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초대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사도행전 2장 42절 말씀이다. 첫 번째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받다는 말은 지적인 동의만이 아니라 마음 깊은 감동과 삶으로 말씀을 받고 실천했다는 말이다.
두 번째 초대교회의 교회다움의 회복은 “서로 교제하고”라는 말씀에 있다. 성도의 교제가 교회의 공동체 회복의 본질이다.
교제(κοινωνία, koinonia)는 헬라어로 코아노니아인데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교제는 “단순한 사교적 만남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나누는 영적 연합”을 뜻한다.
라틴어 성경(Vulgata)에서 koinōnia는 communio(공유+나눔)로 번역한다. 여기서 파생된 영어 단어가 communion이다.
koinōnia는 영어로 fellowship과communion 번역된다. fellowship(동료관계, 함께하는 삶)은 관계성, 우정,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communion(공유, 나눔)는 “깊은 영적 교통과 연합, 성만찬(holy communion)의 의미로 연결된다.
koinonia는 한국어로 교제로 번역한다. 交(사귈 교) + 際(사이 제)다. “서로 사귀고 관계 맺는 것”이란 의미이다. 교제의 일반적 의미는 인간관계, 친분을 맺고 사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교제라는 언어를 교회에서 사용할때는 “단순한 인간관계를 넘어, 성령 안에서 말씀과 사랑을 중심으로 나누는 영적 교통”을 뜻한다.
1. 교제는 교회의 본질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9절에서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koinonia)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말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이 모인 공동체다. 그렇기에 성도끼리의 교제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다.
요한일서 1장 7절도 이렇게 증언한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koinonia)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즉, 하나님과의 교제가 곧 성도 간의 교제로 이어지는 것이며, 교제를 떠난 교회는 더 이상 교회일 수 없다.
2. 교제는 신앙을 지탱하는 힘이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은 이렇게 권면한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성도의 교제는 신앙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혼자서는 쉽게 지치고 넘어지지만, 함께 모이고 나누며 격려할 때 믿음을 끝까지 지켜갈 수 있다.
전도서 4장 9–10절도 같은 원리를 가르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교제 없는 신앙은 고립된 신앙이고, 고립된 신앙은 쉽게 무너진다.
3. 교제는 세상에 대한 증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성도의 교제는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강력한 복음의 증언이다. 교회 안에서 참된 사랑과 나눔이 이루어질 때, 세상은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목격한다.
초대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재산을 서로 나누고, 가진 것을 공유하며, 기쁨과 고난을 함께 나누는 그들의 교제는 세상에 충격적인 증거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다(행 2:44–47).
4. 교제를 통한 교회다움의 회복
코로나 이후 만남을 통한 교제보다 비대면(카톡, 메시지)으로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은 풍성해졌지만 교제가 약화되고 있다. 예배를 드리지만 서로 알지 못하고, 공동체에 속했지만 깊은 나눔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제 없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다. 교회다움은 말씀을 받음과 동시에 교제를 회복할 때 온전히 드러난다.
교제는 나눔이다. 물질의 나눔, 마음의 나눔, 시간의 나눔이 있어야 한다.
교제는 책임이다. 본문에도 “서로 교제하고”라고 쓰여 있다. 교제는 함께 하는 것이다.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서로의 짐을 져주는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교제다(갈 6:2).
교제는 증언이다. 세상이 교회를 볼 때, 교제 속에서 드러나는 사랑을 통해 복음을 보게 된다.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함으로 교회다움을 회복했다. 우리도 말씀으로 세워지고, 교제로 연결될 때,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교제의 구체적 방안]
●말씀 나눔의 교제
예배 후 소그룹이나 가정 모임에서 말씀을 나누며 서로의 삶과 연결하기.
“말씀을 듣는다”에서 끝나지 않고, 함께 받은 말씀을 어떻게 살아낼지 구체적으로 나누는 것.
●기도의 교제
서로의 기도 제목을 공유하고, 함께 중보하며 기도로 짐을 나누는 것.
사도행전 교회의 특징처럼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는” 공동체.
물질과 필요를 나누는 교제
사도행전 2:44–45처럼 재산과 소유를 나누며 부족한 자를 돌봄.
현대적으로는 구제 헌금, 사랑의 나눔, 어려운 가정 지원 등으로 실천 가능.
●섬김의 교제
교회 안에서 봉사(청소, 주방, 차량 봉사 등)를 함께 하며 서로 섬기는 삶.
“서로 짐을 지라”(갈 6:2)는 말씀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자리.
고난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교제
병든 성도를 찾아가 위로하고, 결혼·출산 등 기쁨의 자리를 함께 축하하는 것.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롬 12:15).
●성찬을 통한 교제
떡을 떼며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는 가운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
성찬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서로가 한 몸임을 확인하는 교제의 자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