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나캄 페아마이오 이르하츠 베담 하라샤)”(시58:10).
한로에서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으로 가는 날들은 조석으로 겨울의 추위를 느끼게 한다. 독감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건강함을 유지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세상은 정쟁(政爭)의 소리가 높고 경제 전쟁과 새로운 AI의 세계에 정보와 기술의 전쟁, 이념과 종교 및 테러와의 전쟁 속에서 혼돈하며 또 그로 인한 종말론적 세태가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과 시원한 복음의 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시편의 세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들려주어서 위로의 말씀과 소망을 가지게 한다.
시편 58편은 야웨 축제 즉위 시편으로서 여호와의 정의로운 통치와 다스림의 결국을 바라는 시편이다. “(다윗의 믹담(속죄)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멸망당하지 않게 하소서)에 맞춘 노래)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테다베룬 메샤림 티쉐페투 베님 아담)”(시58:1). 여기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다른 신들 사이에 긴장을 보여준다. 이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받는 불운한 사람들이 다른 나라와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자들과 관련하여 불의를 당하는 상황을 말한다.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바아레츠 하마스 예데켐 테팔레순)”(시58:2).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거대한 보이지 않는 악의 세력과 반면 적은 선한 세력이 대립하며 살아가는 영적 전쟁터라고 볼 수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백성의 존재와 다른 신들과 나라들의 세력이 대립하는 가운데 고난 당하는 이스라엘을 언급하고 있다. 이 다윗의 믹담시는 바로 의인의 고난과 고통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베피코 말테오트 케피림 내토쯔 아도나이)”(시58:6). 이 왕즉위 시편에서 그 신들은 점차적으로 약해지고 악의 적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물러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삭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니펠 에쉐트 발하주 샤메쉬)”(시58:7-8). 여호와가 구원을 행해주심으로 결국 심판을 받게 되도록 메시아로 오시고 그의 왕좌에 앉으셔서 다스린다. 이는 원시 시대 대양과 혼돈의 악의 세력, 마귀에 속한 신화의 모습을 보인다(창세기 1:2). 신들의 싸움, 신의 전쟁, 거룩한 전쟁은 용의 신화적 싸움의 신화를 보여준다. “그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라짜디크 아크 예쉬 엘로힘 쑈페팀 바아레츠)”(시58:11).
이 시편 58편은 탄식시(공동체, 민족)로서 시편 83; 80; 74; 44; 14편이 해당하며 탄식의 상황이 악인들의 압제와 궤계, 공격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상황이다. 이는 압제자의 신들에게 대한 탄식과 탄원의 기소 형태로 이인칭 복수 인칭을 보여준다.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악은 모태에서부터 떨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메라헴 타우 미베텐 도베레 카자브)”(시58:2-3). 이 탄식시편에서 적들의 거짓에 대한 불평과 저주를 발한다. “술사의 흘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로 이스마 레콜 미라하쉼 호베르 하바림 메후캄)”(시58:5). 악인들의 독은 저주요 악인의 눈과 질투의 생각, 조롱과 위협의 제스처 등 이방의 적들의 계획과 저주, 종교적 행위들이 악의 세력, 귀신들의 거짓과 속임 등을 말한다.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사무든지 불 붙는 나무든지 강한 바람으로 휩쓸려 가게 하소서(시로테이켐 아타드 케모 하이 케모 하론 이쉬아레누)”(시58:9).
악인과 강퍅한 사람들의 고집과 확증 편향의 자기 생각으로 말미암아 성령에 반하는 행동은 곧 강한 바람, 하나님의 영에 의해 사라지게 됨을 말하고 있다. 이 탄식 시편에서는 기도자와 적들의 파괴를 바라는 의인이 국가 탄식시에서 고대 저주의 형식을 사용하여 시를 표현한다. ‘이방 적들에게 부끄럼을 당하지 않게 해주소서 파멸하게 하소서’, ‘범죄자들이 스올(하데스)에 내려가게 하소서’, ‘여호와여 조롱하는 자들의 입술을 잘라주소서’ 등등이다. 이는 시편 58:5-10절이 세세하게도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시편 83:14-17절이 저주형식으로 모압 왕이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내용과 유사하다. 시편 58편의 탄식의 상황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대적자를 향한 저주가 저절로 입술에서 나오는 때에 우리는 십자가 사랑으로 축복함으로써 오히려 중보 기도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축복이 돌아오는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시편 109:17). “그가 저주를 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뼛속으로 들어갔나이다”(시109:17-18). 선교사의 삶은 이러한 탄식 상황에서 변하여 믿음으로 축복받으며 감사하며 산다. 이러한 찬양의 인생을 살아간 분이 계시다.
