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에 닥칠 교회의 위기를 대비하라

  • 입력 2020.04.27 08:05
  • 수정 2020.04.2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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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한 설교에만 집중하던 한국교회와 온라인예배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 "크리스천 가이드"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 "크리스천 가이드"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설교 듣는데만 익숙한 한국교회의 한계

약 2달 동안 겪은 코로나는 한국교회에게 설교 하나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금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다른 대안이 없다. 만약 온라인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그때는 속수무책이다. 온라인은 임시방편이고 본질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설교를 듣지 못하자 그것을 해결하려고 온라인 방법의 차선책이 제시된 것이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문제인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부수적인 해결에 매달리면 자칫 교회를 더 약하게 할 수 있다. 예배당에 나와 매주 설교로 말씀을 듣는 일이 전부인 상황에서는 이 방법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 위기에 처할 때 있는 자리에서 성도 각자가 신앙으로 설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이보다 더한 어려움을 당했던 초대교회는 순수한 말씀 그 자체로 신앙을 지켰다. 복음은 코로나를 이기는 그 이상의 힘이 있다. 코로나 이후에 교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예측하기는 겨울쯤에 더 큰 바이러스가 닥칠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재현 된다면 그때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같은 오직 설교에 의존하는 온라인의 방법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 기간이 길어지면 자칫 예배까지 무너질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학원에서 명강사가 어려운 수학을 쉽게 풀어주는 강의를 듣는 것과 같다. 막상 강의를 들을 때는 다 이해가 된다. 그래서 강의 듣는 것을 좋아 한다. 어떤 학생은 매번 강의만 듣는다. 그것은 편하게 듣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아무리 많이 들어도 수학 실력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정작 자기 스스로 수학을 풀려면 조금 어려운 것은 한문제도 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자기가 직접 해보지 않는 한 선생이 풀어주는 그것은 공부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뇌의 착각으로 공부가 되는 것처럼 시간만 보낼 뿐이다. 특히 응용문제가 나오면 거의 손을 놓는다.

설교를 듣는 것도 이와 같다. 들을 때는 이해가 되는데 예배당을 나오면 제목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고 금방 잊어버린다. 자기의 수고가 없이 편안하게 듣고자 하는 게으름은 악한 것이고 그것은 한 달란트를 숨긴 종과 같다. 이것을 모르고 계속 설교로만 중독되게 하는 지도자는 사실 더 큰 문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우리도 모르게 헬레니즘 방식에 익숙해서다. 헬라 철학자들은 광장에 모여 늘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에 하루를 다 보낸다. 그것으로 만족하고 스스로 위안을 받는다. 마치 오늘날 교회예배에서 좋은 설교 한번 듣고 잠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세상에 나가 자기 방식대로 사는 그리스도인과 다를 바가 없다. 교회는 설교를 듣는 성도들 중에 이런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코로나 이후에 진솔하게 점검하고 이것을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부활의 복음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니다. 또한 얼마 남지 않는 인생을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사는 것은 복음에 합당한 자의 모습은 더욱 아니다.

예배당 시설이 좋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분위기 있는 교회 예배당에서 말씀을 들으면 당장은 은혜가 되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속에 그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이나 세상의 고난을 이기는 삶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마치 헬라의 탁월한 소피스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에 감동이 오는 것과 같은 모습이 지금 우리 교회 속에 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아마 고대 소피스트들이 오늘 이런 교회에서 설교 듣는 모습을 보면 자기들과 너무 흡사한 방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한국교회가 이런 선데이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그때부터 교회 위기가 가속화 된다고 보면 된다.

 

코로나 이후 다가올 영적 흉년에 강한 성도

바울은 이런 모습을 알고 있었기에 에베소교회 목회를 할 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는 방식보다는 삼년동안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 했다(행20:31) 또 바울은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을 강력하게 부탁한 내용은 이런 상황에 타협하지 말고 말씀을 끝까지 전파하는 일이다. 그 방법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고 범사에 오래 참고 가르치며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성도의 미래를 위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이것은 오늘 날 주일에 한번과 주간에 몇 번으로 설교로 그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각 사람을 눈물로 항상 가르치며 권면하고 경책하라는 것은 지금 우리의 설교방식의 말씀양육방식을 과감하게 갱신해야 함을 말한다. 무리에게 설교하는 방식을 넘어 개인적으로 지켜 행하도록 개인에게 시간까지 수고해야 함을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었던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방식을 따르지 않는가? 변화가 잘 안되고 가장 효과가 없는 설교 방법에만 매달려 거기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한 사람의 영혼이 변화 되는 것을 소망한다면 지금 사용하는 방식에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 게으르고 악한 어리석음이 없는지를 지도자로서 진솔하게 돌아봐야 한다. 성경 어디에서도 그런 방식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실제 성경에 나오는 대중적인 설교 형식은 외적인 전도와 처음 복음을 접하는 경우에 주로 사용되었다. 지금 같은 설교방식은 전통으로 내려온 것이고 이런 방식을 고수한 유럽의 교회는 모두 무너졌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것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방식의 개혁을 포기할까? 문제를 알고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는 그것이 악한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한국교회는 설교하나 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증명되었다. 각 사람을 제자로 삼아 어디서든지 예배하는 예배자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제자로 세워야 하는 것이 앞으로 코로나와 같은 위기가 올 때 이길 수 있는 길이며 앞으로 다가올 극심한 영적 흉년까지 준비하는 지혜의 모습이다.

성도 모든 사람이 교회요 그들이 모인 가정과 일터가 교회로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최종 목표를 둔다면 지금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의 옛 부대를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부대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전처럼 많은 숫자가 함께 모여 유창한 설교를 듣는데 만족하는 수동적인 신앙에 머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더 큰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 나타난 징조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면 그것이 잠자는 교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제는 한국교회가 각 사람 한 영혼에 관심을 두며 그 한 사람을 벧엘에서 스스로 예배하는 야곱을 세우는데 온힘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각자 세상속으로 파송되어 홀로 각자의 길로 흩어져 떠나는 사도 된 성도들을 그리면서 그때까지 그들을 진정한 주님의 제자로 키우고 양육하는 어머니 품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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