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함의 그릇에 긍휼을 담은 메신저

  • 입력 2020.11.10 11:46
  • 수정 2020.11.1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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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17)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성령의 위로하심으로 세워지는 메신저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우주에 꽉 차 있는데 위로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는다. 죄로 인한 저주와 죽음이 천지를 뒤흔들어서 지치고 상한 인간 군상들로 널브러진 세상인데 위로 한 마디 건네는 이가 없다. 위로랍시고 전한 메시지들이 위로는커녕 공허한 울림으로 귓가에 맴돌기만 할뿐 황야 같은 세상은 슬픈 기운으로 가득 찼다. 메신저가 말씀을 주신 주님으로부터 위로받았다면 어떤 처지와 형편에서도 곤핍한 영혼을 위로했을 텐데, 하늘의 위로를 경험하지 못한 메신저들은 메마른 수원지에 곡괭이질 하듯 한 가닥 위로를 얻기 위해 눈물겨운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면서 천상의 위로를 제대로 경험한 메신저가 드물다면 이런 비극도 없다.

일찍이 천상의 위로를 통해 그 자신 위로자로 나선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만신창이가 되었던 고린도교회를 영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자신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위로가 그의 전 존재를 온전히 채웠기에 책망과 비판에 앞서 ‘위로자’(paracletos)이신 성령을 힘입어 다가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정점에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장이 있었다.

긍휼과 자비의 영이 충만한 메신저

메신저는 위로의 전달자이다. 자신의 전유물인 지식과 경험 같은 그 무엇이 아니라 무거운 돌에 눌린 듯한 상황에서 위로받았던 천상의 다독거림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뭇 사람들을 감싼다. 위로는 말이 아니요 감정이입도 아니며 연민을 품은 동일시가 아니다. 물론 그런 시도 자체는 나름 의미도 있다. 하지만 곤궁에 처한 인간 영혼을 결정적으로 구원해줄 동아줄로는 부족하다. 메신저에게는 반드시 긍휼과 자비의 영이 충만해야 한다. 정죄하고 심판하며 지옥의 불덩이를 쏟아 붓는 메시지라 해도 메시지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버림받을 영혼에 대한 한없는 긍휼이다. 남편이신 야훼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방의 우상들과 통정을 나눈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각성을 촉구했던 호세아 선지자의 마음에는 이런 긍휼이 가득 했다. 불행한 결혼생활로 예표적 삶을 실제 살아야 했던 지극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아픈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전했다. 그가 "마음이 속에서 돌아 온전히 불붙는 듯하는 주님의 긍휼”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던 바로 그 순간 산 아래에서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우상 금지의 계명을 하나님이 손수 돌에 새기는 바로 그 순간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 우상을 새겨 경배했다. 그 선두에 아론이 있었다. 모세는 방금 하나님에게서 받은 거룩한 돌판을 깨뜨렸고 사탄의 조롱거리가 되게 한 아론은 변명일색이었다. 모세의 엄명에 레위 지파가 앞장서 형제와 친구를 도륙해갔다. 3천 가량이 죽임 당했다. 이 일로 인해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 헌신한 자들이 되었다. 이방인들이 아니라 동족이었고 조금 전까지 음식을 나누고 대화를 이어가던 형제요 친구인 그들에게 칼을 꽂을 때 레위 지파에게 긍휼의 마음 한 자락 없었을까? 아마 뜨겁게 눈물 흘리며 칼을 휘둘렀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여 염병 재앙으로 24,000명이 몰살당했다. 백성의 두령들 또한 목매달려 죽었다. 이 비극적 상황에서 시므온 지파의 족장 하나가 미디안 여자를 장막에 들이는 어이없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극에 달했고 재앙은 여전한 가운데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창으로 시므리와 고스비의 배를 꿰뚫어 죽이자 거짓말같이 염병이 그쳤다. 여호와의 질투를 대신한 비느하스는 이로 인해 대를 이어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대임을 맡게 되었고 하나님에게서 평화의 언약까지 얻었다. 그가 즐거움으로 남녀의 목숨을 취했을까? 한 가닥 긍휼의 마음이 없었다면 비탄에 젖은 하나님의 마음도 읽을 수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을 대신한 집행관으로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비느하스의 분노를 거룩하다 말할 수 있음은 척살 행위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뿌리 내린 긍휼을 기저(基底)로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용도에 따라 쓰이는 메신저

