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효 목사】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히브리서 13:1-3)

  • 입력 2025.11.18 20:42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효 목사(선교학 박사). 1983년 2월 스위스 사역시작, 취리히 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 대학원졸업, 스위스한인교회 홈페이지 www.koreanchurch-swiss.com
김정효 목사(선교학 박사). 1983년 2월 스위스 사역시작, 취리히 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 대학원졸업, 스위스한인교회 홈페이지 www.koreanchurch-swiss.com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 이 있었느니라! 자기도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 하라! (히브리서 13:1-3)

어느 추운 겨울날, 캘리포니아의 한 부랑아 수용소인 마린카운티(Marin County)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걸인과 부랑아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간이침대와 담요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그들이 서로 달라고 아우성을 치자 자원봉사자인 로드니(Rodney)는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몇몇 부랑인들은 다른 사람의 담요를 빼앗기까지 했고 한 흑인여성은 자신에게 담요가 돌아오지 않자 인종차별이라고 큰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혼란 중에 마지막 남은 담요 한 장은 라틴 아메리카인인 호세라는 사람에게 돌아갔습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호세는 담요를 수용소 한가운데에 펼치더니 금세 코를 골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어딘 선가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호세의 발 냄새였습니다. 악취가 온 수용소 안에 가득 차오르자 부랑아들이 발을 씻기려 했지만 91kg이 넘는 거구의 호세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냄새를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호세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하자 같은 라틴아메리카인들이 폭발할 것 같은 노한 표정으로 주위를 노려보았습니다. 실내는 금세 험악해셔 싸움이라도 한판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때 로드니는 말없이 밖으로 나가 따뜻한 물을 담은 세숫대야와 비누, 수건을 챙겨가지고 돌아왔습 니다. 그는 호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서 양말을 벗겼습니다. 그리고는 호세의 발을 대야에 담그고 씻기기 시작했습니다. 발바닥, 발목, 발등, 발가락까지 로드니는 아주 정성스럽게 발을 닦았습니다. 어느새 로드니 주위로 부랑아 들이 빙 둘러서 있었습니다. 로드니는 난폭한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손가락이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얼마 후 로드니가 수건으로 호세의 발을 닦아주고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침묵 속에서 모두가 그녀의 아름다운 손길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수용소에는 더 이상의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호세의 머리맡에는 부랑아 중 한 명이 가져다 놓은 새양말이 얌전히 포개져 있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랑받으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랑받으며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한 삶이며, 가치 있고 보람된 삶입니다. <사랑>은 <최고의 윤리>요, <최고의 <교육 자산>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충분히 받으며 자라는 아이는, 정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납니다. 반면에 <사랑의 결핍>을 겪으며 자라는 아이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거칠며, 반항적이고, 공격적이 됩니다. 결국은 원만한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바로 <사랑>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면류관>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며, 자신의 삶의 환경을 위해서 바르고 소중한 기여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받으며 사는 사람만이 이 같은 소중한 역할을 감당해 나가는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살 권리를 주셨습니다.

 

둘째는 사랑 주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사랑받으며 사는 사람은 그 삶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러기에 사랑받는 만큼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 기쁘고 행복한 것 처럼,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주는 기쁨과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의 수고>로 남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사랑받는 사람의 <기쁨과 행복을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으로 역사(役事)하는 삶>이야 말로 <사회공동체>에서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윤리>요, 최고의 <도덕률>인 것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 사대’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5-40

그러기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는 <사랑의 수고>를 하며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부여되어있습니다.

