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목사]겨자씨와 환대의 그늘

  • 입력 2025.09.07 23:22
  • 수정 2025.09.07 23:42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은 시작에서 피어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듯, 작은 헌신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된다. 마태복음 13장은 천국의 비밀을 설명하는 비유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 겨자씨 비유는 신앙의 여정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선명히 보여준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1–32).

 

작은 시작, 큰 역사의 씨앗

겨자씨는 지름 1~2mm 남짓한 작은 씨앗이다. 그러나 자라면 몇 미터에 이르는 큰 나무가 된다. 작은 것이 자라 큰 역사가 되는 이 원리는 곧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다.

세상은 크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작은 것, 아브라함 한 사람부터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모든 것을 거셨다. 그 작은 공동체는 훗날 세상을 뒤흔드는 복음의 군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작은 시작을 멸시하지 않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씨앗의 신실함을 통해 열매를 거두신다.

 

작은 성실이 큰 유산을 만든다

예수님은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라”(마 25:21)고 말씀하셨다. 작은 성실은 결국 큰 유산이 된다.

1929년, 미국의 작은 청소업체 ServiceMaster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람을 섬기자”는 다짐에서 출발했다. 평범한 청소조차 예배로 드리던 이 정신은 기업의 원칙이 되었고,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작은 헌신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작은 것들

성경은 작은 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를 증언한다. 모세의 나무 지팡이는 평범한 목자의 지팡이다. 이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는 권위의 도구가 되었다. 다윗의 물맷돌은 아이들의 장난감 같은 돌멩이다. 그런데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승리의 무기가 되었다. 소년의 도시락은 보잘것없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불과하다. 그 도시락이 주님손에 주어졌을때 수많은 무리를 배부르게 하는 기적의 도시락이 되었다.

이 모든 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하나다. 작은 것은 그저 작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더 이상 작은 것이 아니다.

 

환대의 그늘이 되는 신앙

하나님의 나라는 넓게 그늘을 만든다. 마침내 나무는 쉼과 피난처가 된다. 자기만을 위한 나무가 아니라 다른 생명을 품는 나무가 된다.

겨자씨 비유의 마지막 장면은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는 그림이다. 그 가지에서 쉬는 것이다. 이것을 환대의 그늘이라고 한다. 나만 잘 되는 믿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쉬어가는 믿음, 이것이 성숙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그늘의 역할은 분명하다. 그늘은 쉼과 보호의 자리다. 사막 같은 광야에서 그늘은 생명과 직결된다. 시편 기자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리이다”(시 57:1)라고 노래했다. 그늘은 안전과 평화의 공간이다. 해의 뜨거움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된다.

성경적 환대는 단순한 손님맞이가 아니다. 낯선 자를 품는 것이고(히 13:2), 다름을 포용하는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함께 밥을 먹지 않았지만, 환대는 서로 다르더라도 같은 식탁에 앉는 포용으로 드러난다. 강자와 약자가 구분되는 사회에서도 모두 함께 자리에 앉는 것이 환대다. 거부당한 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환대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멀리했지만, 예수님은 달랐다. 주님은 그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셨다. 환대는 곧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는 구체적 행위다.

“환대의 그늘”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쉴 수 있는 자리다. 내 나무 아래 피곤한 자가 앉아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다. 경쟁과 비교, 거절의 세상 속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안전한 품이다. 새들이 와서 깃들듯 크고 작은 존재가 함께 머무르는 차별 없는 조화다. 교회와 성도의 삶은 세상 사람들에게 쉼을 주는 그늘이어야 한다는 사명을 지닌다.

성경의 상징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새들이 깃든다’는 표현은 곧 “나를 넘어 열방과 이웃을 품는 그늘”을 의미한다. 예언서들은 큰 나무 가지에 새들이 깃드는 그림을 열방이 그 그늘에 모이는 장면으로 사용했다(겔 17:23; 31:6).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 역시 그 연속선상에 있다.

겨자나무의 그늘은 곧 복음의 환대다. 건강한 성장은 품는 능력으로 드러난다. 내 믿음의 나무 아래에서 지친 가족이, 낙심한 동료가, 교회의 다음 세대가, 아직 믿지 않는 이웃이 쉬어갈 자리가 열린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성장이다. 성장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그늘이다. 하나님 나라의 큰 나무는 결국 “누군가 와서 쉬어도 되는 자리”를 만든다.

 

오늘의 우리의 겨자씨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작게 시작되지만 깊이 뿌리내리고, 크게 가지를 뻗으며, 마침내 환대의 그늘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물맷돌, 소년의 도시락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역사를 바꾼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하나님께 드릴 겨자씨가 있다. 바쁜 일상 속 짧은 기도 10분, 누군가를 위한 작은 격려의 말 한마디, 믿음으로 드린 소박한 헌신이 바로 그것이다.

이 겨자씨는 교회 안에서 드려지는 묵묵한 봉사로 나타난다. 이름 없이 교회를 청소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며,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이루신다.

이 겨자씨는 가정 속에서 드러난다. 식탁에서 함께 드린 짧은 기도, 가족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자녀에게 전하는 한 줄 말씀 속에서 믿음은 대를 이어 자라난다.

이 겨자씨는 직장 속에서도 살아 있다. 정직하게 일하고, 동료를 위해 기도하며, 작은 친절로 동료의 마음을 세우는 순간, 직장은 하나님 나라의 현장이 된다.

그 작은 씨앗이 주님의 손에 올려질 때 더 이상 작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큰 나무로 자라 타인을 품는 환대의 그늘이 되고,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TBMC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