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9) “끝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행3:39)

  • 입력 2025.07.0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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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행 2:39)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는 강력했다. 설교의 말미에 뇌관을 터트렸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절). 무리들의 반응이 나온다,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 그러면 우리가 여떻게 해야 해야 하느냐? 복음의 핵심이 들어가면 사람들은 절규한다.

베드로가 처방전을 내렸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람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38절).

 

●약속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이 약속은..”

세상에는 수많은 약속이 존재한다. 그 약속이 지속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잊거나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그렇지 않다. “사람의 말은 바람과 같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바위처럼 견고하다.” 사람은 때때로 약속을 깨뜨리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입에서 나간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다. 그분의 성품에서 나온 신실함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진 구속의 역사에 기초한 신적 선언이다.

오늘 본문은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후, 베드로가 유대인 무리에게 선포한 복음의 핵심 중 하나다. 그 핵심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특정한 시대나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와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지목하며 복음의 보편성과 확장성을 강조했다.

 

(1)“이 약속은 너희와”

베드로는 단호하게,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눈앞에 있는 청중을 향해 선포했다. "이 약속은 너희의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단지 특별한 사도들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누구나 동일한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령의 선물은 예배당에 앉아 예배하는 분들에게나 혹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분들에게나 개척교회이든 큰 교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장소와 규모, 환경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예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다. 누구에게나 이 약속은 유효하다.

예수 이름을 믿는 자는 성령의 역사와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편애하지 않는다. 그분의 약속은 열린 약속이며, 지금도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들을 향해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

 

(2) “너희 자녀와”_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져야 할 약속

하나님의 약속은 세대 간의 단절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간절히 붙들어야 할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의 자녀들도 이 복음을 반드시 알아야 하고, 경험해야 한다. 교회는 단지 어른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녀 세대까지 품는 하나님의 가족이어야 한다. 믿음은 물려주어야 하고, 가정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밭이 되어야 한다.

“복음의 산(斷)”, 세대 간 복음의 단절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 중 하나다. ‘믿음의 계승’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단지 한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흐름이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막히는 중대한 영적 붕괴다.

복음의 산(斷)을 극복하기 위한 5가지 접근 방안을 제시했다:

-신앙 교육의 회복: 가정 중심의 영적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 교회는 부모가 먼저 복음의 교사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가정에서 말씀읽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문화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다음세대 언어로 소통하는 교회가 되라. 복음을 다음세대의 언어, 감성, 문화속에서 번역해 주어야 한다.

 

-어른들의 신앙이 살아 있는 본이 되라. 다음세대는 말보다 삶을 본다. 신앙은 정보로 전수 되지 않는다. 경외함으로 살아내는 삶을 통해 전이된다.

 

-공동체 전체가 자녀 세대를 위한 영적 부모가 되라. 나는 너의 믿음의 멘토다 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신앙의 본을 보이며 아이들을 축복해주고, 기도해 주는 ‘전 교회적 양육문화’가 필요

 

-복음을 ‘정답’이 아닌 ‘관계’로 전달하라. 다음 세대는 복음을 지식으로만 접하면 쉽게 흥미를 잃는다. 복음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만 살아난다. 그 관계의 매개는 사랑과 공감,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하나님의 언약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영원한 생명의 고리다. 그 고리를 우리가 붙들고, 우리 다음 세대의 손에 이어주는 일이야말로 지금 한국 교회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다.

필자 교회도 깊은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음세대를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진다. 다음세대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숙제이며 반드시 복음을 계승시켜주어야 할 책임이 부모세대에게 있다. 말씀에 “선생 되지 말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이 더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목회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요즈음처럼 힘들게 다가오는 경우가 없었다. 앞으로 더 심각하게 마음을 짓누를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보장된 임기를 중도에 포기하는 것도 다음세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 것이다. 아~~어찌하리요. 그럼에도불구하고 문제는 문제일뿐이다. 문제를 풀면 인생에 기적이란 이야기를 선물로 받는다. 그러나 문제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면 깊은 후회와 절망만 남는다.

 

(3)“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에게”_열방을 향한 복음

이 구절은 그저 거리상의 먼 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 아직 알지 못하는 영혼들, 멀리 있는 자들에게도 이 약속은 살아 있다.

여기서 ‘먼 데’란 단지 지리적인 거리만을 말하지 않는다. 복음과의 문화적 거리, 인종적 차이, 언어의 벽, 감정의 틈, 영적 단절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유대인에게 이방인은 ‘먼 데’ 사람들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는 누가 먼데 사람인가?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땅의 사람들,

●교회를 멀리 떠나버린 가족,

●신앙을 조롱하고 무관심한 이웃,

●교회 안에 있지만 마음이 식어버린 누군가

이들은 모두 오늘 우리의 ‘먼 데 사람’일 수 있다. 그렇기에 복음은 멈추면 안 된다. 우리가 멈추면, 누가 그들에게 다가가겠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은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의 역속은 언제나 유효하다.

 

●결론_우리에게 주신 사명

사도행전 2:39은 구속사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본문이다. 단회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역사 속에서 세대와 민족을 넘어 계속 이어져 가는 약속이다.

오늘 우리는 이 약속을 받은 자인가? 그렇다면 이 약속을 나는 지금 누구에게 전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그 약속은 나에게서 시작되어, 나의 자녀에게, 이웃에게, 그리고 먼 데 사람에게로 이어져야 한다. 오늘 우리가 그 통로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약속을 전하는 자가 되자. 이것이 우리를 먼저 부르신 주님의 뜻이다. 거룩한 사명은 쉼이 없이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필요한 이유이다.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TBMC대표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TBMC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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