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1980년대에 <하나님>을 책 제목으로 한 책이 3권 있었다. 그 첫째는 연세대학교 부총장을 지낸 김동길 박사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의 한완상 교수의 <하느님은 누구 편인가>이다. 그리고 필자의 책 <하나님께 더 가까이>였다. 이 책들은 모두 칼럼과 에세이 모아 만든 책이었다. 그리고 3권 모두 그 분야의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나는 여기서 <하나님>이 맞느냐 아니면 <하느님>이 맞느냐 하는 해묵은 논쟁을 다시 꺼내지 않으련다. 하느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늘의 님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성경대로 하나의 ‘님’ 곧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신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쓰고 있다. 하나님을 어떻게 쓰는가도 역시 신앙의 문제이자 사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들의 제목 자체가 1980년대 이후에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각각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듯이 보인다. 즉 다같이 하나님을 말해도 서로가 자기 분야의 독특한 입장과 문체로 쓸 수밖에 없다. 한국의 1980년대는 민주화의 열기로 뜨거웠고, 좌절과 희망이 교체되면서 사상의 혼돈 시대였다.

김동길 교수는 역사학자이자 정치가로서 수많은 신문의 칼럼을 썼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시사평론과 사상을 쏟아낸 우리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지금도 그는 92세의 고령임에도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와 평화를 외치는 어른이다. 이러 저러한 정치 편력으로 그에 대한 비판자들도 많지만, 그는 이른바 우파논객으로 우리 민족의 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의 가문에 나서 기독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일관해 왔다. 그의 책 <하느님, 나의 하느님>서문을 보면 “이 천 년 전에 참으로 억울한 재판을 받고 참으로 억울하게 십자가를 져야만 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낮 열두 시에는 해도 온 땅이 어둠이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 시쯤 되어 이 청년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부르짖어 더랍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랍니다. 그 처절한 부르짖음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에게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듯합니다.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외치고 싶은 사람은 어찌 이 강산에 나 혼자뿐이겠습니까?...이 천 년 전에도, 절대의 절망에서 절대의 희망이 움트고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김동길 박사는 그 시대를 칠 흙 같은 어둠으로 썼고, 그래도 부활의 희망을 말했다. 즉 아무리 나라가 망가져도 정의는 승리할 것이라는 낙관주의를 말했다. 그리고 한완상 교수는 <하느님은 누구의 편인가>란 책을 썼다.

한완상 박사는 사회과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교수와 교육부 장관, 통일부 장관 겸 부총리, 적십자사 총재, 여러 대학의 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말했던 기독교인으로 20여 차례 북한을 다녀 왔다고 한다. 그는 한때 해직교수였다가 복직되기도 했다. 그의 책을 소개하는 동광출판사의 책 선전문에는 「우울한 시대에 밝음을, 메마른 사회에 정의를,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위선이 있는 곳에 정직한 모험을, 뜨거운 가슴으로 이 책을 읽지 않으시렵니까?」라고 했다. 당시 한국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비판하는 것은 맞지만, 그의 책 제목<하느님은 누구의 편인가>는 좀 깊이 생각을 해야 할듯하다.

70년대에서 80년대에는 이른바 <해방신학>과 <신 마르크스주의(Neo-Marxism)>사상이 세상에 창궐하던 시대였다. 신 마르크스주의는 젊은 날의 칼 마르크스가 가졌던 이상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결국 마르크스주의나 신 마르크스주의는 다르지 않다. 당시 이런 사상들은 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특히 유행했다. 그들의 주장은 하나님은 가난하고 억울하고 눌린 자의 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해방신학에서는 예수도 검은 예수라 했고, 예수는 가난한 아프리카 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우리나라도 연세대 어느 신학자는 “한국의 신학은 <한의 신학><황색 신학>이라고 써야 한다”는 토착 신학 이론을 발표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자에 관심이 많은 것은 맞다. 그렇다고 <가난>이 곧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은 누구의 편도 아니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의 편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편 가르기는 사회과학자인 한완상 교수의 눈에는 그것이 진리이고 정의로 보일 수 있다. 그런 논리로 그는 하나님이 노동자, 농민 같은 자의 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지금 한국은 온통 노조가 모든 분야에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최근 조우석 칼럼을 보니 한완상 교수는 백낙청과 함께 좌파의 멘토이고 사회주의 운동에 견인차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의 멘토 즉, 오늘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모든 좌파 종북세력의 멘토로 자임하는듯하다. 사람은 그의 멘토와 읽은 책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평생의 사상과 행보가 달라진다.

필자의 1980년대의 책 이름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였다. 이 책은 1977년부터 합동 측 전국 목사 장로 기도회 설교 문과 몇몇 강연을 묶어 책을 만들었고, 목사님과 신학생들이 읽어 주었다. 필자가 이 책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은 다음과 같다. 필자는 1972년 화란 암스테르담 뿌라야 대학교에서 유학을 갔었다. 그러나 말도 글도 모르고, 두고 온 가족 걱정에 공부도 안되고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도서관 열람실에서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 박사의 명상록 「하나님께 가까이」(Nabij God te Zijn)란 책을 뽑아 봤다. 이 제목은 바로 시편 73편 28절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란 말씀이었다. 나는 이 책과 이 말씀에 큰 충격을 받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최우선으로 하는 켈빈주의 신학과 삶을 살기로 했다. 그리고 1977년 5월 「부산초량교회의 전국목사장로 기도회」 주 강사가 되어 이 메시지를 던졌다. 그래서 나는 책 제목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로 썼다.

1980년대 김동길 박사는 <하느님, 나의 하느님>, 한완상 박사는 <하느님은 누구의 편인가>라고 했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가는 것만이 사는 길이고,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복이고,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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