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유대의 최고 지도자였던 천하의 사울이 유대인의 제일번 경계 대상으로 지목되었고, 그 사자굴에 들어간 바울은 예상한대로 그들의 손에 잡혔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 사회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위기가 고조된 유월절 예루살렘에 방문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신지 약 35년이 된 때였다. 바울은 20여 년 동안에 아시아와 마게도냐 지역을 전도했고, 이제 유대의 수도 예루살렘을 거쳐서,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까지 들어가려고 한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것은 예루살렘이 여호와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법을 저지르고 있음을 철저하게 폭로한 것이다. 배현주 목사는 율법을 “유대인이 만든 제도(내 원수를 미워하라, 안식일에 밀을 비벼서 먹음은 죄다, 고르반 등)”를 구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당시에 유대인이 만든 제도도 율법(law)라고 불렀고, 예수께서는 그러한 유대인의 율법이 모세의 율법에서 벗어났음을 밝히셨다. 새관점학파에서 자신의 체계를 legalism이 아닌 nomism이라고 주장한 이유이겠다.

1. [행 21:1-16] 밀레도에서 가이사랴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만나 권면하고 배를 타고 고스(Coos)로, 이튿에 로도(Rhodes)로, 바다라(Patara)로 가서, 베니게(Phenicia)로 건너는 배를 타고 구브로(Cyprus)를 바라보고 수리아(Syria)로 항해하여 두로(Tyre)에 상륙했다. 거기에 정박해서 짐을 풀었다(3절). 제자들을 찾아 거기에서 7일을 머물렀다(4절). 두로에 있는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to Paul through the Spirit)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도록 간청했다(4절). 바울은 제자들의 만류를 거절했고 성문 밖까지 전송했다. 우리는 함께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뒤에 작별했다. 우리는 배에 올랐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6절).

두로에서 배는 돌레마이(Ptolemais)에 이르렀고, 형제들을 안부하며 하루를 머물렀다(7절). 이튿날 가이사랴(Caesarea)에 도착했을 때에 일곱 집사 중 한 사람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렀다(8절). 빌립에게 네 딸이 있었는데 처녀였고 예언했다(9절). 가이샤라에 여러 날 머물게 되었는데, 유대에서 아가보가 내려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다리에 매고 말했다(10-11절). 성령이(Thus saith the Holy Ghost)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했다(11절). 아가보의 말을 들은 누가와 바울의 일행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청했다(12절). 그러나 바울의 결정은 단호했다(13절). 오히려 강한 만류에 대해서 단호한 결심을 표현하며 마음이 아프니 그만해 줄 것을 간청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13절). 바울의 엄중한 선언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만류하는 것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고백했다(15절).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몇 사람과 그부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16절).

바울이 드로아에서 밀레도 그리고 예루살렘까지 가는 여정도 복음 전도의 여정이었다. 누가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오순절이 되기 전에 도착하려고 매우 서둘러 진행하는 과정을 많은 여정지를 제시하면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드로아에 이미 교회가 형성되어 제자들과 교제하였고,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 두로에서 제자들과 교제했다. 이미 로마 제국의 거점 도시에 교회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바울은 예루살렘을 거쳐서 로마로 가야 한다. 그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했다. 그 사망의 골짜기로 바울이 들어가는 것을 모두가 만류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주께서 인도하시는 길이기 때문에 가야 했다.

2. [행 21:17-26]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보호함. 바울이 예루살렘에 오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영접했지만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야고보와 장로들이 사역하고 있었다. 사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역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에서 유대의 전통을 거부하지 않고 공존했다. 바울이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율법을 파기한다(모세를 배반함)는 소문이 있었는데, 교회는 결례 의식을 준행하여 유대 사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했다. 바울은 교회의 지도를 따라서 행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도착해서 사역 보고를 진행했다(19절). 보고를 받은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권면했다(20절). 그런데 그 유대인들이 바울이 모세를 배반한 것으로 평가하고 풍기문란케 한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주의를 요구했다(21-22절).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에게 결례를 하도록 지도했다. 바울은 그것을 따라서 머리를 깎았다(24절). 얼마의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 겐그리아에서 했던 서원을 반복한 것이다. 바울이 유대 율례를 준수하여 유대인이 가진 혐오심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 결례의 일정 기간 준수하여 완료했다(the accomplishment of the days of purification, 26절). 결례가 완수되면 제사장이 인준할 것이고 바울은 이전에 있던 모든 혐의가 제거되었음을 제사장이 인정한 것이다.

3. [행 21:27-36] 예루살렘은 바울을 결박함. 모든 선의가 선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아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선한 모의가 선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례를 위해서 바울이 성전에 자주 올라감으로 오히려 유대인들이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결례가 끝났는데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 있는 바울을 보고 충동하여 붙잡았다(27절). 결례를 인준한 성전 제사장들은 바울의 상태를 고지하지도 않았다. 예루살렘 교회도 바울을 보호할 수 없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 옆에 있는 에베소 사람(드로비모)을 보고서, 이방인을 바울이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고 거짓을 보고했다(28-29절).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시내에 있었는데, 성전에 함께 들어갔다고 오해한 것이었다(29절). 그래서 예루살렘 온 성에 소동이 일어났다(30절). 로마에 주둔했던 천부장이 출동해서 바울을 집중 구타하는 것이 중지되었다(33절). 천부장이 예루살렘에 주둔한 것은 명절이기 때문에 내려온 것이다. 천부장은 소동이 일어난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바울을 군영(軍營)으로 데려갔다(34절). 군중들은 로마 군대를 따라서 군영 앞에 밀집했다(35-36절).

4. [행 21:37-40] 바울의 적극적 변호. 바울을 영내로 끌어 드리려 할 때, 바울이 천부장에게 자기 신분을 밝혔다. 천부장은 바울에게 헬라말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37절). 그리고 바울을 소요를 일으킨 애굽 사람으로 심문했다(38절). 천부장이 말한 소요 사건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 총독 벧릭스(Felix, A.D. 52-58) 통치 시절인 A.D. 54년경 한 애굽인 거짓 선지자에 의해서 예루살렘에 반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바울은 자신이 애굽인이 아닌 유대인이고,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라고 밝혔다(39절). 바울은 다소에서 나면서부터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천부장은 바울의 발언권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바울은 로마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백성들 앞에 서서 잔잔케 한 뒤에 히브리 말로 변호를 시작했다(40절). 바울은 헬라말, 히브리말, 마게도냐 말까지 각종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학문이 얼마나 비범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용기와 담력 그리고 결단도 대단했다. 구약의 모세, 다니엘은 왕자의 자리와 귀족의 자리를 포기했는데, 바울도 유대 최고의 자리를 포기하고 예수 전도자가 되었다. 유대인의 회의 제일목적은 예수 이름이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제일목적은 이 땅에 예수 이름이 충만한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천부장의 보호를 받으며 복음을 전했다.

5. 전능하신 하나님, 주의 이름이 높아지고 편만할 수 있도록 주의 종들을 보내옵소서. 주의 이름이 선포되매 죄인이 구원을 받고, 하늘의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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