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섭 선교사】 선교는 이벤트가 아니다

  • 입력 2025.06.1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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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섭 선교사 / 현 감리교 목사, 민다나오 선교사, 전)필리핀국제대학 교수, 사단법인 국제희망나눔네트워크 필리핀 단장, 본헤럴드 객원기자
오준섭 선교사 / 현 감리교 목사, 민다나오 선교사, 전)필리핀국제대학 교수, 사단법인 국제희망나눔네트워크 필리핀 단장, 본헤럴드 객원기자

“선교는 그 땅에 잠깐 다녀오는 일이 아니라, 그 땅에 뿌리내리는 일입니다.”

이 말은 제가 현장에서 자주 떠올리는 문장이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사역하며, ‘지속 가능한 선교’에 대한 갈증은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선교에 대한 열정이 큽니다. 여름마다 단기 선교팀이 해외 곳곳으로 흩어지고, 찬양과 율동, 봉사와 전도로 복음을 전합니다. 때론 현지인들이 큰 감동을 받고 눈물 흘리는 모습도 봅니다.

하지만 현장 사역자 입장에서 보면, 단기 선교는 빛과 그림자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준비 없이 방문하는 팀,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진행되는 프로그램, 그리고 무엇보다 ‘선교’가 마치 짧은 체험이나 이벤트처럼 소비되는 모습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런 사역은 때로는 현지 교회의 사역 리듬을 흔들고,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보다 ‘선물’이나 ‘구경거리’의 인상을 먼저 남기기도 합니다. 저는 실제로 “언제 또 한국팀 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 선한 열정이 과연 어떤 열매를 남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선교의 본질은 ‘함께 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언어를 배우고, 현지 음식을 함께 나누고, 기쁨과 아픔을 함께 겪으며 신뢰를 쌓아가는 것. 이 과정은 느리고 때로는 지루할 만큼 평범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피어나는 복음은 강력하고, 깊으며, 오래갑니다.

UMC연회에서 특송을 하고 있다.
UMC연회에서 특송을 하고 있다.

저는 필리핀 안티폴로에서 태권도를 통해 청소년들과 만나고, 매주 제자훈련과 말씀 공부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운동만 하던 아이들이 언제부턴가 자발적으로 예배를 준비하고, 동네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삶 속에서 스며드는 변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열매입니다.

이러한 사역들은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현지 리더들이 중심이 되고, 지역 교회와의 연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지속 가능한 선교란 결국 ‘현지인이 주체가 되는 선교’이며, 외부에서 잠시 돕는 사람이 아닌 ‘함께 길을 걷는 동역자’가 필요한 사역입니다.

단기 선교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열정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열정이 ‘지속적인 관계와 현지 중심 사역’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선교가 깊어지고, 복음이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민다나오 UMC연회 참석한 목사들과 전도사들.
동민다나오 UMC연회 참석한 목사들과 전도사들.

한국교회가 이제는 단순히 ‘파송하는 교회’가 아니라, ‘동행하는 교회’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선교지의 상황을 듣고, 사역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필요에 따라 함께 울고 웃는 교회. 그런 교회가 늘어날수록, 선교는 이벤트가 아니라 삶 자체로 이어지는 복음의 여정이 될 것입니다.

선교는 빠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 사람의 인생이 변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그 기쁨은, 단기 체험이나 사진 한 장보다 훨씬 더 크고 깊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선교에 대해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벤트가 아닌, 삶으로 이어지는 선교의 길로 함께 걸어가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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