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주는 매년 야외예배를 드린다. 항상 장소는 동일하다. 강원도 변화산 수양관이다. 수양관이 있어 장소 걱정없이 언제나 편하게 사용한다. 이것도 참 은혜가 된다.
매년 야외 예배를 나오는 이유가 있다. 성도들에게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밖을 나온다는 것은 불편함이 있다. 익숙함을 내던지고 불편함을 선택할때 추억이란 선물을 얻는다. 그 선물들이 쌓여 가는 것이 삶이다. 신앙공동체는 함께 불편함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채워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의 쌓임이 그 공동체의 역사가 된다.
주일 오후 아버지(최우용 원장)가 일생동안 수양관 정상에 작은 기도굴을 짓고 기도하셨던 움막에 올라갔다. 이 움막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갔다. 아버지가 소천한지 15년 그 이후 아무도 그곳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런데도불구하고 기도의 흔적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아버지는 산 위에서 기도하셨던 이유는 모세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모세가 느보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주님의 나라에 갔던 것에 깊은 영감을 받는 것 같다. 또 하나는 산 정상에 올라가면 시야가 확 트이고 하늘과 더 가깝기에 응답도 더 빨리 받을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했던것 같다. 그리고 정결한 마음으로 그곳에서 나라와 민족과 성도들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분이 할 수 있는 사역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평생 기도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주님의 때에 부르심을 받았다. 그곳에 믿음의 지체들과함께 올라갔다.
나도 개척시무한지 벌써 25년이다. 아직도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며 토평동 허허벌판에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서성이며 있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어제는 일찍 잠들었다. 그리고 숙면을 취했다. 산골짜기라 그런지 산소가 맑아서 이곳에서는 2, 3시간만 자면 모든 피로가 싹 풀린다.
강원도 산골짜기 수양관의 새벽은 신선한 공기와 함께 약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산바람과 맑은 공기가 어우러져, 육신과 영혼이 함께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조용한 새벽, 주의 성전에 앉아 기도하며 오늘 하루를 주님께 온전히 맡긴다.
“주님, 나의 영혼을 깨끗이 소생시켜 주시옵소서.”
새벽에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고요히 기도하는 이 순간, 세상의 명예나 부, 욕심은 모두 사라지고 내 마음은 한없이 청결해진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주님 앞에 사역자로 서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고, 맡겨주신 다양한 사역이 있다는 것 또한 큰 감사의 이유이다.
더이상 바랄 것도 없다. 그 이상은 부질없는 욕심처럼 느껴진다. 새벽을 깨우고 주님께 드리는 이 시간은 불평이나 불만이 아닌, 오직 ‘감사’로 내 안이 채워지게 된다.
다윗도 평생 새벽을 깨우며 감사의 문을 열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했다.“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이다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5:3).
예레미야애가에 보면 하나님의 자비와 성실하심이 새벽마다 새롭게 임함을 고백했다.“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가 3:22,23).
예수님도 새벽을 깨워 하나님앞에 서 있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예수님은 바쁜 사역 가운데서도 이른 새벽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그 새벽 기도는 하루의 방향을 잡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일화가 있다.“나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이 시간은 세상의 소음과 유혹이 사라진 고요한 시간이며, 하나님과 내 영혼이 가장 깊이 만나는 시간이다. 그 어떤 일보다 먼저,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존 웨슬리의 일기와 설교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는‘하루를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확신다. 그는 기도 없는 활동을 “헛된 분주함”이라고 했고, 그 분주함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새벽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성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는 고대 교부이자 『고백록』(Confessiones)의 저자. 기독교 사상의 기초를 놓은 신학자이자 철학자다.
어거스틴은 하나님과의 내밀한 교제를 중시하며, 이른 시간의 기도와 묵상을 통해 영혼이 새로워진다고 고백했다. 그의 대표작 『고백록』에는 이런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주님을 찾을 때 주께서 먼저 나를 찾으셨고, 내가 깨어 있을 때 주께서 나를 먼저 깨우셨습니다.”(『고백록』 제10권 中).“주여, 나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당신을 부르오니, 이 아침에 당신의 빛이 내 마음에 비추소서.”
그에게 있어 새벽은 영적 감각이 열리는 시간, 내면이 정결해지는 순간, 하나님의 진리를 직면하는 은혜의 시작이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새벽 기도로 회심했고, 이후 수도사들과 함께 하루의 시작을 기도와 묵상으로 열었으며, 특히 시편 63편“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시63:1)을 새벽기도의 본문으로 자주 인용했다.
어거스틴은 “시간의 첫 열매”를 강조했다.“하루 중 가장 첫 시간을 주께 드리라. 이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며, 영혼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귀한 때이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신앙은 이후 베네딕트 수도 규칙(Rule of Benedict)과 개신교 경건주의 영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편을 자주 읽는 것 같다. 이제 조금 시편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맑은 영혼의 소리가 들린다. 시편을 묵상하다보면 시인의 강렬한 울부짖음과 잔잔하고 아름다운 고백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한 절, 한 문장, 한 단어에 꽂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내 영혼을 은혜로 채워준다. 이것이 말씀이 주는 영적에너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