《다 쓴 글도 다시 보자》(2021, 글로벌콘텐츠), 《맛있는 우리말 200》(2023, 글로벌콘텐츠) 등이 있으며 현재 다산은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에 장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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