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번 유명한 게로 정치학 교수가 우파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도 해고당하고 동료들도 잃었다는 기사를 읽고 „설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기사를 읽으시면 좀 더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임마드 카림(66)은 전직 WDR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언론인입니다. 베이루트 태생인 그는 1977년 독일로 건너와 언론계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ARD Civis-Preis 수상 등 공영방송에서 다수의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카림은 기존 언론과 결별하고 독립 감독의 길을 걸으며 독일 사회와 정치 상황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유튜브에 공개된 그의 신작 „졸지에 국가의 적이 되다“를 계기로, 카림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각을 들어봅니다.
그리고 다음 링크를(마이클심TV) 들어보시면, 그것이 전 세계의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MS403 트럼프행정부 불법체류자 체포 방해죄 좌파 판사들을 체포하는 것을 잘 생각을 해보시면, 한국이 얼마나 위험에 처해있는지도 깨달으실 것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 현상입니다.
Plötzlich Staatsfeind - Suddenly enemy of the state(English subtitles) 1시간짜리, 영어 자막. 독일어 Plötzlich Staatsfeind(갑자기 국가의 적), "wer Moral übers Recht stellt, verliert Beides"(도덕을 내세우는 자는 둘 다 잃는다).
하이델베르크 유럽개혁신학연구소 송다니엘 올림.
///////////////////////////////
「나는 저항한다!」
인터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독일 공영방송인 ARD와 ZDF에서 일자리를 잃은 저널리스트 이마드 카림. 그는 자신의 영화 „졸지에 국가의 적이 되다“(„Plötzlich Staatsfeind“)에서 묻는다: 독일에서 점점 심해지는 자유 박탈에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대담 기자: 다니엘 홀펠더(Junge Freiheit)
홀펠더: 카림 씨, 우리는 곧 국가의 적으로 취급받게 될 것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이마드 카림: 오늘날 독일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홀펠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인가요?
카림: 제 영화의 주인공 오스카 헬트는 원래는 존경받는 좌파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가 집권 중인 ‘휴머니스타 인민평의회’의 찬란한 정책을 의문시한 순간, 곧바로 인신공격 캠페인에 휘말려 친구, 직장, 가족을 모두 잃게 됩니다. 국가 권력은 그의 귀에 감시용 칩을 심고, 사고를 ‘교정’하기 위해 ‘사고혼란정리센터(GEZ: GedankenEntwirrungsZentrale: 시민의 혼란된 사고를 정리해주는 센터)’에서 재교육을 받게 만듭니다. 그곳에서는 다문화주의, 젠더 규범, 기후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즉 ‘착한 사람’에 반하는 비판적 사고를 ‘치료’하려는 거죠.
홀펠더: 그렇다면 헬트의 ‘착한 사람’에 대한 비판은 어디에서 비롯된 건가요?
카림: 그는 선전되는 다문화주의가 실제로는 획일성을 낳고 있다는 점, 젠더 운동이 진정한 해방과 여성 인권을 오히려 억압하는 반해방적, 여성혐오적 이데올로기라는 점, 그리고 기후정책의 방향전환 요구가 결국 사람들을 도덕적·경제적으로 끊임없는 스트레스 상태에 몰아넣어 더 쉽게 통제하려는 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겁니다.
홀펠더: 그렇다면 『갑자기 국가의 적』은 오늘날의 현실 묘사인가요? 아니면 조지 오웰의 『1984』 전통을 잇는 디스토피아인가요?
카림: 그 경계가 어디인지 판단하는 건 관객 여러분의 예민한 감각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우리의 시민 권리가 점점 침식당하고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홀펠더: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끼시는 건가요?
카림: 이를테면 형법 188조 ‘국가원수 모독죄’와 관련된 터무니없는 가택 수색을 생각해보세요. 평범한 시민들이 단지 정치인을 풍자하는 무해한 이미지를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새벽에 경찰 특수팀이 들이닥쳐 마치 범죄자처럼 취급받고 있습니다(몇 주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 이런 법률들은 시민들을 위축시키려는 목적이에요. 이를테면 스스로 자유롭고 관용적이라 자처하는 로베르트 하벡 장관도 재임 중 800건 넘는 형사 고발을 지시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홀펠더: 그래도 정부 비판 때문에 감옥에 가는 일은 없잖아요.
카림: 벌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한은 그렇죠.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바로 ‘사회적 고립’입니다. ‘휴머니스타 인민평의회’ 체제에서는 판결을 받은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감옥이 그 사람에게 찾아갑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가 감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문둥이’로 낙인찍히죠. 친구, 가족, 직장, 모든 사회적 관계망이 그 사람을 외면합니다. 우리 모두가 오스카 헬트처럼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견딜 것인가, 아니면 순응할 것인가. 우리 배우들에게 물어보세요.
