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

  • 입력 2020.09.0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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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75) 새 예루살렘(New Jerusalem)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창세기는 만물의 시작을 알려준다. 요한계시록은 마침 혹은 완성을 보여준다. 전자는 범죄 하기 전의 에덴동산을 보여준다. 후자는 새로운 에덴동산, 즉 새 예루살렘을 보여준다. 전자는 구원에 대한 약속을 보여준다. 후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될 구원을 보여준다. 역사적인 예루살렘은 어떠한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 박아 죽였다. 두 증인을 반대했다. 바벨론, 즉 로마와 연계되었다. ‘큰 성’으로 불리는데, 이는 불신앙으로 배교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다. 성도들의 거룩한 도성인 ‘새 예루살렘’이 되었다.

예루살렘을 새롭다고 부른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처럼 그 성이 하나님의 새 창조 행위로부터 온 것임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이 새 이름으로 불려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사야서에서 유래한다. 이사야는 시온, 즉 예루살렘이 종말론적으로 영화롭게 될 때에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사 62:2). 그런 다음 이 새 이름의 의미를 보충 설명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누릴 새롭고 친근한 결혼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야훼께서 그 성을 기뻐하시며 그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이기 때문이다(사 62:2, 4). 그러나 그 성 자체를 ‘새로운 것’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드물다. 어린양의 아내인 신부는 새 예루살렘이다. 신천지의 주장대로 이만희가 어린양의 아내요 신부라고 한다면 ‘이만희=새 예루살렘’이 된다. 그러나 이만희는 자신이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만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신천지라고 한다. 단체 이름까지 신천지다. 이만희가 쓴 ‘요한계시록의 실상’에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내려와 함께하니 사망 눈물 애통 아픈 것이 없고 만물까지 새롭게 된다.”고 말한다. 신천지가 새 예루살렘이라면 사망이나 질병이 있어선 안 된다. 코로나19가 신천지 신도들에게 대거 전염되는 것으로 보아 신천지는 새 예루살렘이 아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때에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고 노래했다. 예루살렘 역시 새롭게 창조하실 것인데 ‘즐거운 성’으로 창조할 곳을 약속했는지를 상기시킨다(사 65:18). 이사야는 새롭고 영화롭게 될 예루살렘을 말한다. 마지막 때에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다(사 2:1-5; 18:7). 야훼께서 배교한 예루살렘은 멸망시킬 것이다. 구속자는 시온에 오실 것이다. 시온 산에서 다스릴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시온의 광야는 에덴 같이 될 것이다. 시온은 거룩한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1.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혼인의 날에 나타나는 신부와 같다. 혼인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신부가 등장한다. 고대에, 혼인은 신부를 신랑의 집으로 데려오는 때였다. 여기에서는 그 비유적 표현이 변경된다. 혼인의 성이 신혼집이 된다.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곳이다. 이것은 처음 창조를 대체하기 위한 새 창조의 절정에 찬 돌입이다(참조. 히 11:13-16).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기원이 하늘에 있다. 이 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다. 이 성의 환상적인 규모와 보석 같은 구조물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것도 넘어선다. 교회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자발적인 조직이 아니다.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고 형성된 하나님의 백성이다.

경건한 유대인은 무너진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달라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구약의 이미지인 새 예루살렘은 미래에 대한 일반적인 유대인의 소망이 되었다(사 65:18). 정화된 예루살렘이든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이건 간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은 하나님이 건축한 완전한 성일 것이다.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은 풍성한 자료를 갖고 있는 예언적 기대가 성취된 것이다.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다’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이 역사를 종결짓는 사건이다. 여러 번의 ‘내려오는’ 것 가운데 하나를 구성한다. 공간적인 의미로 요한이 이 말을 세 번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은 결코 공간 이동을 하는 것 같지 않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로부터 1400광년(光年) 떨어진 백조자리에서 지구와 거의 흡사한 행성 '케플러-452b'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구와 거의 흡사한 항성 ‘케플러-452’와 그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 ‘케플러-452b’에서 지구까지 오는 데만 1400광년이면 1경3244조㎞가 소요된다. 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다.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언제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의 성질’로 나온다. 그러나 이 표현은 그 성이 영원히 하나님의 창조의 표를 지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Kepler-442b / 이미지출처 https://www.nasa.gov/
Kepler-442b / 이미지출처 https://www.nasa.gov/

