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74) - 하박국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하박국은 ‘껴안는 자’라는 뜻의 이름이다. 하박국은 인생과 민족의 문제에 대하여 껴안고 그 문제를 풀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하박국서에서 보게 된다. 그는 선포한 하박국서 1장과 2장은 주전 605년 갈그미쉬 전쟁직후 한 때에 예언한 것이다. 이 전쟁이 일어난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세상의 통치자로서 세워지게 된다. 거기서 하박국은 역사 속에 하나님의 정의를 묻는다(신정론), 그리고 단순한 관점에서 강한 질문을 하며 도전한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탁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합1:2-4).

이 전반부 1-2장에서 대화체(하브루타)로 두 번이나 반복하여 예언자와 야웨 사이에 대화를 한다(합1:2-2:5). “그는 술을 즐기며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나니”(합2:5), 이 대화에서 하박국은 독을 쏟듯 불평을 한다. 고뇌에 찬 질문이 메아리치듯 쏟아낸다. “어찌 이렇게 오랫동안 이러한 사회적 폭력이 되풀이 되는가” 하고 탄식시를 말하며 하나님이 이 백성을 버리실 것인가 의미한 듯하다(합1:2-4). 이 대답은 야웨가 거의 믿을 수 없는 어떤 것을 행하고 있음을 말한다. 곧 갈대아 사람들(바벨론)이 일어나며 잔인하고 빠른 민족이 정복하러 올 것을 이야기 한다(합1:5-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찌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이를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찌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합1:5-6).

하박국 선지자
하박국 선지자

세계와 세상의 질서는 새로운 제국의 등장을 통해 새로운 세력의 주도권이 바뀌는 것을 본다.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 가는 것을 말한다. 하박국 예언자는 역사가 의로운 사람을 정의롭게 하기 위해 기존의 무법하고 괴물과 같은 악의 세력인 앗시리아를 버린 것을 말한다. 잔인한 세력인 앗시리아가 폐하며, 이전에 인간의 운명을 결정했던 요인이 되었던 나라를 버리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심판과 위령이 자기로 말미암음으로...그들은 그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라 이에 바람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득죄하리라...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 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1:7, 11. 13). 야웨의 백성이 무죄하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들이 법 그 자체 안에 있는 나라보다 적어도 더욱 의롭다. 하나님의 심판은 다른 예언자들이 침공의 시간에 선포 되었던 것이다. 이 역사적 사건에서 신앙으로 어떤 하나님의 목적을 분간할 수 없을지라도 심판을 당치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선지자는 자신의 불평을 제기한다(합1:12-17).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1:13).

하박국 선지자는 신앙의 파수대에 서서 야웨의 대답을 기다린다. 이는 적뿐만 아니라 사악한 사람과 무가치한 여호와김 왕까지도 포괄하는 질문이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2:1-2).

대답은 직접적이지 않았지만 미래의 전망을 얘기한다. 비록 인간적인 관점으로 심판의 때가 점진적으로 도래하더라도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실현됨을 말한다. 한편 하나님이 역사 속에 현존하시는 것이 가려져 있을 때에도 우리는 신앙의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결국 역사의 문제는 신앙의 문제이며 하나님의 주권이 문제이기에 비록 하나님의 대답이 더딜지라도 우리는 믿고 참으며 하나님의 때와 응답하심을 바라는 믿음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또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의 문제도 하박국에서는 중요한 것으로서 나타난다. 바울의 신앙의인(‘믿음으로 의로와진다’)은 바울 신학의 결정적인 이슈를 제공하게 된다. 하박국은 12소선지서의 중심에서 위치하면서 중요한 예언자 신학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또 신앙과 민족주의 문제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하박국에서 비전을 보게 되며 “달려가면서 읽을 수 있는 묵시”를 만나게 된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비전을 가지고 말씀을 기록화 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로써 선지서의 세계가 결론을 향하여 가는 분기점을 하박국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오늘 이 시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시대 말씀의 기록은 너무도 중요한 과제임을 알려주고 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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