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言約, Covenant)은  federal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 ‘계약(契約)’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언약(言約), 계약(契約), 조약(條約), 약정(約定), 조인(調印), 협약(協約) 등의 어휘가 우리에게 있다. ‘조(條)’는 ‘조건(條件)’을 의미한다. 조약은 국가간 체결하는 약정을 표현한다. 

성경에는 treaty와 covenant를 사용하고 있다. 모든 약정(約定)은 상호인증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구도가 쌍무적(bilateral) 언약 개념인데(雙務契約), 개혁파는 편무적(unilateral) 언약 개념(片務契約)을 취하는 부류도 있다. 편무적 개념과 쌍무적 개념은 많은 차이를 갖고 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송제근이 쌍무적 개념의 언약을 강조하면서, 성경에서 유일한 쌍무 협정을 시내산 언약으로 규정하는 것을 들었다. 여호와와 아브람이 체결하는 언약(창 15장)도 쌍무적으로 보이는데, 아브람이 행동만 했을 뿐 시인하는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편무적 개념을 지지하는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과 아담이 언약을 맺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창 26:28, 아비멜렉과 이삭이 맺은 ‘계약’은 쌍무적 성격이 있다.

(창 26: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언약’ 개진은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에서 시작되었다고 거의 인정한다. 츠빙글리의 후계자 불링거(Bullinger, 1504-1575)도 그 사상을 계승했지만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평가된다. 참고로 불링거와 피터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 1499-1562)가 작성한 스위스 제2 신앙고백서(Confessio Helvetica posterior. 1562년)에 칼빈이 서명하여 스위스 도시(canton)들이 동의해서 연방체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년)은 이 고백서에 근거해서 작성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김진홍은 쯔빙글리의 언약 사상은 재세례파의 급진적 성경 해석의 논박 과정에서 창출되었다고 제시했다((종교개혁이야기) 쯔빙글리와 언약사상, <CTMNews>, 2015년). 제세례파는 급진적,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성경적 거룩한 삶의 모습을 유아세례를 거부, 합법적 맹세 거부, 정부와 군대에 복역하는 행위 거부 등으로 주장했다. 쯔빙글리는 재세례파의 급진적 성경해석과 로마 카톨릭주의의 교회우상화를 거부하는 대안이 성경을 언약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통일된 관점으로 보는 시각을 강조”했다. 김진홍은 재세례파의 성경주의(Biblicism)라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언약 이해에 근거해서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것이다. 성경주의에 의하면 여전히 안식일을 준수해야 한다. 교회주의에 의하면 주일을 교회가 결정한 것이다. 필자는 안식일에서 주일로 전환은 사도들이 한 결정이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명확한 차이(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차이가 없음)를 나타내는 계시 선언으로 평가한다.

쯔빙글리의 성찬 이해(기념설)를 루터, 칼빈은 좋아하지 않았다(실재설). 쯔빙글리는 언약을 과도하게 해석했기 때문에, 성찬을 기념으로만 평가해서 반복하는 것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언약을 성경의 일치성과 함께 하나님께서 현재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방편으로도 생각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언제나 “교통(Communion)과 소통(Communication)”을 하신다.

우리는 “정통”은 스스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통(Orthodoxy, 바른 말씀)”은 참 교회 안에 자생하는 거짓 가르침, 적그리스도의 제자가 자기 형태를 드러낼 때에 배격하면서 형성된 가치이다. 그렇지 않은 사안은 없다. 참 교회는 성령으로 교회 창립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은혜로 진행한다. 교회는 은혜를 훼방하는 무리를 배격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종교개혁 이후에는 거짓의 무리가 더 크고, 정통의 가치는 축소되고 있다. 서방 교회에서 로마 카톨릭주의의 세력은 범세계적이고, 장로파는 한국에서 지엽적으로 우세한 형편이다. 미국 장로파에서 분리된 구(舊)프린스턴 계열은 소수파이다. 최정호 목사는 소실과 전진으로 시간을 이해했는데, 시간에서 바른 가르침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으며 결코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는 이해이다.

교회가 거짓을 배격하고 참 교회를 구축한 뒤에 형성된 교리 체계에 대해서 더 깊게 사색을 진행하면서 사색주의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개혁파 후기 스콜라주의라는 말이 등장했을 것이다. 믿음과 신학은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추구해야 한다. 두 가지 방향을 잘 정립해야 한다. 결정된 교리에 대해서 사색(思索)을 해야 되지만, 지나친 사색은 과도한 호기심, 허된 사색이 될 것이다. 박윤선 박사는 “계시의존사색(啓示依存思索)”이라고 제언했다.

‘언약’은 쯔빙글리가 로마 교황주의와 재세례파의 급진적 성경해석을 변호하기 위해서 제언한 성경 계시 이해이다. 쯔빙글리가 노력한 과정과 산물인 ‘언약’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언약에서 사색을 진행하면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창조언약, 자연언약, 첫언약과 새언약 등의 다양한 개념이 제언되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는 행위언약과 은혜언약(7장)을 고백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첫언약"을 "행위언약"이라고 규정했다(WCF, 7:2, The first covenant made with man was a covenant of works).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세밀한 체계를 제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문장을 제시하는 수준이다. 학자는 자기 사고 체계를 말한다.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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