바울은 새 예루살렘을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갈 4:26), 히브리서 설교자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으로 언급한다(히 11:10). 바울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 제도와 미래의 예루살렘의 종말론적 실재와 연계되어 있는 그리스도교 제도를 대조시킨다. 히브리서 역시 땅의 시내 산과 하늘의 시온을 대조시킨다(히 12:18-24). 바울은 신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 말한다(빌 3:20). 빌라델비아 교회 안에 있는 유대교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을 ‘새 예루살렘’이라고 밝힌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새겨질 것이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과 사도의 이름을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한 성’의 일부분과 비유적으로 동일하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요한계시록 17장에 기록된 큰 성이나 큰 바빌론과 대조되며 새 창조의 역사로 완성되는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 신천지의 ‘종교세계 관심사’에서 “이 일 후 하나님은...예언하신 대로 오늘날 나타나 응해진 것이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증거장막성전의 초(超)종교 새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이만희는 장막성전의 멸망과 신천지의 수립 과정이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이뤄지는 실상이라면서 사람들을 미혹한다. 요한에게 새 창조는 이미 시작되었다.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새 창조는 옛 예루살렘을 이미 대체하기 시작한, 새롭고 보이지 않는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2. 새 예루살렘은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다

‘새 예루살렘’의 의미를 결혼 은유로 설명한다.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하늘에서 내려온다. 새 예루살렘은 남편을 위하여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단장했다고 한다. 신부가 있는 곳은 땅이다. 성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섞여 있다. 새 예루살렘은 새 창조의 중심일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 보석으로 장식한 모습은 성과 신부의 이중 역할에 적절하다. 신부는 혼인식에 금과 보석들로 장식했다(겔 16:10-13). 그리고 미래의 환상에서, 예루살렘 성은 보석과 황금으로 세워질 것이다(사 54:11-14). 그러므로 시온의 회복으로 보석으로 장식한 신부와 비교할 수 있다.

헬라세계에서 신부 단장은 주로 옷과 보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디모데전서 2:9은 여자들에게 땋은 머리, 금, 진주, 비싼 옷으로 단장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신부 단장과 무관하다. 신부, 즉 예루살렘의 단장은 음녀인 바벨론의 단장에 대한 의도적 대비다. 전통적으로, 하나님은 시온의 남편이다. 요한계시록은 그 성을 그리스도의 신부와 동일시한다. 유대 자료들은 전형적으로 메시야를 신랑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초기 그리스도교 그룹에서는 신랑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결혼을 연결시켰다. 결혼 이미지는 이사야 52:1의 은유들과 유사하다. “시온이여 깰지어다...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사야의 결혼 묘사는 이사야 61:10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에서 발전된다.

새 예루살렘은 천년왕국의 도시와 다르다. 물질로 조성된 것이 아니다. 신부로 인격화하고 있다. 그 모습은 인격적이며 생동적인 면이 부가된다. ‘단장한 신부와 같다’는 정형화된 은유는 고대 문헌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새 예루살렘은 이제 ‘남편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로 등장한다. 이와 같은 이사야 본문을 세 번째 암시한 것이다(사 52장과 62장: 61:10). 시온은 의인화되어 예언적 완료형으로 말한다.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라는 직유를 사용하는 이사야 61:10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이 믿음 없는 신부로 때로 묘사된다. 요한계시록은 구속받은 시온, 즉 기쁨의 근원이 될 신부에 대한 구약성경의 약속들을 상기시킨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흔히 여자로 비유된다. 젊은 왕의 신부(겔 16:8-14), 어미 등이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 포로들을 신부 은유를 적용한다. 새 예루살렘은 성도들이 거하는 실제 도성인가. 아니면 성도들 자신을 가리키는 상징인가. 즉 완전하고 영원한 상태에 있는 교회를 상징하는가. 다른 모든 도시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장소와 사는 사람 모두를 의미했다. 새 예루살렘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신부다. 이제 신부는 그 성이다. 그 거민들이 어린 양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신자들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한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진작 보인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 준다. 그 성의 아름다움은 신부의 아름다움과 같다. 에덴과 같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난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기에 모인다. 이 성은 항상 열려 있게 될 것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표현한다. 교회는 어린 양의 신부다. 하나님의 백성이 신부다. 하늘에서 내려온 예루살렘에 거주한다. 음녀인 땅의 성읍과 신부인 하늘의 성읍 사이의 대조가 분명히 드러난다. 교회의 단장은 ‘옳은 행실’이다. 성의 단장 신부가 보석으로 단장하는 전형적인 모습과 일치한다. 신랑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다. 신부는 교회 공동체다.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새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교회와 혼인 잔치를 치루시고 새 언약의 완성으로 도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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