우리는 긍휼 없이 긍휼을 전하고, 위로의 은혜 없이 위로의 언어를 던지는 일에 이골이 났다. 설교자의 마음에 가시가 돋치면 메시지의 안팎 온도가 달라진다.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두 날 가진 칼처럼 위로의 가슴으로 여겨 안겼다가 강렬한 독성에 치명상을 입는다. 말씀의 메신저는 긍휼이 메시지 전반에 풀가동될 수 있도록 반드시 긍휼의 영에 접속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실 때 모세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도 함께 사용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음을 알았고 바로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차이는 그것만이 아니다. 쓰이는 목적은 같았으나 쓰이는 용도는 달랐다. 바울사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세는 긍휼의 그릇으로, 바로는 진노의 그릇으로 쓰임 받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순종할 것을 거듭 명하셨다. 요단을 건넌 후 열두 지파를 둘로 나누어 여섯 지파는 저주하기 위해 에발산에, 여섯 지파는 축복하기 위해 그리심산에 세우도록 지시하셨다. 두 그룹을 통해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저주와 순종하는 자에 대한 축복이 아주 명료하게 선언되었다. 저주의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여섯 지파는 그리심산에 선 여섯 지파에 비해 덜 거룩하고 더 불결하며 덜 순종적이고 더 불순종하며 덜 신앙적이며 더 불신앙적이어서 그리 했을까? 그들이 저주로 화답할 때 ‘그렇게 해선 안 되지!’ 하는 마음을 속으로 되뇌지 않았을까? 다시 말해 긍휼의 마음 한 자락이 없었을까? 그들도 선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도끼가 스스로 자랑할 수 없음은 도끼로 나무를 벨지 장애물을 제거할지 도끼 잡은 자의 의지에 따를 뿐이듯 메신저는 하나님의 쓰시려는 용도에 따라 쓰일 뿐이다. 큰 그릇으로 쓰일지, 작은 그릇으로 쓰일지, 금그릇으로 삼으실지, 나무그릇으로 삼으실지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정하신다. 메신저는 단지 자신을 세속의 갖은 악에서 지켜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이 유용하게 쓰신다.

정결함의 그릇에 긍휼을 담은 메신저

배고픈 아기가 엄마의 젖가슴이 그리워 칭얼대듯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영혼은 기대어 살아갈 영원의 옷자락에 감싸기 원하는데 메신저에게 어미의 자애로움이 없다면, 분별 못하는 영혼이 죄로 이끌 유혹에 이끌려 갈 때 가시와 담으로 막고 채찍 휘두르기를 두려워 않는 아비의 엄정함이 없다면 비록 천국과 지옥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아는 메시지라 해도 아무 유익이 없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향해 지녔던 권면(encouraging)과 위로(comforting)와 경계(urging)는 모든 메신저들이 자신의 메시지에서 간과치 말아야 핵심이다. 우리가 행하는 설교 사역의 내용과 동기와 목적이 죄다 이 속에 있다.

오늘 글의 요점은 표범의 반점처럼 메신저의 심비에 새겨져야 할 기본 품성 두 가지다. 하나는 외치는 자의 영적 자질을 지탱시키는 깨끗함이요 다른 하나는 듣는 자들을 향한 긍휼이다. 응당 메신저는 전달자로서의 기술만이 아니라 섬기는 자로서의 기질도 익혀야 마땅하다. 그래서 기술은 장인에 이르고 품성은 기질화 되어야 한다. 자신을 정결함으로 지키고 타인을 긍휼로 대함에 성실치 못하다면 금쪽같은 메시지인들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설교의 창안과 전달 기술, 그리고 정결과 긍휼의 기질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필자는 서슴없이 후자를 택하겠다. 정결과 긍휼이 보석이면 설교의 창안과 전달 기술은 보석함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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