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예수의 예배 (1)

  • 입력 2020.07.23 08:12
  • 수정 2020.11.06 12:25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종인 연속칼럼】 미래교회의 예배 (1)

편집자주코로나19로 인해서 우리 사회는 길고 긴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에 다가올 시대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변한 만큼 예배의 환경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대비하면 교회의 위기는 기회가 된다. 본헤럴드는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 미래목회위원회가 오는 728() 평화성결교회(서울 구로, 최종인 목사 시무)에서 열 코로나와 공존하는 미래교회라는 주제의 웹세미나(Webinar)의 내용을 연재함으로 미래교회를 함께 준비하고자 한다. 이글은 최종인 목사(평화교회 담임)가 미래교회를 대비하기 위한 연구물임을 미리 밝힌다.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코로나19와 예수의 예배

코로나19가 사회 각 분야에 핵 폭발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회를 우리는 경험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은 물론 온갖 문화생활, 세미나, 공연, 스포츠까지 취소되면서 전 세계 시민의 평범한 일상은 통째로 뒤바뀌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말이 실감나는 때이다. 당연히 교회도 위기와 불안이 비껴가는 무풍지대가 될 수 없어, 교회들마다 예배당에서 드리던 예배를 영상예배로 대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상준비가 미처 되지 못한 교회들, 작은 규모의 교회들, 어른들만 모여 영상예배가 어려운 교회들은 더욱 힘들다. 영상과 함께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싶어 한국에서는 예배당예배를 겸하고 있는 교회가 많지만, 여전히 외국의 경우는 회집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느 때보다 예배가 큰 이슈가 되는 시절이 되었다. 이런 시대에 예수의 예배는 어떠했는지 살피면서 코로나를 대응하고자 한다.

먼저 예수와 유대교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20세기 중엽에 제기된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이른바 “새로운 연구(New Quest)”이후 역사적 예수 안에 적어도 “암묵적 기독론”이 나타난다는 근거에서

예수를 유대교와 분리시키려는 시도가 한동안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 연구를 통해 예수는 본질적으로 유대교와 분리된 인물이 아니며, “주변부 유대인”이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유대적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주장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면, 예수가 동시대 사람들과 빚었던 갈등은 명백히 유대교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지 유대교에 맞선 갈등이라 말할 수 없다. 예수는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 어떤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꾀한 인물이 아니라, 유대교 내부에서 개혁운동을 일으킨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최근에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유대인이었기에, 그 당시 유대교의 종교 관습을 전반적으로 따랐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만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유대교의 종교 관습을 공격한 경우는 예외다. 예수께서 최후 만찬을 유월절 식사로 거행하셨으므로, 유대인들이 당시 가정에서 행한 유월절 종교관습을 공유하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는 갈릴리의 회당예배도 참여하셨고(눅 4:16-30), 절기 때는 성전에도 가셨다. 예수와 초대교회가 드린 예배는 그레코-로마세계라는 이교제사보다는 유대인의 예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대교를 이루는 중요 구성 요소인 예배 및 경건생활에 대해 예수는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했는가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초기교회 시절 생겨난 기독교 예배의식의 생성과 발전에 근거를 제시하며 동시에 기독교 예배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 제의 전통에 대해 가졌던 예수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은 오늘 우리의 예배를 이해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면서 좀 더 나아가,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예배하는 것이 좋은지 예수의 입장에서 찾아보려 한다.

1) 거리의 예배

예수 당시 유대인들에게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자 권력의 중심지였다. 동시에 유대교의 중심지로서 축제순례의 목적지인 예루살렘은 “유대적 제의의 고향”이었으며 “하나님이 현존하는 장소”였다. 예수 역시 이곳을 중요한 장소로 여기고, 여기서 붙잡혀 십자가를 지셨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은 예로부터 주어진 명성과 의미를 잃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기도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시 26:8)이 거하는 장소인 성전을 찾았다. 성전은 상당한 규모의 성전 수입과 세금 수입을 관리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 재산도 예치하는 국고였다. 따라서 성전에 보관된 재화의 양이 상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중요한 예루살렘 성전을 축으로 유대교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예수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고, 도리어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예배한 것이다.

성전과 성전에서의 예배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이중적’이었다. J. M. Nielen은 이것을 ‘예속’과 ‘자유’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성전 예배의 요소를 받아들여 이어 가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어떤 요소를 제한, 수정할 권한과 자유를 가셨다는 의미다. 먼저, 예수님은 성전에 대해 지극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을 따르면 성전은 ‘하나님의 집’(눅 6:4), ‘내 아버지의 집’(요 2:16)이었다. 구약시대에 성전은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담당했고, 새 시대, 즉 자신을 통한 완성의 시대의 여명에도 그 영속적 사명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자신이 그곳에서 완성의 제물이 되는 것이 성전의 남아 있는 역할이었다. 성전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마 21:13과 병행구)이라고 부르신 것에도 이 긍정성이 어느 정도 묻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성전예배에 대한 한계도 의식하고 계셨다. 예수는 성전만을 기도의 장소로 지정하거나 성전에서만 기도하시지 않고 어디에서나 기도하셨기 때문이다. ‘성전보다 더 크신 이’(마 12:6)가 예수님이시라면 새로운 예배가 성전에서가 아니라 어디에서나 가능하게 된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물론 당시의 종교적 의식에 따라 예수 역시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신 바 있다. 신약시대의 가장 중요한 축제로 통하는 유월절 축제 때 원근 각처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때문에 성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기 위해 찾은 것이다. 예수가 이스라엘의 심장부인 예루살렘에 간 목적은 분명하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운명과 직결된 거룩한 도시의 백성을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앞에 세우고, 최후의 시간에 결단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예수가 그곳에서 보낸 마지막 한 주 동안 여러 가지 사역들을 소개하나, 그가 정결 예식이나 성전 예배에 참여했다는 일말의 암시도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샌더스(E. P. Sanders)는 예수와 제자들이 정결 예식을 받은 사실이 당연히 전제되었다고 말하나, 그와 관련된 전승은 다른 해석을 요구한다. 요한복음은 유월절 축제와 관련된 정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제자들의 정결예식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한복음은 세족식 보도를 전하면서, 세족식이야말로 모든 정결 예식의 완성이라고 선언한다(요 13:10). 이로 미루어 예수는 정결예식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론이 가능하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복음서가 있다. 이에 따르면, 한 바리새파 대제사장이 예수를 향해 “너는 목욕도 하지 않았고, 네 제자들은 발도 씻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 정결한 영역에 들어와 성물을 바라보느냐?”고 비난한다. 역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손 씻는 예절을 하지 않고 빵을 먹는다는 비난을 예수께 퍼부었던 것이다. 그 정결예식이란 다름이 아니라 주먹을 오그리고 물속에서 흔들며 씻는 예절이다. 그러므로 더러운 손으로 빵을 집어먹는다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예절을 치르지 않음으로써 ‘조상들의 전통’을 무시했다는 비난이다. 유대인들은 손 씻는 조상들의 전통에 관심을 가졌으나 예수께서는 내적 쇄신에 관심을 가지신 것이다.

복음서 전승이 예수의 성전 예배 참석 여부에 대해서 전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것과 달리, 성전 지역 내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었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보도하고 있다(막 11:27-33; 14:49; 요 7:14; 8:20). 이로 미루어 예수는 제의 행위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바실레이아에 관한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있는 성전 지역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성전에서 예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성전을 찾는 이들을 위해 거리에서 예배하였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