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를 끌어가는 동력이 있다. 요한계시록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요한계시록을 멀리하고 있다. “신천지는 네 인생에서 무엇이었나.” 50명은 하나같이 같은 답을 내놓았다. “신천지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신천지는 미래가 불투명한 현대인들에게 14만4000라는 목표, 육체영생이라는 희망, 그리고 제사장과 왕으로 영원히 산다는 허황된 교리는 분명 잘못되었다. 인생을 걸어도 후회하지 않을만한 가치 있는 일인 것처럼 미혹한다. 요한은 144,000이라는 숫자에 제한하지 않는다.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것을 분명하게 말씀한다.
요한계시록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다고 선언한다. 독특한 방식으로 교회를 그의 ‘나라’라고 언급한다. ‘나라’는 ‘왕들’을 추상화한 것이다. 현재 교회는 어떤 한 나라(a kingdom)이지 그 나라(the kingdom)이 아니다. 그 나라는 모든 피조물을 포괄하게 될 것이다. 이 용어는 출애굽기 19:6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라고 약속하신다. ‘제사장 나라’가 ‘왕적인 제사장권’, 즉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제사장적인 나라’로 이해하는 것에는 약간이 모호한 구석이 있다.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둘 다 왕적 요소와 제사장적인 요소를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왕적 제사장’이다.
1.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될 것이다. 이것은 출애굽기 19:6과 이사야 61:6에서 빌려온 것이다. 하지만 초기의 본문을 성도들이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왕권을 가졌다고 말을 하지만, 절정의 시대가 이르기 전까지 그러한 직책과 왕권을 실제로 행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인가. 출애굽기 19:6에 나온 표현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에 대한 요약이다.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게 책임이 있다. 구원을 선포해야 할 선교적 책임이다. 야훼의 구원의 계시의 빛을 전해야 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제사장적인 나라가 되어야했다(예. 사 43:10-13). 구약 선지자들은 반복적으로 진술했던 이 목적을 이스라엘이 준행하지 못하였기에 반복해서 꾸짖었다(예. 사 40-55장).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면 그 목적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왕 노릇하게 된다.
6개월만 신천지식 교육을 받으면 이만희를 육체로 영원히 사는 신적 존재로 경배하게 된다. 신천지의 교리에 세뇌된 신도들은 이 땅에서 14만 4000명만 채우면 왕 같은 제사장이 돼 세계를 통치한다고 믿게 된다. 자신이 잘 믿으면 가족들도 자동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 돼 육체로 영생한다는 허황한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영혼의 바이러스다. 그래서 학업 직장 가정을 내팽개치고 사이비 집단에 ‘올인’하는 좀비가 된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에봇을 입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제사장은 흰 옷을 입는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며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이다. 재앙이 임하게 하는 향을 드리며 헌주를 붓는 천사들과는 구별된다. 그들이 하는 일이 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자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제사장의 활동은 곧 예배다. 기도와 찬양과 사랑의 희생 사역을 요구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행위들보다 넓은 의미의 예배라고 언급한다.
하나님의 제사장이 섬기는 필드는 어디인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이다. 성도들은 하늘에서, 즉 새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의 사역을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죽음과 부활로 2가지 직분을 얻었다. 자신을 위해서만 아니라, 신자들을 위해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왕 되심과 동일시된다. 그가 부활하시고 높아진 것처럼 신자들도 부활하고 그와 함께 통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의미다. 독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린 자는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땅에서 왕 노릇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 약속이 여기서 재확인된다. 부활한 모든 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된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 마찬가지로 구원받는 자는 새 예루살렘에서 왕 노릇하게 된다.
신자들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임명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나라와 신하가 될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과 부활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그와 함께 왕이 되고 또한 그의 제사장직에 참여한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된다. 천 년 동안 왕적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제사장과 왕이 될 것이다.