홀펠더: 무슨 뜻인가요?
카림: 우선, 배우를 구하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커리어에 어떤 위험이 따를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우려는 촬영이 끝난 뒤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 배우는 자신이 ‘극우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소속 에이전시에서 잘렸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출연을 결심해준 모든 배우들에게 — 그중 상당수는 ARD와 ZDF(독일의 공영방송) 드라마에서 얼굴을 알린 분들입니다 —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홀펠더: 영화를 위한 자금 조달도 쉽지 않았다고요.
카림: 맞습니다. 저는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영화 제작에 수십만 유로가 들었는데, 누구나 무료로 광고 없이 인터넷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유일한 수입원은 후원금뿐이에요.
홀펠더: 그동안은 다큐멘터리만 제작해 오셨는데, 이번에는 왜 극영화로 선택하신 건가요?
카림: 다큐멘터리보다 극영화가 형식과 풍자, 아이러니라는 표현 방식으로 이 주제를 더 깊고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홀펠더: 결과에는 만족하시나요?
카림: 그 질문에 명확하게 ‘예’라고 답할 감독은 없을 겁니다. 지나고 나면 항상 ‘이 장면은 이렇게, 저 장면은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죠. 더 많은 제작비가 있었더라면 60분짜리 영화가 아니라 90분짜리가 되었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만족하고, 제작사 없이, 거의 우리 스스로 이 프로젝트를 해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홀펠더: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카림: 저는 자신을 ‘민주적 저항의 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조지 오웰을 영감으로 언급하셨지만, 사실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바로 이 현실이에요.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 그리고 신문에서 읽는 기사들. 이 나라에서 얼마나 자주 칼부림과 강간이 일어나는지, 노인들이 생활고로 약간의 돈을 벌고자 병을 수집하러 길거리를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을 보세요. 독일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저와 우리 모두의 의무는 이런 문제들과 그 뒤에 숨은 좌파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홀펠더: 어떤 문제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카림: 차라리 문제가 없는 게 무엇인지 묻는 게 빠를 겁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세금을 해외로 퍼주면서 정작 이 나라 안의 사회적 빈곤 문제는 외면하고 있죠. 학교, 도로, 모든 기반시설은 낡아가고 있고요. 표현의 자유 상실과 치안기관의 정치적 악용 문제는 앞서 말씀드렸고, 대규모 불법 이민과, ‘잘못된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중세적 종교 규율과 같은 좌파들이 만든 규율에 아부하는 현상도 심각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
카림: 바로 그 질문을 3년 전 제 다큐드라마 『데카당스 – 환호하며 파멸로』에서 다뤘습니다. 문제의 뿌리는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68혁명 세대가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부터였죠. 녹색당이 의회에 들어오고, 이후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과거 급진좌파 인사들을 대거 정부에 끌어들였어요. 그리고 그 흐름은 앙겔라 메르켈의 재앙 같은 집권기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보수 진영은 이 독일파괴적 흐름을 저지할 기회를 놓쳤죠. 가끔은 정말 기적이 있어야 이 난장판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독일판 트럼프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저도 참 답답할 따름입니다.
홀펠더: 그런데 이제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카림: (웃으며) 아니요. 그는 기적의 반대입니다! 메르츠는 공식적으로 총리가 되기도 전에 스스로 자격을 박탈했죠 — 정말 대단한 사람이예요! 선거 다음 날 바로 국경 폐쇄 공약을 깨뜨렸고, 부채 억제 규정도 해산 의회와 함께 없애버렸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완전한 모독이죠.
홀펠더: 그렇다면 AfD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카림: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AfD를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아야 해요, 설령 그 때문에 저를 지옥으로 몰아낸다 해도요.
홀펠더: 하지만 비평가들은 AfD를 인종차별적이고 극우적이며 심지어 나치 정당이라고 보는데요.
카림: 그건 나치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끔찍한 조롱입니다. AfD는 나치 정당도 아니고, 인종차별이나 극우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독일을 사랑하는 이성적인 남녀들이 모여 있는 정당이에요. 지도부에도 훌륭한 인물들이 많고, 저 역시 그들 중 여러 명과 친분이 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AfD가 꼭 필요한 정치적 전환을 이뤄내길 바랍니다.
홀펠더: 평범한 시민은 이를 위해 일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카림: 침묵하지 않는 것. 우리는 우리의 조국을 지켜야 합니다. 자녀와 손주 세대에게 존엄과 안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물려줄 책임이 있어요. 그 기본권을 요구하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지금 보세요, 카니발이나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려 해도 철통 보안이 필요하잖아요. 이게 정상입니까?
홀펠더: 오스카 헬트의 주변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합니다. 독일 사회에 순응주의가 그만큼 강한가요?
