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의 신학 토론과 논쟁은 많은 유익을 준다. 전문가들은 자기 영역에서 치열한 쟁투를 해야 한다. 그 논쟁 속에서 많은 신학 정보들을 만나서 빠르게 신학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고대 교회에서 신학 논쟁을 하면 "아나떼마(Anathema)"를 주장하며 논쟁했다. 그러나 우리시대에서 진행하는 신학 논쟁에서 아나떼마를 선언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지금은 “전광훈의  사상이 이단인가?”에 대한 논의도 부상되어 있다. 문제가 되는 전광훈의 대표적 사상은 “직통계시”일 것이다. “직통계시”는 과도한 표현이고, 적당한 표현은 “은사지속주의(continuationism)”이다. 은사지속주의자는 자기를 직통계시자가 아니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도 직통계시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한국 교회는 그러한 부분에 단절시킬 수 있다면 전광훈 사상을 이단으로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는 은사중지론(cessationism)을 지지한다. 은사중지론은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계시적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것이다. 교회는 은사를 따라서 협력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은사지속주의와 은사중지주의는 상호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신사도주의는 주의 등 심각한 경고가 내려져 있지만 통제되지 않고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증가되고 있다. 또한 진보 성향의 신학에서는 더욱 은사지속주의를 표방한다. 특이한 현상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역사와 계시”를 동일화시키는 계시연속주의이다. 은사중지론에서는 "성경의 충족성"을 견지한다. 장로파는 성경 목록을 66권으로 받는다. 

그리스도 능동 순종에 대한 논쟁은 그것보다 더 쉽지 않다. 그리스도 능동 순종 교리를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 능동 순종 교리를 취하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러한 현상이 있는 것은 유감이다. 고대교회처럼 논쟁에서 “이단”이 아닌 "아나떼마(Anathema)"를 선언해야 한다. “이단”은 법정적인 가치로 개인이 주장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 성경에서는 “참람(僭濫, Blasphem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서기관들이 죄사함을 선언하시는 예수께 참람하다고 속으로 외쳤다(마 9:1-8). "아나떼마(Anathema, 저주)" 선언은 지옥에 갈 내용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 절대로 지옥에 갈 내용을 가르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나떼마 내용이 발견되면 아나떼마를 외치며 중지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시대는 포스트모던 사회이고, 형제됨의 교회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있다. 한 교단에서 신학적 일치를 갖고 있지 않는 매우 혼란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떼마를 외칠 것이 아니라, 상호 자기주장을 펼치면서 탐구하며 정진하는 방편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아나떼마를 외치려면 교단에서 신학적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필자는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주장하거나 배격하는 진영에 있지 않는데, 그리스도 능동 순종 체계를 제안한 신학자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무지 때문에 인정과 거부를 결정하고 있지 못하다. 나는 내용을 파악하지 않은 것은 취하지 않을 것을 제언하는 목사이다. 모르는 내용을 강단에서 시험삼아 가르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토론하는 것은 긍정하며 권장한다. 그리스도 능동 순종과 수동 순종을 주장하시는 분이나 반대하는 분들은 그 체계를 주창한 신학자의 이름과 근거를 제공해준다면 매우 좋겠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논쟁을 한다면 진흙탕 싸움으로 얽힌 실타래를 풀지 못하게 되며 서로에게 상처만 줄 것이다.

첫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그리스도 능동, 수동 순종” '용어'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한다. 다만 그 안에 능동과 수동 '개념'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해석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순종(Perfect Obedience)이 있다는 것으로 인정한다. 예수는 여호와의 종으로 하나님의 뜻과 율법에 완전하게 순종하셨다. 완전한 순종이 모든 항목을 준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수는 율법의 완성자로(마 5:17-19), 바울은 순종과 완성을 함께 말한다(롬 5:19, 13:10). 그러나 그 순종을 능동과 수동 순종으로 나누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둘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능동과 수동 순종 용어가 없지만, 사보이 선언(1659년)에는 있다. 사보이 선언은 존 오웬을 중심으로 한 잉글랜드 독립파가 작성한 문서이다. 크롬웰은 장기의회에서 잉글랜드 장로파를 무력으로 축출시키고 잔부의회(Rump Parliament, 1649년)로 운영했다. 크롬웰이 1649년에 찰스 1세를 처형시키자, 스코틀랜드는 두 부분으로 분리되었고, 한 부분이 크롬웰과 무력으로 대치했다. 크롬웰은 1651년 스코틀랜드를 무력으로 정복했고, 찰스 2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세계 역사에서 왕이 없는 최초 공화제는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두번째 공화제는 미국(America)에서 이루어졌고, 세번째로 프랑스에서 형성되었다. 지금도 세계에는 왕이 있는 나라는 많다. 잉글랜드 시민들은 독립파, 후천년주의자들에 의한  사회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왕정을 복고시켰다(1662년). 독립파가 크롬웰이 죽자 만들었던 문서가 사보이 선언이다.

