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니고데모’가 묻다: 인류는 다시 거듭날 수 있는가?

  • 입력 2025.11.16 11:33
  • 수정 2025.11.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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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의 홍수 속 ‘지혜의 가뭄’을 진단하고, 신학적 ‘거듭남’의 프레임으로 본 인류 생존의 세 가지 길

서론 — 밤에 찾아온 손님, 그리고 AI 시대의 새로운 질문

2010년 알파고가 인간의 직관을 무너뜨린 순간에서부터, 생성형 AI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인류 문명의 작동 원리 자체를 재편하는 새로운 ‘질서’가 되었다. AI는 계산, 분석, 정보 처리뿐 아니라 목회, 심리 상담, 창작, 기획에 이르기까지 인간만의 영역을 침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면서도, 그 의미를 해석할 ‘지혜’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다. AI가 만든 판단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블랙박스 사회, 판단 능력이 흔들리는 인간, 그리고 책임을 지지 않는 알고리즘이 결합하며 우리는 존재의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때, 2천 년 전 밤에 예수를 찾아온 니고데모의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지식·세력·명망의 정점에 서 있던 그는 ‘거듭남’이라는 새로운 실재 앞에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늙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오늘의 인류도 니고데모처럼, 압도적 초지능 앞에서 자신의 지식·경험·전문성·효율의 한계를 마주하고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지식의 홍수’ 앞에서 인간은 정작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AI는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거듭남(Rebirth)의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육으로 난 것’의 종말 — 효율성 패러다임의 붕괴

1) 노동 시장의 모래시계: 중간층 붕괴의 시대

AI 혁신은 노동 시장을 균등하게 변화시키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규칙 기반의 업무, 그리고 중간 관리자·데이터 분석가·화이트칼라 사무직의 상당 부분은 AI에 의해 가장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그 결과 노동 시장은 점점 ‘모래시계 구조’로 재편된다.

▶최상층(전략·설계·AI 개발)은 살아남는다.

하층(신체 노동·돌봄·현장 상호작용)은 당장은 대체 비용이 높아 존속한다.

그러나 중간층은 급속히 공동화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일자리 재배치가 아니다. ‘일의 본질’ 자체가 바뀌고 있다.

이제 인간은 기계를 감독·보완하는 존재가 아니라, AI와 협업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AI는 인간이 추구해 온 효율성·표준화·속도의 이상형을 완벽히 구현한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구축해 온 ‘효율적 인간 모델’ 자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2) 산업 시대 인간 모델의 죽음: ‘육의 패러다임’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여기서 ‘육’은 단순히 인간의 신체적 상태가 아니라, 낡은 패러다임 전체를 가리킨다.

산업 시대의 인간상은 다음의 가치에 의해 규정되었다.

효율성

생산성

표준화·규격화

정형화된 교육

서열 경쟁에서의 승리

이 인간 모델의 목적은 ‘더 빠르고 더 정확한 계산 기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AI는 인간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며, 더 많은 데이터를 기억한다. 즉,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완성형 육’의 모델을 AI가 완벽히 수행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위기는 단순한 직업 상실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온 자기 정체성의 붕괴—존재론적 폐기(Ontological Obsolescence)의 위기다.

“육을 조금 고친다고 영으로 날 수 없다.”

‘더 열심히’는 해결책이 아니다. 새로운 존재 방식, 새로운 패러다임—즉 거듭남이 필요하다.

거듭남을 향한 세 가지 실존적 전환

AI 시대 인류의 ‘세속적 거듭남’은 세 가지 길을 따른다.

이는 니고데모에게 주어진 신학적 거듭남의 길과 정확히 대응한다.

1) 첫 번째 길: 지적 겸손 — “나는 할 수 없습니다”

(1) 인간의 패배 인정: 겸손의 시작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인류에게 충격적 진실을 보여줬다. 인간의 천재성과 수천 년간의 경험은, 딥러닝 기반의 알고리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겸손이란 패배 선언이 아니라, ‘경쟁 모델’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존재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2) 경쟁에서 공존으로

AI 시대에 필요한 겸손은 이렇게 말한다.

