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가 : 165장 ‘주님께 영광’의 찬송은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날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발라 드리려고 왔다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일 먼저 접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기쁨을 노래한 부활 찬송으로 1884년 ‘에드몬드 버드리’(Edmand L. Bundny;1854-1932)목사가 프랑스어 쓴 찬송시를 리처드 비춰호일(R.B.Hoyli)목사가 영어로 번역하여 우리 찬송가에도 실려 부르게 되었습니다. 버드리 목사는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에 있는 호반의 도시 베베이(Vevey)에서 35년간 목회하며 60편 이상의 찬송시를 썼는데 대부분 그의 곡은 ‘복음찬송가’에 실려 널리 보급되었다.
작곡가 : 찬송가의 곡조는 1746년 영국의 죠지 프레드릭 헨델(G.F.Handel; 1685-1759)이 이스라엘의 민족 영웅 ‘유다 마카비’의 일대기를 그린 오라트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Juda s Maccabaeus)라는 곡 제 3부에 있는 환희의 대합창 행진곡 중 클라미막스를 이루는 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1948년 8월 22일 네덜란드의 ‘니우베 커크’(NieuweKe가) 광장에서 열린 세계교회회의 때 마지막 순서로 ‘주님께 영광’을 함께 부르므로 ‘할렐루야!’ 에 버금가는 찬양이 되었다.
1절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옷 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1절, 사망권세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 밤 군병에 의해 버려지다시피 내 던져진 돌무덤에 주님의 시체라도 옳게 처리하고자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는 향유를 준비하여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쉽게 말해 염 같은 것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몸의 여러 곳이 채찍에 맞아 살이 찢기어져 나갔으며, 대못에 손과 발을 박히고, 가시면류관에 머리가 찔리었으며, 창에 옆구리가 깊이 찔리었기 때문에 더 빨리 부패되어 냄새가 심해질까 봐 더욱더 서둘러 이른 아침부터 무덤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무덤에 도착해보니 자신들이 걱정하며 염려한 것과는 달리 무덤 문을 막았던 그 커다란 돌문이 지진에 의해 굴려져 있었고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은 놀라 기절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미쳐 무덤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되돌아가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다른 곳에 숨겨놓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요 20:2)하고 말하자 그 성격 급한 베드로가 즉시 요한과 함께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황급히 달려갔습니다. 베드로가 돌무덤에 들어가 자세히 안을 살펴보았습니다. 무덤 안을 보는 순간 정말 예수님의 시체는 온데간데없고 예수님의 몸을 감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만이 전혀 다른 방향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몰래 들어와서 예수님을 둘러매고 간 것과는 전혀 다르게 어지럽혀짐도 없이 마치 방금 사람이 잠에서 일어난 침실과 같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덤을 자세하게 살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였습니다. 뒤이어 함께 온 제자요한도 무덤에 들어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모습을 보았지만 두 제자 모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에 대하여 여러 번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신앙을 체험하지 못한 채 이론뿐인 신앙에 머무르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다니고 부활절을 맞이하여 기쁨으로 감사하지만 실제 삶속에서 보이고 나타나는 삶의 부활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마치 제자들이 부활의 약속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들의 삶에도
들려지고 깨닫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보니 내 의지 내 노력 내 열심만 가지고 교회문턱 만을 넘어 다녔던 것입니다. 무덤 속을 들여다보고도 부활의 주님을 알아차리지 못한 제자들의 모습처럼 그저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는 형식적인 교회신앙인으로 머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뒤늦게 갈릴리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나서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없었던 제자 중 한 사람 도마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겠다며 버텼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보고서야 믿는 나약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이야 말로 인간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요,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산 소망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는 축복과 은혜의 순간입니다. 기독교는 이렇게 빈 무덤위에 건설되었습니다. 오히려 빈 무덤을 자랑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
3절 생명의 임금 영광의 주님 주님 없는 삶은 헛될 뿐이라,
주의 사랑으로 세상이기고 요단 건너 본향 가게합소서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3절, 부활의 능력으로 세상이기고 본향건너 영광의 주 뵙게 하소서
3절에서는 또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과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사도행전 3장 14절에서 15절의 말씀처럼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강도와 살인을 한 바나바를 놓아 주었으며, 생명의 임금, 영광의 주님을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생명의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주님을 부인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아 어두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갖은 조롱과 채찍을 맞으시며 가시면류관을 쓸 때까지도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로서 유대인의 왕으로서 뭔가 기적 같은 능력을 보이셔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시고 자신들을 채찍한 자들을 벌주실 것이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지켜보았지만 끝내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고 돌무덤에 묻히자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여기고 각기 제 고향과 일터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예수님께 기도하고 열심을 다해 주님을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아무런 기적이나 응답이 없자 그만 낙심하여 중도에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들어가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오랜 시간동안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예배가 계속되면서 그렇잖아도 삶에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 낙심하고 있던 차에 얼마나 잘된 일인가? 교회 나가지 않아도 누구하나 교회 나오라고 권하는 사람이 없으니...
분가해서 살고 있는 저희 두 아들도 그동안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주일날 놀러다니지 못하고 주일예배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예배를 핑계로 교회출석을 아예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교회의 족쇄에서 해방되었다며 자유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두 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적으로 체험했다면 교회예배를 중단하거나 멈출 수가 없겠지요!
2021년 부활절은 그렇기 때문에 여느 부활절보다도 더 소중합니다.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주의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자로 살 것인가? 를 갈라놓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여러 합당한 핑계를 대면서 예배참여의 부당성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어놓을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요단강 건너 본향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선한싸움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이 아버지 곁을 떠나면 행복할 줄로 알았는데 가진 것을 다 탕진하고 난 후 먹을 것이 없고 나서야 아버지 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아버지 곁을 떠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즉시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부활의 산 자녀로 불러주실 것입니다.
이 땅의 것들은 소망이 없는 안개와 같음을 기억하고 세상 부귀영화와 명예를 다 버리고 생명의 임금과 영광의 주가 되시는 주님만을 위해 충성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요단 건너 주께서 예비해두신 천국 본향 집에 이를 때까지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를 원합니다.
2021년 부활절을 예배의 부활로 이어가는 믿음의 용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말씀 관주
1절
주님께 영광을 *요 1:14,롬 11:36,엡 3:21,살후 1:12
다시 사신 주 *마 28:6-7,막 16:6,눅 24:6,요 20:9
사망 권세 이김 *행 2:24,롬 6:9,고전 15:54-55,딤후 1:10
천사 돌을 옮김 *마 28:2,막 16:5,눅 24:4,23,요 20:1
빈 무덤 *마 28:6,막 16:6,눅 24:3,12,요 20:6-7
2절
부활 후 나타나심 *마 28:9,막 16:9,12,눅 24:15,27,요 20:14,19
두려움과 의심 물리침 *마 28:8-10,막 16:8-9,눅 24:37-40,요 20:19
기뻐 찬송 *시 9:2,28:7,요 20:20,행 13:48,벧전 4:13
3절
생명의 임금 *요 6:53-54,행 3:15,골 3:3,요일 1:2
주 없는 삶은 헛됨 *요 15:5,갈 6:14,빌 3:7-8,딛 3:9
사랑으로 세상 이김 *요 16:33,롬 8:37,고전 15:57,요일 4:4
요단 건너 본향 *마 8:12,골 1:5,딤후 4:18,히 11:16
▶관련 찬송
기뻐 찬송하세 159장
무덤에 머물러 160장
할렐루야 우리 예수 161장
예수 부활 했으니 164장
싸움은 모두 끝나고 166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