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목사님은 약 15년간 카메룬 등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선교사로 헌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교사로 섬기신 이야기와 15년 선교사역에서 중점적으로 하신 일들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국내 농어촌 선교로 사역을 전환하신 배경을 알 수 있을까요?
A. 제가 아프리카선교를 지원하게 된 동기는 우연한 기회에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사역하는 평신도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 선교사님이 선교센터가 없다고 해서 “온누리아프리카선교센터”를 건축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13년간 선교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3년간 사역으로 원주민교회 30개 건축, 선교센터 2개 건축, 신학교 건축, 추장 마을 집 건축 등 하였으며 아프리카 카메룬의 윤원로 선교사의 제자인 제르베 목사를 부르키나파소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수년간 지원했습니다.
이것은 최초로 아프리카 목사를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한 사례입니다. 그리고 이후 윤원로 선교사를 서부 아프리카 선교 디렉터로 세워서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말라리아로 죽을 고비를 두 번씩이나 경험하면서 언제 죽음 당할 지 모를 상황이었고 잠은 땅바닥에서 자면서 불같이 뜨거운 날씨에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목회하는 원주민 목사들을 만나면서 선교의 줄을 끊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하나님께 붙잡혀서 아프리카 땅을 품게 된 것입니다.
이후 총회 농어촌부 부장을 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농어촌교회와 목회에 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현재 성결교회는 2,890개이며 그 가운데 890개가 농어촌교회인데 75% 미자립교회입니다. 또한 그중에 40%는 생계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앞으로 이 비율은 늘어날 것입니다.
목사들은 생계조차 어려운 상황이라 목회를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파서 그냥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어촌선교연합회”를 창립하여 “농촌목회컨퍼런스” 매년 실시하였고 지난 10년간 목회 현장을 다니며 정책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Q2. 저는 감리교 목사로 25년 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며 석사 학위 논문을 ‘농촌목회’에 대해 쓴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저처럼 농촌목회에 관한 논문을 쓰신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농촌목회학>이라는 학위과정이 따로 있지는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서울신대 내에 농촌목회학 과정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업을 듣고자 하는 학생들이나 교수 운영 등 어려움이 있을 걸로 생각되는데 혹시 <농촌목회학> 과정을 세운 이유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A. 현재 한국교회의 목사, 전도사들이나 신학생들은 지방 교회 특히 농어촌교회는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현실을 조사하면서 지방 교회는 목회자 수급 문제가 심각한 것을 파악하고 그 대안으로 아예 신학대에서 농촌목회자 사명자를 양성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정책을 논의하자 모두가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했고 심지어 신학교 총장도 어려운 문제라고 하였지요. 그래서 총장에게 제안하기를 “재정과 운영은 내가 책임지겠다. 학교 재정은 쓰지 않겠다 또 교수 사례비를 안 받겠다. “농촌실천목회”를 개설만 해 달라“고 하여 MOU를 체결하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신학대학교의 목회자 양성 교육에서 “실천목회교육”이 아주 중요한데 이 중요한 분야가 목회 현장 중심 보다는 이론교육으로 진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신대원 M.Div 대상으로 3년간 농촌목회 사명자 양성 교육을 하고 있으며 매 학기에 선착순 20명에 전학생들에게 장학금 50만 원 지급하고 실천 목회 위주로 강의하며 2번은 “농촌 목회 현장 탐방”을 하면서 목회 현장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인센티브로 목회에 필요한 ‘노인 돌봄 생활지원사’, ‘병원 동행 매니저’ 라이센스 두 개를 취득하게 합니다.
학생들은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첫째, 매주 평생 목회로 목회 노하우가 있는 목사님들을 만난다는 기대감과
둘째, 학기 중에 농촌목회 현장 탐방을 가서 놀라운 현장으로 감동 받습니다.
Q3. 지난해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샤스타 기독교대학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아 언론에 보도된 바 있는데, 샤스타 기독교대학의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가 주는 의미를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A. 샤스타대학 부총장에 의하면 제가 농어촌교회 살리기 인재 양성과 지역 마을 살리기 운동이 본 대학의 교육이념과 일치하는 좋은 사례이기에 명예 인문학박사 학위를 제안받았지요.
사실은 목사에게 영성 다음으로 인문학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목회에 영성의 중요성은 강조하는데 목사의 인성의 중요성은 강조하지 않는 것이 실상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목회 현장에서 목사들은 성품과 인성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상당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요.
