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숫자와 함께 살아간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계를 본다. 몇 시인지, 몇 분인지 확인하고, 하루의 분량을 계산하며 움직인다. 버스를 기다리며 남은 도착 시간을 본다. 계좌를 확인하고, 칼로리를 계산하며, 스마트폰에 저장된 데이터를 확인한다. 숫자는 이토록 실재적이다.
하지만 한 번쯤 멈추어 생각해본다.
‘무한’이라는 수는 얼마나 클까?
‘찰나’라는 시간은 얼마나 짧을까?
■ 불교에서 시작된 수의 철학
불교 경전에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초월한 수많은 숫자 단위가 등장한다.
처음엔 만(10⁴), 억(10⁸), 조(10¹²), 경(10¹⁶) 같은 익숙한 단위로 시작한다. 그러나 곧 해(垓, 10²⁰), 자(秭, 10²⁴), 양(壤, 10²⁸)을 지나, 정(正, 10⁴⁰), 극(極, 10⁴⁸)까지 도달한다. 만배의 단위로 커지는 수는 실생활에 익숙하지 않다.
이쯤 되면, 수는 더 이상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된다.
불교는 이 수의 크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강조한다.
가장 유명한 비유 중 하나는 ‘항하사(恒河沙)’—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숫자다. 그 수의 억 배가 아승기(阿僧祇), 다시 억 배가 나유타(那由他), 그 다음은 불가사의(不可思議), 무량대수(無量大數). 각각 10⁵⁶, 10⁶⁰, 10⁶⁴, 10⁶⁸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한 계산이 아니다.
숫자를 통해 삶의 무상함을 일깨우고, 한 순간의 존재가 지닌 불가사의한 가치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 서양 수학과 과학, 그리고 ISO의 무한 접근
서양에서의 ‘무한’은 대체로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구조 안에서 다뤄진다.
기하급수적 증가, 무한급수, 극한값, 그리고 “∞”라는 기호로 표현되는 개념.
하지만 2022년에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국제도량형총회(ISO/CGPM)는 새로운 단위를 제정했다:
로나(Ronna) = 10²⁷
퀘타(Quetta) = 10³⁰
론토(Ronto) = 10⁻²⁷
퀘토(Quecto) = 10⁻³⁰
앞에서 언급한 만배의 단위로 커지는 수는 서양과 국제사회에서는 천배의 단위로 커진다. 이 단위들은 인공지능 학습량, 천문학적 거리, 양자 물리학의 입자 크기 등 현대 과학의 첨단 영역에서 실제로 사용된다. 예컨대 전 세계 데이터 총량은 곧 1 Ronnabyte(10²⁷ bytes)를 넘을 것이라 전망된다.
불교가 숫자를 통해 사유의 깊이를 말한다면,
과학은 숫자를 통해 우주의 구조를 말한다.
■ 숫자와 인생: 첨단의 기술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
찰나(刹那), 경각(頃刻), 촌각(寸刻)…
이 단어들은 모두 시간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삶의 속도와 밀도를 표현한다.
불교에 따르면 1찰나는 약 1/75초, 즉 0.0133초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 선택, 깨달음은 이 찰나 안에서 일어난다.
AI가 사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연산하고 추론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렇게 빠르게 살아야만 하는가?
그 빠름 속에서 우리는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보고 있는가?
"답은 그렇다!"이다. 기사 '한글과 AI 리터러시: 대한민국이 AI 강국이 되는 길, https://www.bonhd.net/news/articleView.html?idxno=16731)에서 "한글 단어 하나를 컴퓨터가 분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0.003초. 영어는 0.005초. 무려 40%나 빠르다!"라고 했다. 한글 단어 하나를 컴퓨터가 분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0.003초는 1찰나인 약 1/75초, 즉 0.0133초보다 짧은 시간이다. 이미 우리 실생활에 찰나보다 빠른 속도와 밀도가 깊이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 수의 우주와 인간의 숨결
수는 인간이 만든 발명품이자, 동시에 인간을 초월하는 철학의 언어다.
불교의 ‘무량수’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생명’, ‘측정할 수 없는 우주’에 대한 경외다.
과학에서 말하는 ‘무한대’는 끝없는 탐구의 길이지만,
철학이 말하는 무한은 ‘여기, 지금’의 고요한 인식이다.
■ 결론: 인공지능 시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AI는 무량대수의 데이터를 1초 만에 처리한다.
하지만 인간은 ‘한 사람과의 만남’, ‘한 순간의 미소’, ‘한 줄의 말씀’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감동을 경험한다.
우리는 무량한 정보를 지닌 시대에 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찰나의 소중함’을 인지할 수 있다면,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문명을 만들어갈 수 있다.
오늘 하루, 당신의 삶 속 한 ‘찰나’가 우주보다 깊은 의미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을 기억하세요.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위대한 능력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