카림: 다른 나라보다 더하거나 덜하지 않아요. 대중은 언제나 스스로의 해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그건 인간 본성이지요. “여러분은 잃지 않으려고 동참하지만 결국 다 잃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동참했기 때문이죠.” 오스카 헬트가 자신의 출판사 편집장 에바에게 그렇게 말하거든요.
홀펠더: 그러면 다문화주의나 기후 이데올로기의 지지자들도 진심으로 믿고 행하는 게 아니라는 건가요?
카림: 네. 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특정 주제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는지조차 몰라요. 단지 다수의 편에 서고 싶어할 뿐이죠.
홀펠더: 선거 결과를 보면 이 다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곧 판도가 바뀔까요?
카림: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물리적 생존이 위협받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대편은 법원, 시민단체, 특히 언론을 장악하고 있죠. 매일같이 사람들의 뇌를 세뇌시키고 있어요.
홀펠더: 그런데 이민 정책에 불만을 드러내셨는데, 정작 선생님도 한때 레바논에서 이민 오신 분이잖아요. 모순 아닌가요?
카림: 전혀 아닙니다. 저는 난민이나 망명자가 아니라, 정식 유학생으로 독일에 왔습니다. 부모님이 매달 350달러 — 당시 약 600마르크 —를 보내주셔서, 제 생활비와 등록금을 스스로 부담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첫날부터 이 사회에 통합되는 걸 당연한 의무로 여겼습니다.
홀펠더: 그런데 오늘날 이민자들은 다르다는 건가요?
카림: 완전히 달라요. 우선 이 사람들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오면서도 사회적 승인을 받습니다. 이게 잠재의식에 새겨지죠.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면 자연히 적응하려는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수는 아주 보수적인 문화권에서 와서 자신들이 배운 가치관을 고수하는데, 이게 우리의 가치관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백만 명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다 보면, 진정한 통합은 이뤄질 수 없어요. 사실 좌파와 녹색당 사회공학자들(Sozialingenieure)은 애초부터 진정한 동등한 통합을 원하지 않습니다.
홀펠더: 그게 무슨 뜻인지 좀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카림: 저를 예로 들죠. 통합이란 말과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남용되는데, 본래는 상호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저는 이 나라에 저만의 문화적 자산으로 기여하고, 동시에 이 나라의 문화를 통해 제 자신도 풍요로워지는 거죠. 그게 동등한 관계예요. 그런데 좌파와 녹색당은 저를 피해자로 만들고, 그들의 이념에 복종시키려 해요.
홀펠더: 그 이념과 처음 충돌한 게 언제였나요?
카림: 대학 졸업 후 공영방송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저는 동료들에게 인기 있는 기자였고, 전 세계를 다니며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 오스카 헬트처럼 더 이상 그 거짓말을 견딜 수 없게 되어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어요.
홀펠더: 어떤 거짓말이었나요?
카림: 저는 더 이상 피해자 역할을 연기하는 것과, 다문화주의 깃발을 드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다문화주의는 처음부터 무슬림 문화가 핍박을 받고 있다고 전제하며, 이들을 지원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을 피해자로 보며 이들이 독일 사회에서 이슬람화 문화를 확장하는 것을 지원한다).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실직했습니다.
홀펠더: 후회는 없으신가요?
카림: 쉽진 않았어요. 제 결혼식 증인은 저를 외국인 혐오자라며 연락을 끊었고, 제가 늘 가던 단골 술집 주인은 저를 출입금지시켰습니다. 하지만 후회? 없습니다. 조국을 떠날 때, 저는 스스로 붙잡을 닻이 필요했어요. 그게 바로 제 자존심이었고, 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였기에 위기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 속 오스카 헬트와 달리 제 가족은 늘 제 곁에 있어 줬습니다.
홀펠더: 그런데 왜 레바논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나요?
카림: 독일이 저의 조국이 됐습니다. 제가 지키고 싶은 가치들의 고향이에요. 저는 여기서 삶을 마감할 겁니다. 독일은 늘 멋지고, 민주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안전한 나라였고, 훌륭한 국민이 있는 곳이었어요. 이런 나라를 위해 — 평화적으로 — 싸울 가치는 충분합니다. 저는 독일을 사랑하는 레바논 출신의 애국자로, 이 나라에 남아 충성을 지켜온 걸 기쁘게 생각합니다.
임마드 카림(Imad Karim, 1958-): 전직 WDR 기자로, 공영방송에서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ARD Civis-Preis 등을 수상했다. 1958년 베이루트 태생으로, 1977년 독일로 건너와 베를린, 마인츠, 만하임에서 미디어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독립 저널리스트 겸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 최신작 **《졸지에 국가의 적이 되다》**은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되어 있다.
www.imad-karim.de
www.ploetzlich-staatsfeind.de
https://www.youtube.com/watch?v=vCzEQy-u4C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