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목사]입금 먼저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내리죠

  • 입력 2025.11.24 09:06
  • 수정 2025.11.24 09:20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주 토요일 김장을 하는 날이다. 그런데 절임 배추가 반 밖에 배달되지 못한 상황이다. 결국 아침 일찍 1시간 30분 봉고차를 끌고, 배추 절임 공장을 방문했다. 겨울 김장을 앞두고 분주한 현장, 잘 절여진 배추 냄새,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상자들…

그 가운데 제 눈길을 끈 장면이 하나 있었다.공장 앞에 대형 트럭이 멈춰 서 있었고, 배추가 가득 실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기사는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입금 먼저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내리죠.”

대표는 이미 분주해 정신이 없었다.

“먼저 내리세요. 바로 지불할게요.”

그러나 기사는 단호했다.

"돈이 확인돼야 내립니다."

결국 대표는 작업을 멈추고 핸드폰 뱅킹으로 입금을 했다. 그제야 지게차가 들어와 배추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졌다.

이 장면은 단순한 상거래의 한 순간이 아니라 오늘 대한민국을 그대로 보여주는 축소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 간의 신뢰는 이미 부서진 지 오래이고, “먼저 믿어줄게요”라는 말은 바보 같다는 세상이 되었고, 혹시라도 속지 않기 위해 먼저 의심하고, 작은 거래에서도 보증과 증빙과 입금 확인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현실. 눈에 보이는 돈을 먼저 붙잡고, 보이지 않는 신뢰는 뒤로 밀려난 시대, 이것이 우리가 사는 오늘의 자화상처럼 다가와서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붕괴’

성경은 이런 종말의 시대를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언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며, 사랑이 식어진다.”(마24:12)

그리고 예레미야는 “이웃을 조심하며, 형제라도 믿지 말라”(렘9:4).

죄가 깊어질수록 불신은 더 깊어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마음의 문을 닫아걸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의심’을 제1의 방패로 삼는다.

이러한 불신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먼저 의심하는 습관’을 배운다. 그리고 결국,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는 돈과 조건, 계약과 계산만 남는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빛으로 오셨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요한복음은 말한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예수님은 이유 없이 의심받고, 이유 없이 미움받고, 심지어 이유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불신을 향해 조건을 내세우지 않으셨다.

“너희가 먼저 믿어야 내가 사랑하겠다”, “너희가 변화해야 내가 받아주겠다” 말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먼저 믿어주셨고, 먼저 사랑하셨고, 먼저 손을 내미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신뢰는 조건이 아니라 먼저 줘야 생기는 것임을 예수님은 몸으로 보여주셨다.

 

●우리는 어떤 빛을 선택하고 있는가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 움직이지 않던 그 장면을 떠올린다. ‘입금이 먼저냐, 내리는 게 먼저냐’ 이 단순한 순서 싸움 속에 세상의 불신과 인간관계의 냉랭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세상이 빛을 잃을수록 더 밝게 빛나야 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먼저 믿어줄 때, 먼저 손을 내밀 때,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넬 때,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빛이 비춘다. 예수님은 불신의 시대를 향해 빛으로 오셨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그 빛을 들고 세상에 나아갈 차례이다.

배추 절임 공장의 그 씁쓸한 장면은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신뢰의 무게’를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먼저 믿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빛을 비추는 사람. 그런 한 사람이 세상의 풍경을 바꾼다. 세상과 거꾸로 살아가는 모습은 바보처럼 보인다. 바보처럼 살때 세상은 살아난다. 

오늘도 우리는 불신의 시대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작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작은 선택이 누군가의 마음을 녹이고, 관계를 회복시키며, 세상 속에 빛을 다시 켜는 시작이 될 것이다.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TBMC 대표 등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TBMC 대표 등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