케이트 쿠퍼(Kate Cooper, 1886-1978, 거포계)는 평신도 선교사로 1908년 6월 뉴올리안즈에서 남감리회 해외 여선교회에서 파송받았다. 쿠퍼는 한국 원산 선교사로 이미 나온 마이어스 선교사에게 한국 교회 사정을 소개받고, 1905년 원산 부흥회 소식을 듣고 한국 사람을 품는 사랑을 가지게 되었고 1908년 선교사로 자원하여 들어온다. 그녀는 1908년 6월 25일 한국 선교사로 파송받 고 9월 1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으로 출발한다. 열흘 후에 고베항에 도착하여 2주일 머물다가 나가사키를 경유하여 10월 22일 부산항에 도착한다. 다시 배편으로 원산으로 향하였고 원산 선교부로 부임하여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원산 보혜여자관 사업을 맡아 여성을 위한 선교와 교육, 계몽 사업에 헌신한다.
쿠퍼 선교사는 원산에서 보혜 여자관 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다. 그녀는 두 채의 집을 신축하고 성경 학원을 설립하는데 경제적 지원을 한 콥의 이름을 따서 엘리스 콥 여자 성경 학원이라고 하였다. 이에 교육 활동을 정상화했고 이를 통해 많은 여전도인, 여성 지도자가 양성되게 되었다. 1926년 다시 큰 건물을 지은 후에 보혜 여자관이라고 명명하였고 1929년 4월 정규 과정을 마친 제1회 성경학원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그 후 1921년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춘천 여선교회 대회를 마치고 오던 중 장티푸스를 앓아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3차 안식년 기간이었던 1929년 5월 내쉬빌에 있는 스카릿 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1929년 한국에 돌아온 후 보혜 여자관 사업을 계속 맡았으며 부녀자들에게 영어, 재봉, 요리 등을 가르쳤고 어린이 휴양부(탁아소)까지 설치하여 아동 선교 사역도 함께 하였다. 1932년에는 만주 간도의 용정 여자 성경학원에서도 성경을 가르쳐 여자 교역자양성에도 헌신하였다. 1937년 강릉 지방 감리사로 취임했다. 그녀는 1938년 9월 24일 쿠퍼의 한국 선교 30주년 기념식을 원산 중앙 교회에서 가졌고 600명의 사람들이 모여 축하하였다.
1940년대 들어서 일제 탄압이 심해졌고 선교사들은 연금을 당하거나 함구령이 내려지게 되었다. 쿠퍼 역시 일본 형사의 감시를 받으며 지내야 했다. 미일 감정이 악화되었고 미국무성에서는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영사관을 통해 모든 선교사에게 귀국 명령이 내려졌다. 1940년 11월 하와이에서 미국은 한국을 향하는 배를 보내서 여자 선교사를 먼저 귀국토록 했다. 쿠퍼는 그 배를 타지 않았지만, 며칠 후인 11월 23일 다른 배를 통해 한국을 떠나야 했다. 그녀는 1950년에 일본 히로시마에 머물면서 한인 교회에서 설교하고 가르쳤다. 그녀는 1953년 다시 내한하여 감리교 신학교 내의 전수과를 설립을 위해 힘쓰는 한편 교수로 있었다. 대전 신학원이 설립되면서 감신 전수과 폐지로 대전 신학원 교수로 역임하며 신학 교육과 전도 사업을 하다가 1957년 은퇴하고 귀국하여 1978년 소천하게 된다. 그녀의 한국 선교는 여성 지도자를 양육하고 한국의 어머니가 되어, 여성의 리더십을 깨우는 영적 지도자의 세계를 열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