사보이 선언은 의회에서 인준도 맞지 못했고, 사보이 선언은 문서만 있을 뿐 어떤 집단도 표준문서로 채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스코틀랜드 언약도들 표준문서로 채택했다.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은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의 무서운 폭정과 박해의 시대(Killing Times)에 순교자들을 내면서 믿음을 지켰고, 1688년 명예혁명 이후 획득된 종교의 자유 시대에 형성된 교단 최초 총회에서 표준문서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채택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1647년에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채택했지만, 찰스 2세의 법령으로 의회에서 폐지시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정교가 분리되었다. 잉글랜드도 1648년 의회에서 국가문서로 채택했었지만, 찰스 2세가 폐지하고 39개 신조로 전환시켰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39개조 신조에는 “능동, 수동 순종” 용어는 없다. 용어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다. 그것은 사보이 선언을 작성한 사람들의 성향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기록된 “완전한 순종과 죽음”의 용어를 삭제시키고 대체한 어휘이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있는 완전한 순종을 사보이 선언에서 능동과 수종 순종으로 대체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 청교도들은 분리파와 비분리파가 있었는데, 잉글랜드 독립파는 비분리파로 분리파보다 더 온건한 세력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분리파는 잉글랜드를 떠나 식민지에서 자기 세계를 펼치려 했다(후천년기론적 세계관). 식민지로 이주한 분리파가 회중파이다. 하버드, 예일은 청교도들이 세운 학문 기관인데, 그들이 회중파이다. 식민지는 신대륙이었기 때문에 매우 무질서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식민지로 이주한 장로파와 회중파가 연합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 장로파에서는 회중파와 연합을 인정하지 않은 교단이 지금까지 존재할 것 같다. 물론 자유주의와 현대주의를 반대하는 장로파 교단도 있을 것 것이다. 미국 장로파의 수 많은 분열은 그 후계자인 우리에게서도 반복되고 있다. 미국은 침례교 일색인데, 침례파는 상당히 뒤에 형성된 교파이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제1세력을 갖게 된 것은 신학논쟁을 거의하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한다고 한다. 장로파는 논쟁했고, 침례파는 복음을 전도했다는 것이다.

조선 등 아시아 지역으로 사역을 떠난 선교사들은 부흥 운동(초교파 운동)에 영향을 받은 사역자들이었다. 북장로교(언더우드), 남장로교(7인의 선발대)로 시작해서 형성된 조선예수교장로회는 “12신조”를 표준문서로 채택했는데, 그 안에는 아일랜드 부흥 운동의 한 부분(Calvinistic Methodism)을 인정하고 있다. “12신조”를 인정한다면 한국 장로파는 잉글랜드 청교도에 대한 비판에 매우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표준문서 없이 서있는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로마 교도이든지 재세례파, 최소한 침례파가 될 것이다. 침례파도 최소한의 강령이 있다. 개혁파는 표준문서에 근거해서 신학하는 것이 "교리에 근거한 신학"이다. 자기 표준문서를 밝히며,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필자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로만 한다면 칼빈주의 매소디스트를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2신조로는 그렇지 않다. 또한 박형룡 박사께서 제시한 총신의 정체성은 “청교도 개혁주의”이다. 12신조와 박형룡 신학에 대한 수정을 결정해야 한다.

신학자는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자기 결정”이나 “성경”에 두지 않아야 한다. 신학자는 자기주장의 근거를 “역사적 문헌”에 근거해서 주장해야 한다. 문헌 근거가 없는 주장과 논박은 동네 아저씨 말싸움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표준문서는 수정될 수 있고, 수정되었다. 한국장로파는 12신조에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로 수정했다. 그러나 12신조를 거부하는 교단은 없을 것이다. 또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범위가 같지 않기도 하며, 표준문서를 더 첨가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상호 다름에서 존중하며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 장로파가 신학적 주장을 명료하게 밝히기를 원한다.  자기주장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즐거움과 형제를 이해하는 유익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서로 같을 수 없다. 같음을 주장한다면 교조주의로 맹신으로 거짓이 될 것이다. 주께서 주신 믿음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 서로 다르지만 다름의 간극을 이해하면서 약점을 도와줄 수 있다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될 것이다.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