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대부분의 교회는 교회문을 닫고 온라인 예배만 드리는 사상 초유의 일을 겪고 있었다. 이제 코로나19 사태가 좀 누그러져서 교회당에 가서 예배드리는 교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실시간 온라인 중계와 함께 조심스럽게 현장예배드리는 교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주일성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예배에 빠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성도들조차 이제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기 교회뿐아니라 좋은 설교를 찾아서 듣게 되었다. 따라서 설교를 듣는 것으로서는 불만은 커녕 예전보다 더 많은 설교를 듣고 깨닫는 유익도 있다.  그러나 자칫 무교회주의나 가나안 성도처럼 되어버릴 위험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짝믿음의 가정이나 부부의 신앙의 깊이가 다른 가정의 경우 매우 심각한 갈등과 핍박도 예상된다. 그 동안은 교회를 열심히 가는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남편들도 억지로 끌려다니거나 신앙의 아내들이 주일날 교회 가는건 어쩔 수 없이 인정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연하게 온라인 예배를 2달 정도 드리다보니 이제 이후 교회로  매주 예배드리러 가는 것을 방해할 우려도 있다.

교회로 안가도 설교 듣고 바르게 살면되지, 왜 굳이 교회로 나가야 하냐는 궤변을 늘어 놓는다는 것이다. 이건 공예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많아서이다. 나름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 중에도 설교만들으면 예배를 드린걸로 오해하거나 공예배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미신적 무속적으로 공예배 참석만하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걸로 착각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2달 이상의 온라인 예배는 매주 교회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하고, 변명거리를 주게 된 것이다.

뿐만아니라 여러교회 설교를 듣다보니 본교회에 대한 집중적 사랑과 관심이 식어지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개교회주의에서 벗어남은 옳지만 자신이 속하고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공동체가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주일날은 교회로 나가서 예배시간에 목사님의 설교를 직접 듣고 하나님 음성으로 받아드리고 이에 반응하는 역동적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성도의 교통함과 교제를 해야 한다. 

김완숙 집사, 포항충진교회
김완숙 집사, 포항충진교회

공예배의 중요성

공예배에 대한 존라일의 글이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은 공적으로 일정한 신앙을 고백하고 다른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때든지 공예배는 하나님의 종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표지였다. 성경이 처음 기록되던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로 함께 모였다. 아무리 숫자가 적고 어려움이 있다 해도 그들은 함께 모였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함께 모일 이유는 많았다. 예를 들어, 이들이 예배로 모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향한 공개적인 증거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예배는 모이는 이들에게 격려와 위로와 힘을 주었다. 또한 하늘의 영원한 예배를 위해 이들을 훈련하고 준비시키는 기능도 했다.

이스라엘 족장 시대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 공예배로 모인 예들이 많이 나온다. 유대인이면서 공예배로 모이지 않은 자들은 회중으로부터 끊어졌다.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어디든 교회를 세우면 사도들은 서로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인 일로 삼았다. 개인적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 은혜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교회로 이름 붙인 곳이라 해도 공예배가 없으면 그곳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신앙고백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회사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공예배는 항상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을 유익하게 하시는 위대한 방편이었다. 공예배를 금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크나큰 해를 가하는 일이었다. 성경을 없애는 것 다음으로 큰 해를 끼치는 일이었다.

물론 공예배가 단순히 형식적인 행위로 그칠 위험은 늘 있다. 실제로 예배는 참석하지만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이런 사실이 바른 예배를 반대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예배를 잘못 드리는 사람들은 더욱 완고하고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 된다. 더욱이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과 드리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해 보면, 평균적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보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가운데 선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어떤 반론을 제기하든, 공예배는 개인에게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히브리서가 주는 권고를 잊지 마시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낙담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이 있을지라도 이 말씀을 의지하여 예배에 더욱 힘써야 한다. 우리 역시 다윗과 같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 122:1). “주의 궁전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날보다 나은즉”(시 84:10)

그러면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예배가 정착된 지금, 향후 이러한 공예배를 회복하기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첫째, 목사는 온라인 설교를 통해서도 더 성경적이고 감동적인 설교를 하여 교회에 직접가서 듣고싶도록 기도하고 준비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인간의 연약함을 실감하는 시대에 윤리적 설교보다는 복음적 설교, 천국, 지옥, 재림, 종말에 관한 성경말씀을 바르게 강론해야 한다.

둘째, 온라인 설교 중에서도  현장에서의 공예배가 왜 중요한지를 가르쳐야 한다.

세째, 교회가 더욱 본질적인 일에 집중할려는 모습을 보여서, 교회에 부정적이었던 사람들이 교회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끼리끼리만 즐겁게  교제하고 교회생활 할게 아니라 등록했지만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네째, 신앙이 없거나 약한 배우자릏 가진 성도들은 가정에서 더욱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하며 그것은 결국 손해보고 희생하는 길임을 인식하고 가정에서 성경적 역할이 주의 일임을 새기면서 모범을 보이도록 은혜 구하는 기도와 실천을 해야 한다.

다섯째, 교회에서도 교회로만 블러들이는 비본질적인 모임을 대거 축소해야 하며 교회 봉사자들도 위로회나 보상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여섯째, 경조사도 이제 간소화할 것을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목사와 직분자들부터 앞장서서 코로나 사태를 통해 주는 교훈들을 깨닫고, 그중 경조사 행사의 간소화를 실천하면서 교우들에게 경조사비 부담을 축소시켜가야 한다. 물론 형편이 어려운교우들에게는 자발적 부조를 해주어야 하지만, 자신들이 자랑과 과시로 행사하는 것은 차차 줄여가서 건전하고 간소하면서도 진정한 축복을 빌어주고 위로하는 경조사가 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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