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한국의 여성 사역자 리더십을 세운 쿠퍼 선교사

  • 입력 2025.11.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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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 (440) - 구약성경과 선교 이야기 (252)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103:1).

날씨가 추워지면서 사람들은 이제 겨울옷을 입고 독감과 코로나 주사를 맞고 건강을 챙기는 모습이다. 아펙(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경주에서 모이면서 관세 전쟁을 선포한 트럼프 미 정상이 참석하여 세계는 이곳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이때 핵보유국 인정하고 나선 트럼프에게 미사일 시험으로 위협하며 협상에 응하는 유리한 입지를 가지려고 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의 자리가 가까이 온 듯하지만 여전히 전쟁과 갈등, 휴전국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하며 주님께 나가야 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103:2). 시편 103편은 다윗의 시로서 찬송시에 해당한다. ‘주여 나의 영혼을 축복하소서’라는 제목으로 신앙의 강력한 샘을 성서의 경건을 흐르게 하는 시편으로서 성서적 신앙의 나무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앙 꽃을 피우는 시이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시103:5-6).

하나님의 은총을 고귀하고 조용한 음조로 이 시편은 노래한다. 시와 삶에 풍요롭게 찬양을 읊으며 노래한다. “여호와는 긍휼히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시103:7-8). 이처럼 인생의 문제, 죄와 벌의 깊은 죄악의 삶과 파멸과 죽음, 병의 깊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죄를 계속하여 묻지 않고 은혜로 구속하며 긍휼하심으로 사하며 용서하는 역사를 보여준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딸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103:10-11). 대적자의 문제나 죄로 인한 고통을 겪는 시인의 경험에서 하나님의 은총이 마치 태양이 비취며 빛을 충만히 비춤같이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도록 이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2-14).

이 찬양시는 축제의 제의에서 보존되고 찬양의 인상적인 노래가 하나님의 다스림과 전지전능하신 통치의 은혜로움을 나타내며 영광스럽게 노래한다. 희년의 기쁨과 같은 즐거움으로 이 시편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하고 하나님 나라의 왕국의 증인으로서 모세와 예언자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거대한 라인(줄)의 증인을 포함하여 노래한다. 이 찬양시에서 ‘내 영혼아 이제 천지창조자를 찬양하라’는 싯구는 인상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찬양에서 메아리쳐서 들려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찬양 시편은 토라 시편의 중심을 언급하며 토라 시편의 중추적 뼈대(백본)를 상기하며 기억하게 한다.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시103:18).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103:20). 이처럼 찬양시이지만 이 시는 토라시를 강조하면서 찬양이 감사에서 다시 그분에 찬양이 돌려지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과 토라(율례, 법도)에 있음을 주장한다. 그래서 마지막 송축(베레카, 하나님을 축복 찬양할 수 있는 존재)할 수 있는 존재가 됨을 말한다. “그에게 수종 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시103:21-22).

이 시편 103편은 개인 감사노래로서 시편 102편과 반대로 조화되어 구성된다. 이전에는 인간의 나약성이 하나님의 권능 맥락에서 주어지고 이 시편은 주의 의지에 대한 감사의 차원에서 긍휼함이 있는 시편으로 구성된다. ‘나의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는 찬양의 부름은 자비로운 요청으로 시편 기자의 약함을 비추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있다. 이 시편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1-5절로 감사시의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치유하심, 둘째는 6-14절로 감사의 노래로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보이며, 셋째는 15-18절로 야웨와 지상의 존재들, 넷째는 19-22절로 야웨와 천제의 존재를 말한다. 여기서 송축한다는 말은 축복(브레스, 베레카)이라는 말로 사용되어 하나님께 축복의 영광을 돌린다는 말로 찬양, 송축을 말한다. 이는 최고의 찬양을 의미하며 ‘너의 모든 죄들을 용서하며 너의 모든 질병을 치유하는 자’라는 의미의 하나님에게 찬양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의 시편 기자는 질병에서 치유를 받은 상태에서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편 103편은 아름다운 찬야으올 감사하며 최근의 병 치유로 말미암아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고 과거의 자신의 나약한 것을 잊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개입을 통해 구원받을 필요성을 제기한다. 여기서의 하나님의 성품은 용서하심과 긍휼하심, 구속과 갱신, 은총에 있다. 이러한 축복의 인생을 살아간 선교사가 있다.