▶“AI보다 빨리 계산하겠다”는 오만을 내려놓고,

AI를 협력자·증강 도구로 받아들이며,

AI가 하지 못하는 영역—맥락·비판·통찰·윤리—에 인간의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

즉, 겸손은 ‘계산의 노동’에서 벗어나 ‘사고의 활동’으로 돌아가는 선언이다.

이는 AI 시대 인간의 생존 전략이자, 인류가 ‘영의 존재’로 전환하는 첫걸음이다.

2) 두 번째 길: 가치의 회개 — “방향을 바꾸라”

(1) 회개는 죄책감이 아니라 ‘전환’이다

“회개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오늘의 회개란, 과거 200년간 인류가 붙들고 있던 ‘효율성·속도·경쟁’ 중심의 산업 시대 가치관을 씻어내는 행위다.

(2) 의미·관계·영성으로의 문명적 전환

하버드 성인발달 연구는 명확한 결론을 내린다.

인간의 행복과 건강을 결정하는 것은

돈·지식·명예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다.

WHO는 사회적 단절을 “신체·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새로운 전염병”으로 규정했다.

전 세계 ‘블루존’ 조사에서도 장수의 핵심 요인“이키가이(삶의 목적)”와 “공동체적 유대”였다.

즉, AI가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인간 고유의 가치—의미·관계·윤리·영성—이 더 중요해진다.

(3) 회개는 감상이 아니라 필수 전략이다

인류는 이제 다음 질문으로 방향을 튼다.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가?”에서 “왜 생산하는가?”, “어떻게 함께 사는가?”, “그것이 옳은가?”로.

‘회개’는 산업 시대의 끝이자, 의미 중심 문명으로의 전환 신호다.

3) 세 번째 길: 새로운 사명 —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1) AI 시대의 더 큰 위기: 목적 상실

AI가 인간의 많은 일을 수행하게 되면서 진짜 위기는 ‘실직’이 아니라 ‘의미 상실’이다.

기술은 “무엇을 할까?”는 알려주지만, “왜 하는가?”는 절대로 알려주지 못한다.

(2) 매슬로의 재발견: 인간의 최종 욕구는 ‘자기초월’

매슬로는 말한다.

인간의 최종 욕구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이다.

자기초월이 좌절될 때 인간은 ‘메타 병리(Metapathology)’에 빠진다: 삶의 의미·가치·기쁨이 사라지는 상태다.

AI 시대는 전 인류를 그 병리로 몰아넣을 위험을 가진다.

(3) 새로운 사명: 자기초월의 존재로 살기

‘거듭남’의 마지막 단계는 사명이다.

AI 시대 인류의 사명은 다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① 의미의 창조자(Meaning-Maker)

데이터를 지혜·통찰로 전환하는 능력.

경험, 맥락, 삶의 깊이는 AI가 흉내낼 수 없다.

② 윤리적 조율자(Ethical Governor)

AI가 인류를 해치지 않도록 투명성·책임성·공정성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역할.

③ 영적 탐구자(Spiritual Guardian)

공동체·용서·사랑·기도와 같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성 영역을 지키는 역할.

인류의 일은 사라질 수 있지만, 인류의 사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결론 — 바람처럼: 예측 불가능한 존재로의 거듭남

40년 된 솔개가 낡은 부리와 발톱과 깃털을 스스로 뽑아내야 새 삶을 얻을 수 있듯, 인류도 산업 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을 뽑아내야 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니라.”

거듭난 존재의 핵심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AI는 ‘예측 기계’다. 과거 데이터의 확률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인간은 가끔은 비합리적이고, 가끔은 데이터에 없는 길을 선택하며, 때로는 알파고도 예상하지 못한 ‘신의 한 수’를 둔다.

예측 불가능성—즉 자유·창의성·사랑·희생·초월이 AI 시대 인류의 진정한 힘이다.

AI 시대의 거듭남이란 ‘포스트휴먼’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깊은 형태의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다. 니고데모의 질문은 다시 우리를 부른다.

“인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AI 시대는 그 질문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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