<행복한 삶>, 곧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 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사랑으로 역사(役事)하는 삶, 즉 사랑 주고 사랑받으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함께 행복 을 누리며 사는 삶의 환경을 힘써 이루어 나가라는 것이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신 최고의 <윤리규범>이요,<도덕률>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 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8-10)

 

1956년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습니다. 명문 휘튼대학교(Wheaton College)를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Philip James Elliot, 1927-1956)을 비롯하여 네이트 세인트 (Nate Saint), 피트 플레밍(P. Fleming), 에드 맥컬리(Ed Macauley), 로저 유데리안(Roger Youderian), 이 다섯 명의 젊은 미국인 선교사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부족으로 알려져 있는 아마존 정글의 와오다니'(Waodani) 아우카 부족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해치러 온 사람들인 줄로 오해하고 즉시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이 끔찍한 비극을 미국 언론은 '이 무슨 낭비인가(What a waist!)'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습니다.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너무나 허망한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허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20대에 홀로된 아내들은 풀뿌리 캐먹는 법이나 도마뱀을 잡아먹는 법 등 정글 생존 훈련을 받았고, 짐 엘리어트의 부인인 엘리자벳 엘리어트는 2년 동안 간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아우카 부족은 남자는 다 죽여도 여자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잃은 그들은 남편들이 살해당한 그 아우카족 마을로 들어가 정성껏 부족들을 섬겼습니다. 아기 날 때 아기 받아주고, 감염된 상처를 치료해주고, 기생충 약을 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농사법도 가르쳐주었습니다. 추장을 비롯한 모든 아우카족 주민들이 이들의 헌신에 크게 감동되었고 그녀들이 본국으로 떠날 때에 아우카족 추장은 마침내 그녀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위해 이 고생을 하십니까? »

엘리어트의 부인 엘리자벳이 ‘우리 남편들은 당신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들이 즉시 그들을 죽였기에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남편들이 그렇게도 당신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그 말을 들려주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 말이 무엇이냐고요?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엘리자벳은 '이 무슨 낭비인가'라고 쓴 기자에게 남편이 휘튼 대학에서 썼던 일기장을 보여주었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지 마라! 이 쓸모없는 나뭇개비에 불을 붙여 주옵소서! 제 삶을 주의 영광을 위해 태워 주옵소서! 저는 오래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풍성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

선교사들을 창으로 찔렀던 아우카족 전체가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가운데 4명은 목사가 되었으며, 한 명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1. 사랑하며 사는 삶은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 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로마서 12:14-18)

1890년에 내한한 캐나다 출신 여의사 로세타 셔우드((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는 한국 최초의 여성을 위한 병원인 보구녀관(普救女館-Salvation For All Women Institution)에서 의료선교에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한국 도착 즉시 ‘여성을 위한 의료사업은 여성의 힘으로’ 라는 표어를 내걸고 여성을 위한 의료교육을 시작했습니다. 1891년에는 역시 캐나다 출신 의시이자 목사인 윌리엄 홀 (William J.Hall)이 내한했고 그는 평양에서 의료활동을 했습니다. 그후 그는 앞서 내한한 셔우드와 서울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윌리엄 홀은 청일전쟁 당시 만연하던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 전염병 치료에 몰두하다가 과로에 학질까지 겹쳐 1894년 11월 24일 사망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약관 34세였습니다. 한국에 온 지 꼭 3년 만이었습니다.

미망인 로세타 셔우드에게는 겨우 돌을 지낸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셔우드 홀(Sherwood Hall,1893-1991)이었습니다. 이때 그녀는 임신 7개월째였으므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1897년 그녀는 아들 셔우드와 딸 에디스를 데리고 다시 한국 선교사로 나왔고 남편을 기념하여 평양에 병원을 설립 했습니다. 이것이 홀 기념병원(The Hall Memorial Hospital)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평양에서 살던 셔우드는 그의 나이 18세 때인 1911년 미국으로 건너가 마운트 유니온대학(The University of Mount Union)을 거쳐 토론토 의과대학(Toronto Medical School Facts)에서 의학교육을 받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역시 의사였던 마리안 버텀리(Marian Bottomly)와 결혼한 그는 토론토 의과대학에서 아버지를 이어 선교사의 신분으로 1926년 내한했습니다. 그는 사역 초기에는 해주 구세병원(救世 病院)에서 일하면서 해주 의창학교 교장직을 겸임했습니다. 그후 그는 조선에서 수많은 사람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결핵의 퇴치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습니다. 당시 폐결핵은 사형선고와도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었기에 그는 결핵퇴치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조선 최초의 결핵요양원인 구세요양원이 1928년 해주 교외 왕신리에 설립되었습니다.