2.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 왕 노릇 하리라
출애굽기 19:6의 제사장 요소가 왕의 요소, 즉 제사장 나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이 제사장의 나라가 될 것을 약속하였다. 베드로전서 2:9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교회를 이스라엘에 비교한다. 교회는 참 이스라엘로서 기능한다는 암묵적인 사상을 전달한다.
제사장적인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가. 모세는 희생적인 피뿌림을 통해 아론과 그의 자손들을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 임명한다. 동일한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뿌림을 받는다(출 24:8). 그들도 제사장직에 임명한 사실에 의해 확인된다.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은 비록 레위 지파가 아닐지라도 야훼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출 24:8). 모든 성도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한다는 언급은 이 배경에서 묘사되어진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은 세워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언약에 충실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면 그들을 ‘제사장의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스라엘은 언약에 의해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출 19:4-6). 교회는 세례에 의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 이스라엘이 된다. 하나님의 제사장과 왕이 될 것이다. 초대 교회는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참된 계승자로 이해했다. 자신들이 영적인 조상들에게 약속된 모든 복의 상속자라고 생각했다(벧전 2:5, 9). 집합적으로 ‘나라’다. 개인적으로 ‘제사장들’이다. 전자는 땅의 임금들의 통치자이신 그리스도의 높아지심과 연관되어 있는 그들의 왕 같은 지위를 강조한다. 후자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의 결과로 얻게 될 하나님을 섬기는 역할을 강조한다.
‘나라가 된다’ 또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한다’는 것은 구원함을 받은 자가 현재 통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나라로 삼는다 또는 왕 노릇한다는 것은 정당한 권세가 창조주와 어린 양에게 속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이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에게 저항한다는 의미이다. 성도들은 이미 제사장과 나라로 불렀다. 하지만 초기의 본문을 성도들이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왕권을 가졌다고 말을 하지만, 절정의 시대가 이르기 전까지 그러한 직책과 왕권을 실제로 행사하지 않았다. 신천지는 천년 왕국에서 행사한다고 믿는다. 첫째 부활을 한 자들이 사는 곳이 천년왕국이며 이들이 살아서 왕 노릇 하는 것이 천년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째 부활은 천년왕국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 교리가 맞다면 첫째 부활한 자들이 84년 3월 14일부터 육체영생 하면서 왕 노릇을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도 없다. 그런 자가 있다면 증명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84년 출범 이후 신천지 신도들은 계속 사망하고 있다.
성도들의 제사장 지위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으로서 성도들의 지위는 그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고’ 둘째 사망을 영원히 이기고 승리할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제사장-왕’(priest-king)이다. 이기는 자, 즉 승리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지위뿐만 아니라 왕의 지위에도 참여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천년왕국 기간 뿐 만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사는 동안에도 성도들이 행해야 할 활동을 묘사하는 것이다. 스가랴는 ‘싹이라는 이름하는 사람’이 야훼의 전을 건축할 것을 예언한다.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라”고 한다(슥 6:13). 그 자리, 즉 보좌에 앉아 다스릴 왕이요 제사장은 메시야적 인물을 언급한다.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의 2중 역할을 묘사한 것의 배경일 수 있다. 성도들은 바로 이러한 역할에 공동체적으로 동일시된다.
이만희는 20장의 천년왕국과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뤄지는 곳이 신천지 집단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 천년왕국은 1984년 3월 14일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천년왕국에 있는 신천지 신도들에게 환난,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31번 확진자가 나올 때까지 감염자는 31명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신천지 신도 중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10일 후인 28일에는 2337명이 됐다. 이만희의 교리가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 환난이 없는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와 왕 노릇한다. 즉 그리스도의 통치에 온전히 참여한다. 오직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만희는 천년왕국을 첫째 부활자들, 즉 14만4000명이 왕 노릇 하는 기간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책 ‘요한계시록의 실상’에서 “천년은 사단이 쇠사슬에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혀 있는 기간이요, 첫째 부활자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이기는 자, 즉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왕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