따라서 목회 지망생들에게 인성과 영성을 동시에 겸비해야 하는 필요성의 인식하고 “인성에서 영성으로” 교육 주제로 목회자가 겸비해야 할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교육합니다. 그래서 인문학박사 학위가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Q4. 2023년 보유하던 충북 보은군에 있던 땅을 교회개척훈련원에 기증한 일이 있었는데, 무상임대나 대여가 아닌 소유권까지 넘기며 땅을 기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A. 이 땅은 제가 목회 은퇴비를 받아서 사 놓은 것인데 은퇴 이후 생활비로 사용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받은 것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평생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는데, 가진 것을 깨끗이 바치는 것이 진정한 은퇴라고 생각합니다.
Q5. 성결교단 농어촌선교위원회 위원장으로 교단과 농촌교회를 섬기면서 실질적이고 다양한 일들을 해 오셨습니다. 우선 그 사업과 일들에 대해 몇 가지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농어촌교회 가장 실질적인 자립을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셨는데, 지역사업을 주도하는 농어촌교회는 어떤 교회를 말하나요?
A. 농어촌교회의 자립을 위한 단계를 구조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1) ‘정주목회’로 그 마을에 주민이 되어 완전 정착 것
2) ‘영농목회’로 농사로 마을주민들과 소통하는 것
3) ‘마을 전수조사’를 실시하여 마을에 관한 세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
2단계
4) 그다음 ‘마을 봉사’를 실시하는 것.
마을 청소나 의료 봉사, 농촌 일손 돕기, 마을사랑카페, 마을 음악회 등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마을 이장과 함께해야 합니다.
3단계
5) 마을소득사업, 마을만들기, 마을 발전사업, 마을 개선사업, 마을숙원사업 등을 실시합니다. (마을사업 프로세스는 별지)
3단계는 지자체에 사업제안서 제출하고 예산을 청구하여 진행합니다. 참고로 충남도는 48가지 마을사업과 재정을 지원하며 진행하고 있음.
이것이 “창조적 마을목회”입니다. 이제 농촌 마을 사업을 위한 재정은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시대이며 교회는 아이디어와 헌신을 하면 됩니다. 이 모든 사업을 목회 차원에서 목사가 마을대표자와 지자체 담당자들와 연계하여 주도하면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목사가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마을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농촌 목사는 농촌목회 마을 발전을 주도하고 교회를 자립시키는 “창조적 마을목회”를 해야 합니다
Q6. 농어촌 인구가 다문화 가정들의 비중이 커지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농어촌에 많아지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과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해 농어촌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A. 한국에 다문화인구가 250만 명입니다. 그 가운데 이주민이 100만 명이 넘었습니다. 현재 다문화 사람들이 전국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선교사역이 필요합니다. 특히 지역교회들이 다문화 선교 정책을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다문화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첫째, 한국교육, 한국문화교육, 한국역사교육 실시.
둘째, 한국문화탐방, 대학교 탐방을 실시.
셋째, 아동 돌봄센터 운영
넷째, 바이블아카데미 운영.
참고로 다문화아카데미 운영비는 각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Q7. 사실 농어촌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후원이 중요해 재정적으로 안정된 큰 교회가 맡아주면 좋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 중에 <평생 후원교회> 운동을 그것도 작은 교회가 앞장서도록 했습니다. 그 취지가 무엇인가요?
A. 현재 수많은 농어촌교회가 생계 문제가 해결 안 되는 여건에서 교회 존폐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목사가 목회를 포기하지 않고 교회를 지키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과 동시에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를 지키고 있는 목사들.......! 이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농어촌교회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 대형교회들의 성도들은 대부분 농촌 출신들이 많습니다. 즉 농촌교회 성도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도시교회의 부흥에 이바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시교회는 농촌교회에 은혜를 갚아야 하고 또 자립교회는 미자립교회를 돕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해외선교보다 국내 미자립교회를 우선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따라서 농어촌선교위원회에서 농촌교회의 자립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과 사업을 위해 평생 후원교회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1960년대~70년대 건축한 농어촌교회는 지금 낙후해 재건축해야 합니다. 도시 대형교회 건축비 조금만 절약해서 농촌교회 재건축을 생각하고, 대형교회 목회비 조금만 농촌 목사 목회비, 생계비를 생각해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즘은 도시 대형교회 목사들은 미자립 농어촌교회를 아예 방문조차 하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는 농촌목회 40년 동안 총회장이나 임원들이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는데, 제 손을 붙잡고 이렇게 오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Q8. 기후재난의 시대를 맞아 식량 안보가 국가 생존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한국교회가 무너진 한국 농업을 다시 세우는 일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A. 한국농업진흥청의 농업 기술개발은 세계적인 수준의 농업정책과 기술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농업정책기술을 농촌에서 추진할 자원이 없다는 것이 제일 심각합니다.