케이트 쿠퍼 (Kate. E. Cooper, 1886.6.25.-1978, 거포계)는 미국 조지아주 더글라스빌 근처에서 토마스 쿠퍼의 3남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침례교인이었고 어머니 도로시 쿠퍼는 감리교인이었다. 쿠퍼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감화와 교훈을 받아 자랐으며 날마다 성경을 읽으며 기도드리는 법을 어머니에게 배웠다. 아버지를 따라 침례교회를 가는 때도 있지만 대체로 어머니를 따라 더글라스빌에 감리교회를 나갔다. 그녀는 1901년 6월 초급 대학을 마친뒤 1903년 6월 웨슬리안 대학을 졸업하고 그 해 켈로덴 소학교 교사로 임명되었다. 1905년 애쉬번 소학교에서 3개월 가량 교사를 하던 중 스카릿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여기 신학교에는 대개 외국이나 국내 선교사가 되기를 자원하는 이들이 다녔으며 그녀는 교회사와 선교 사업에 관한 과목을 주로 배웠다.

그녀는 한국 선교에 대한 비전을 원산 선교사였던 마이어스에 듣고 도전받아 한국으로 오게 된다. 그녀는 원산에 와서 보혜 여자관 사업과 엘리스 콥 여자 성경학원을 운영하며 교육 선교 사역하였다. 사역을 확대하면서 그녀는 1932년 만주 간도의 용정여자 성경학원에서 성경을 가르쳐 여자 교역자 양성에 헌신하였다 1937에는 강릉지방 감리사로 취임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일본 순사의 눈초리를 피하여 사역의 확산과 분산 선교를 해야 하기에 사역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었다. 쿠퍼 선교사는 1940년 한국의 선교사 추방령에 따라 하와이로 갔다가 1940년 12월 9일 샌프란 시스코어 도착하였다. 그녀는 1941년 가을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하트포드 신학교에 입학했다. 이 때 쿠퍼의 나이는 55세였으나 기회만 있으면 공부하려고 했다.1942년 9월부터는 선교부의 부탁으로 뉴멕스코 알부컬크에 있는 감리교계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목원대학교에 조성된 '선교사의 길'에는 쿠퍼 선교사의 사역이 기념하고 있다.
목원대학교에 조성된 '선교사의 길'에는 쿠퍼 선교사의 사역이 기념하고 있다.

1945편 8.15 해방의 소식을 들은 쿠퍼는 다시 한국 선교지로 오고자 했으나 한국의 치안이 확보되기까지 여선교사를 한국에 보낼 수 없다는 방침에 따라 한국에 있는 교인들과 편지만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거포계(巨布計)선교사는 1947년 다시 내한하여 선교활동에 임하였고 그해 10월5일에 공산 정치를 피해 남하한 피난민을 모아 부인들 간의 구국 기도단을 만들기도 했다. 1948년 6월 25일 서울 충정로에 있는 감리교 신학교 대강당에서 한국 선교 40주년 기념식과 강연을 가졌다. 1949년 젠센 목사와 함께 이천읍에 있는 양정여학교 이사로 선출되어 학교 발전을 위해 활동하였다. 1949년 양정학교가 문교부에서 초급 중학교로 인가받을 때 설립자가 되었고 학교 설비와 비품 학생들의 학용품을 제공해주었고, 학생과 교사에게 설교하며 성경을 가르쳤다. 6.25 당시 전쟁으로 교사가 대파하였을 때에는 미군과 연락하여 교사 신축하였다. 쿠퍼는 한국의 고난의 역사가 함께 하며 동고동락의 선교사로서 전쟁 후에는 대전신학원 교수로 지내며 신학 교수를 하였다. 이천 수원 비장 전도 사업을 도우며 <가정 성경 공부>와 <매일 예배> 교재를 출판하며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1957년 은퇴 귀국하여 1978년 소천하였다. 짧은 인생의 삶에서 쿠퍼는 거포계의 이름으로 여장부의 선교 비전으로 한국의 여성 사역자와 리더십을 키우며 초기 선교의 밑거름을 놓았던 어머니 리더십을 가진 여선교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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