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31), 교회다움의 회복(1)_“사도의 가르침을 받아”-행2:42

  • 입력 2025.08.26 07:29
  • 수정 2025.08.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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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오순절 성령의 놀라운 초자연적 사건으로 인해 초대교회에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는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너희들이 죽인 예수가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말한 바로 구원자 메시야라고 선포했다. 베드로의 메세지는  아주 분명하고 단호했다.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이 강력한 선포로 그 날에 3천명이 세례를 받았다. 교회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놀라움과 기적으로 교회는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성령의 능력이다.

주님앞으로 돌아온 초대교회 새가족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 짧은 구절 속에는 교회의 본질, 곧 ‘교회다움’의 회복을 위한 중요한 원리들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 오늘은 특별히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는 부분에 집중하려 한다.

 

1. 사도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사도들의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의 진리를 선포한 것이 바로 사도적 가르침이었다. 교회의 첫 성도들은 이 가르침에 마음을 열고, 단순히 듣는 데 그치지 않고 받아들이며 삶으로 순종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동일하다. 교회다움은 복음 위에 세워진 가르침을 붙드는 데 있다. 세상의 사상과 철학은 시대마다 변하지만, 사도의 가르침 곧 말씀은 영원하다. 교회가 다른 무엇보다 말씀을 중심에 둘 때, 비로소 교회는 교회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

 

2. 가르침을 받는다는 의미

본문은 단순히 “사도의 가르침을 들었다”가 아니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헬라어로 “받다”(δέχομαι dechomai)라는 표현은 “단순히 손으로 잡는 물리적 행동을 넘어서, 마음의 문을 열어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삼는 영적 태도와 자세”를 말한다.

라틴어 성경(Vulgata)에서도 “받다”(accipere, suscipere, recipere)라는 단어는 풍성하게 표현하고 있다. “수동적으로 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붙잡아 자기 것으로 삼는다”, “말씀을 받는 것은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그 말씀을 내 인생의 책임으로 짊어지는 행위”, “말씀을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내 안에 품고, 내면화하여 삶으로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지식으로만 머리에 두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듣는 것은 많다. 매주 설교가 방송과 유튜브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듣는 사람이 많지만, 말씀을 받는 사람은 적다.

주일마다 설교를 듣지만, 그것이 삶의 가치관과 선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말씀은 머리에만 머물 뿐이다. 교회다움의 회복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 즉 순종에서 시작된다. 왜 말씀을 받는다는 것이 중요한가?

말씀을 듣는 것과 받는 것의 차이가 있다. 듣기만 하면 머리에만 머물고,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마치 씨앗이 길가에 떨어져 새들에게 빼앗기는 것처럼(마 13:19), 말씀은 귀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말씀을 받는 자는 그 말씀을 마음에 심고, 그것을 삶의 기준과 선택의 근거로 삼는다. 그래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마13:23).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곧 순종이다.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받을 때에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행 17:11–12). 그들은 말씀을 지적 호기심으로만 듣지 않았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고, 그것이 진리인지 성경으로 확인하며 삶에 적용했다. 말씀을 받는 태도는 곧 겸손과 순종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내 생각, 내 계획 위에 두는 것이며, 그것이 곧 제자의 길이다.

말씀을 받지 못하면 변화가 없다. 많은 성도들이 설교를 듣지만 여전히 삶은 변하지 않는다. 왜 일까? 말씀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6장 10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하셨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기뻐하지 아니하니 그들에게는 그것이 책망을 받을 따름이라.”

말씀을 받지 않으면 말씀을 부담으로만 여기고, 결국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을 받는 자에게는 능력이 나타난다.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말씀을 받는 순간, 그 말씀이 나를 찌르고 변화시키고,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3. 교회다움은 말씀 위에서만 가능하다

초대교회가 핍박 속에서도 능력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건물이 크거나 조직이 잘 짜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말씀, 곧 사도의 가르침이 있었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말씀보다 전통이나 프로그램, 혹은 사람의 의견이 우선될 때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전략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며, 가르침대로 살아내는 공동체가 될 때, 세상 속에서 교회의 빛은 다시 밝게 드러날 것이다.

 

4. 적용과 결단

우리는 어떻게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첫째, 말씀을 배우는 예배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 신앙의 무너짐은 주일예배로부터 시작된다. 많은 성도들의 생각에 자리잡고 있는 가라지가 있다. 주일예배는 성장의 도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형식적인 예배로만 대한다. 주일예배는 종합선물세트이다. 주일예배는 기도, 찬양, 드림, 받음, 파송이 담겨져 있다. 주일설교는 양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교는 제자양육의 핵심이다. 성경공부와 말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설교가 곧 제자양육의 핵심중에 핵심이다. 이 사실을 놓치면 거의 바른 성장은 불가능하다. 주일예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간식정도로만 생각한다. 주일예배가 정식이고 성경공부가 간식이다. 예배는 공동체의 드림과 고백과 위로부터 받음의 결정체이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주일예배이다. 이 예배를 등한히 하고 신앙이 성장하고 바른 제자로 거듭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주일예배부터 복원하는 것이 성장의 지름길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시작된다.

둘째,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으라. 직장과 가정, 관계와 선택의 자리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를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

셋째, 말씀을 함께 나누며 살아내라. 교회 공동체가 말씀을 붙들고 서로 격려할 때, 교회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다.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흔들리지 않는 교회가 되었다. 오늘 우리도 말씀으로 돌아가야 교회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TBMC대표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TBMC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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