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은 할로인데이(Halloween Day, All Saints' Eve)이다. 코로나19 상황인 대한민국에서 할로인데이에 젊은이들이 밤에 많이 나올 것 같아서 경계한다는 뉴스 보도를 들었다. 할로인데이는 전혀 대한민국과 관계없는 날인데, 언제부터인가 할로인데이 소품들이 마트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젊은이들이 할로인데이 축제를 나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할로인데이하면 호박등불이 생각난다. 미국에서 할로인데이는 지금도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할로인데이는 중세 시대 미신의 정점에 있던 행사 중 하나이다. 서양 미신이 대한민국에 들어온 것이다.

할로인데이는 만성절(萬聖節) 전날 밤이다. 만성절은 11월 1일이다. 만성절은 루터와 칼빈이 함께 연결된 날짜이다. 먼저 1533년 칼빈은 만성절에 니콜라스 콥(Nicolas Cop, 1501-1540)이 파리 왕립대학 학장 취임 연설에서 발언한 파동 때문에, 연설문 작성에 개입된 것으로 파악되어 프랑스에서 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할로인데이 전날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예배당 정문에 게시하였고, 그 문서는 구텐베르크가 제작한 인쇄 기술을 통해서 전 유럽에 확산되었다. 금속활자는 우리의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인데, 인쇄 기계 창안자와 기계를 알 수 없고 출판물만 자료로 프랑스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정보에서도 어떨 때에는 최초의 금속활자 제작자를 구텐베르크로 배울 정도이다. 그 이유는 영향력에 있을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기술을 통해서 루터의 영향력이 유럽 전역에 뻐졌다. 루터파는 천주교를 개혁하는 세력의 총칭이 되었을 것이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는 정치적 목적이 가미하여 1534년에 수장령(首長令)을 발표하면서 로마 교황권을 벗어났다.

16세기 루터가 쏘아 올린 “95개조 반박문”은 세계 역사를 갈랐다. 1517년 우리 땅에서는 조광조(靜庵 趙光祖, 1482-1519)가 개혁 운동을 쏘아 올렸다. 실패한 조광조의 개혁 같지만, 조광조 이후 조선은 대변혁을 가져왔다. 그리고 두 왜란과 두 호란을 통해서 조선은 극도로 폐쇄적인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광조 개혁운동의 단점은 소격서를 철폐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개념으로 타인을 정죄할 수 있는 풍토가 발생된 것이다.

루터와 조광조의 개혁은 진리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성경에 근거한 사고(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가 살리라)였다. 조광조는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 사교(邪敎)를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진리보다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을 사문난적으로 규정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유럽은 루터와 칼빈으로 형성된 개신교 진영과 구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로마 카톨릭이 양립하였다.

대한민국, 19세말 조선에 미국 장로파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특이한 것은 영국과 독일 선교사들이 들어오려고 하였는데 막혔었다. 미국 선교사들, 장로파 선교사들이 조선을 방문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처음에 장로파와 감리파 선교사가 함께 들어왔는데, 장로파 선교사 언더우드는 자국으로 들어가서 다른 선교사들을 초대하면서 조선에서 다수 선교사는 장로파 선교사들이 점유하였다. 그러면서 부지불식간에 한국은 장로교 사역지가 되었다. 그 장로교의 본산은 스코틀랜드 사역자 존 낙스이다. 1560년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를 6명의 사역자(John of six clergy)가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그리고 존 낙스는 제네바의 존 칼빈과 연결된 사역자이다. 제네바 대학 캠퍼스에 있는 부조(浮彫)에 있는 4 인 중에 마지막 위인이 존 낙스이다. 한국 장로파는 종교개혁의 후예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신학자 박형룡 박사는 장로교 학교인 프린스턴에서 공부(1923-1926)하였다. 1927년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있는 남침례교신학교 박사과정을 입학하였고, 귀국하여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1931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활동하였고, 1933년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형룡 박사는 특이하게 프린스턴의 학자,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97-1878), A. A. 핫지(Archibald Alexander Hodge, 1823-1886), 워필드(Benjamin B. Warfield), 1851-1921)의 신학을 소개하지 않았다. 또한 메이천(John Gresham Machen, 1881-1937) 박사에게 수학하였지만, 그의 신학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박 박사가 프린스턴 신학이 아닌 칼빈 신학교의 벌코프 신학을 소개하면서, 한국 장로파는 특이하게 네덜란드 개혁파를 선호하는 성향이 되었다. 박 박사가 프린스턴 전통의 신학을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스코틀랜드 철학의 난해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 어려운 문장은 마틴 루터의 글이다.

한국 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을 사랑하는 놀라운 모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할로윈데이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16세기 종교개혁이 가능하였던 것은 탁월한 지성 때문이었다. 광장 토의에서 개혁파들은 로마 카톨릭주의의 연사들을 압도하였다. 성경적으로 사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이 개혁파의 주장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지성과 열정이다.

16세기 유럽 사회는 기독교 사회였기 때문에 진리 탐구에 매진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는 비기독교 사회이기 때문에 진리 탐구와 함께 복음 전도에 매진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사문난적의 경박한 정서에, 일제강점기 그리고 1950년대 전쟁과 반공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었고, 1970년대 성장지상주의와 결탁되어 반지성적인 풍토가 만연하다. 교회의 지성이 그 문화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 바른 교리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것도 좋은 자세는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필요한 의식 중 하나는 좋은 학문 자세라고 생각한다. 취업 혹은 성공을 위한 학문을 지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교회는 맘몬주의에 대항해서 맞서야 한다. 교회 안에 들어온 맘몬주의를 배격하며, 교회 밖에서 공격하는 맘몬주의도 배격해야 한다. 맘몬주의의 모습은 성직매매와 번영신학인데, 그것은 16세기 종교개혁에서 명확하게 개혁한 사안이다. 종교개혁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종교개혁에서 배격한 산물을 수행하는 것은 무지를 폭로하는 무지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개신교회는 교황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고 있다. 독일에서 종교개혁기념일은 역사가 되어서 신교와 구교가 함께 기념식을 치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회는 엄격하게 종교개혁을 준수해서, 영생을 주는 복음을 지키며 전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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