그 뒤 결핵협회(The Tuberculosis Association)를 조직하고 1932년 12월부터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결핵 퇴치기금을 모으기 위한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크리스마스 씰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선교사로 내한한 이래로 1940년까지 14년간 한국에서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일제에 의해 마지 못해 한국을 떠났던 그는 인도로 가서 23년간 선교사로 봉사한 뒤 1963년 은퇴했습니다.

본국에서 노후를 보내던 그는 여러 사람들의 권유로 1978년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라는 자서전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이란 제목으로 번역출판되었습니다. 그는 1992년 98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그 유해는 유언에 따라 양화진(楊花鎭)에 안장되었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3:16)

 

2. 사랑하며 사는 삶은 용서의 삶입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 (마태복음 18:21-22)

프랑스왕 루이12세가 왕좌에 오르기 전에 그에게 많은 적들이 있었는데 그가 왕위에 오르자 그의 적들은 신변에 위협과 함께 극도의 불안에 쌓였습니다. 궁중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의하면 왕은 이미 자기를 반대하고 대립하던 모든 사람의 명단을 친히 작성했다는 것이고 그 명단의 이름 하나마다 직접 검은 색깔로 십자가를 일일이 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말들이 들리자 어떤 이들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채 부랴부랴 파리를 벗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간 이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즉 루이 12세는 이전에 적이었던 그들을 분명하게 용서했으며 목숨까지도 보장했다는 것인데, 그가 직접 그린 검은 십자가는 자신 도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로 용서받았으므로 자기도 과거의 원수 들을 모두 용서한다는 의미 였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4-15)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의 명작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에는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 합니다. 한 사람은 선하게 살려고 애쓰는 장발장 (Jean Valjean)이고 또 한 사람은 그를 끈질기게 따라 다니며 평생을 괴롭히는 형사 자베르(Inspector Javert)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뒤 장발장을 추종하던 청년대원들은 눈엣가시 같던 형사 자베르를 잡아와 총살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장발장은 그를 풀어줍니다. 충격을 받은 자베르는 장발장을 향해 외칩니다.

«당신이야말로 나를 가장 죽이고 싶을 텐데 왜 나를 살려줍니까? »

그러자 장발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세상에는 넓은 것이 많이 있소. 바다가 땅보다 더 넓고 하늘은 그보다 더 넓소. 그러나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바로 용서라는 관대한 마음이오. »

장발장의 말에 차갑고 냉혹한 자베르 형사의 얼굴에 뜨거운 참회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35)

 

3. 사랑하며 사는 삶은 희생의 삶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2-14)

2006년 1월 2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톨먼스빌 광산이 무너졌습니다. 13명의 광부가 지하 78m의 갱 속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유독가스와 산소 부족으로 위독했습니다. 그때 한 광부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메고 있는 산소통 안의 산소는 곧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몇 시간 후에는 우리 모두 죽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갖고 있는 산소를 한 사람에게 몰아줍시다»

그들은 자신의 산소통을 어린 아이가 둘 있는 스물일곱 살 젊은 광부 랜달 맥로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자네는 아직 젊네. 자네가 우리의 몫까지 살아주게나»

12명의 광부는 매몰된 지 이틀 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맥로이만 살아났습니다. 죽은 광부 중 한 사람인 마틴의 메모지도 발견되었습니다.

«아빠는 힘들지 않아. 나의 가족들아, 사랑한다. 하나님 곁에서 너희를 위해 기도하마»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만큼 확실한 사랑의 실천은 없습니다.

남을 위해 자신의 소중히 여기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희생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떤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 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 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태복음 19:16-2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獨生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和睦祭)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1서 4:7-11)

<아멘!>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