아직도 많은 농민이 재래식 농법 또는 전통식 농법으로 농사를 하는 것이 대부분 실정입니다. 그 때문에 목사들이 과학 농사의 정보와 기술을 배워서 마을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역할만 해도 큰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목사가 농업진흥청의 농업기술 전문가를 초청하여 마을에서 농업 세미나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작년부터 농어촌교회 수익사업을 위해 “약용수 엄나무 묘목”을 5천 주를 재배하였고, 내년에는 1만 주를 식재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먼저 검정해 본 후 권장 보급하려고 제가 먼저 식재를 하였습니다. 묘목재배는 계약재배이며 일이 적고 1년 키워서 납품하기에 수익성이 괜찮아서 영농목회 차원에서 목사가 해 볼만 합니다.
Q9. 농어촌교회 살리기 운동을 해 오시면서 가장 보람되었던 일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1) 교단 최초로 총회에 “농어촌선교위원회”를 탑재한 것.
2) 최초로 신대원에 “농촌실천목회”를 개설하여 농어촌목회 사명자를 양성을 하는 것.
3) 교단 최초로 농촌목회자 재교육을 위해 “로컬 미니스트리 아카데미”를 시작한 것.
4) 마을사업을 위해 “법인 농어촌성결협동조합”을 설립한 것.
5) 현재 “농촌목회연구소, 농촌목회연수원, 농촌목회진흥원” 등을 설립 추진 중입니다
Q10. 농어촌교회 살리기 운동은 교단의 전폭적인 협조가 있어도, 여러 부족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일하시면서 느꼈던 한계나 발전적인 대안이 있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A. 농어촌교회 살리기는 일은 일개 개인이나 몇 사람이 풀어 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적극적인 협조가 미미합니다. 목회 현장 중심의 정책을 만들어서 총회와 대형교회가 함께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그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농어촌교회가 침체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국가의 산업화 정책으로 농촌인구의 도시 유입입니다. 이것이 도시교회의 부흥의 한 원인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특히 도시 대형교회나 자립한 교회들은 농촌교회를 살리는 데 동참해야 합니다.
교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논의하며 풀어가야 합니다. 농촌교회와 작은 교회가 살아야 도시교회가 살고 교단이 삽니다.
저는 이에 관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1. 농어촌교회 선교비 지원을 수정하여 “도농상생결연”하여 맞춤 지원하면 농어촌교회를 살릴 수 있습니다.
2. 농어촌목회자는 기존 목회관을 바꾸어 이 시대와 현실에 맞는 목회 패러다임으로 “창조적 마을목회”로 재교육하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3. 신학교와 교단에서 농촌목회 전문가를 양성하면 농어촌교회는 살릴 수 있습니다.
4. 농어촌목사도 의존성을 버리고 자생정신과 목회사명감을 회복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목회, 목사를 목회하라]
Q11. 개인적으로 목사님의 버킷리스트나 은퇴 이후에 지속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A. 제가 지금까지 약 10년간 농어촌교회 살리기를 위해 외로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교파를 초월하여 목회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고심하고 연구하면서 암담하기도 하였습니다. 오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재정이 없는 것도 큰 애로사항이었습니다. 특히 사람은 많은데 손잡고 함께 일한 자원이 부족한 것이 제일 난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버티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농어촌목회를 지원하는 것도 내 목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내 목회에 마지막 사역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농어촌교회를 위한 작은 돌 하나, 기둥 하나라도 세워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농어촌교회를 위해 기둥 몇 개로 겨우 인프라를 구축한 것 뿐입니다. 이제 누군가 다음 선수가 지붕을 씌우고 인테리어하면 좋은 결과를 만들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으로 조금 더 할 수 있다면 “농촌목회 재교육 아카데미”를 활성화하고 “농촌 목회 진흥원”을 설립해서 농어촌교회를 위한 “콘트롤 타워”를 세우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퇴장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퇴장! 그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 손병수 목사
1. 서아프리카선교회 전 대표
2. 총회 농어농선교위원회 전 위원장
3.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특임교수
4. 로컬 미니스트리 아카데미 지도교수
5. 미국 심슨대학교 이사
6. 법인 농어촌성결협동조합 이사장
7. 한국사회공헌일자리운동본부 공동대표
8. 온누리교회 37년간 목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