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가 죽으면 천국을 가는가? 지옥을 가는가?

구원은 누구에게나 난제이다. 구원을 받았다는 그리스도인도 주어진 구원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피조물인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나 혹은 타인의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더 머리가 복잡하다.

일단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한 것이다. 그 외에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신학적인 사고를 진행한다. 어떤 범위를 넘어서면 교만으로 신학을 파괴할 수도 있다. 구원은 전적인 은혜 아래에 있고, 구원받은 우리는 회복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기 백성을 삼으시려고 사람을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격적인 피조물을 지었는데 그게 사람이다. 사람을 지은 목적은 다름이 아닌 자기 백성 삼으셔서 영광을 받으시고 함께하심이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 형벌은 사망이다. 이와 같이 이제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의 몸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어 그의 피로 죗값을 지불하여 인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회복시키기로 하셨다. 아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재창조를 계획하시고 이루신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 로마서 5장 17-18절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택자를 부르심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예수의 피로 거듭난 신자가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성화의 삶을 정진한다.

구원에는 ‘예정’이라는 하나님의 의지가 등장한다. 예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창세 전에 택하셨다”는 것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장 4-5절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증거는 "믿음 고백과 회개"이다. 삶 가운데 은혜를 경험하고 은혜를 누리는 자는 누구든 예수 안에서 자유하기 때문에 늘 스스로 죄인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할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고, 그에 우리가 거듭나고, 그에 우리가 믿고, 그에 우리가 회개하고, 그에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그에 우리가 거룩하게 됨에 과정의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유아 사망에 대해서도 논할 수 밖에 없다. 유아 사망에 대해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구원의 은혜와 인간의 사고를 절충하면 유아림보(Limbus Infantum) 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2007년 천주교는 유아림보를 폐기하여 800년을 유지해 오던 체계를 전환시켰다. 림보(limbo) 개념은 5세기 어거스틴이 “세례 받지 못 한 채 죽은 아이들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신학 논제에서 확장된 개념이다.  

그렇다면 유아 사망에 대한 구원도 우리의 구원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의 은혜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세상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고 운행하신다. 이렇듯 유아의 사망에서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택한 유아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유아가 택함을 받았는지 어떤 유아가 택함을 받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신앙을 근거로 유아세례를 받은 유아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을 것이다' 이정도이다. 더 이상의 판단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도 같은 어리석음과 교만이다.

“택하심을 입은 유아들은 어려서 죽더라도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령을 통하여 중생하고 구원받는데, 그분은 원하시는 시간과 장소와 방법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말씀 사역에 의하여 외적으로 부르심을 받을 수 없는 다른 모든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도 그와 같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10:3

유아 구원은 굉장히 예민한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더 세세하게 논할 것을 제언하지 않는다. 우리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이다”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율법주의자처럼 하나님께서 하실 구원을 인간이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유아 사망은 부모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다. 영혼을 주께 위탁하는 경건이 필요하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고 또한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이제는 은혜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성장하도록 정진해야 한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확실한 지식,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었다는 것이다. 인간 이성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며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시인 성경을 의존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는 믿음이 필요하다.

고건 목사(삼일교회 교육목사, 형람서원)
고건 목사(삼일교회 교육목사, 형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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