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호 박사와 함께 가는 누가복음 산책 (17)

 

임인호 박사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임인호 박사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1. 부요한 자(6:24-26)

평지설교 첫 번째 단락(6:20-26)은 ‘복’을 말하는 전반부와 ‘화’를 말하는 후반부가 내용과 문형에 있어서 대칭입니다. 예수는 가난한 자는 복 있으며, 부요한 자에게는 화 있다고 말씀합니다. 왜 가난한 자는 복 되며, 부요한 자는 화 있습니까?

누가복음에는 ‘부자’가 11번 나옵니다. ‘부자’는 ‘어리석은 자’이며(12:20),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는 자(21)’이며,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21)’입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쌓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잔치에서 부유한 자는 제외되고, 가난한 자로 대신 초청해야 합니다(14:12). 불의한 청지기 비유의 부자는 주인이며, 부자와 나사로의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살다가 죽어 음부에 갑니다(16:23). 부자가 음부에 간 이유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았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왜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은 것이 음부에 간 이유가 됩니까? 평지설교에서 부요한 자에게 화를 선언하는 것은 그들이 이미 위로를 받았기 때문(24)입니다. 그들은 지금 배부른 자(25)이며, 지금 웃는 자(25)입니다. 하지만 미래는 전혀 다른 자가 됩니다. 상황이 역전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거짓 선지자들이 호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평지설교는 ‘현재’ 상황을 ‘미래’의 상황과 연결시키게 합니다. 그래서 현재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미래를 생각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계명을 다 지킨 자이지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는 예수의 말씀에 근심한 것은 그가 큰 부자이기 때문입니다(18:23). 많은 것을 가진 지금이 오히려 예수께 나아가는 미래가 되지 못합니다. 모든 계명을 다 지킨 자인데, 경제 문제에 걸려 넘어집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25). 하지만 부자인 삭개오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경제적 희생을 함으로 구원에 이릅니다(19:2). 현재 많은 것을 가진 부자의 헌금은 가난한 자보다 저평가됩니다(21:1). 이유는 생활비 전부를 바친 가난한 자의 헌금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친 양만을 보는 일반적인 시선과 다르게 가진 자의 비율에 주목합니다. 풍족한 중에 바친 헌금과 생활비를 바친 것을 구별합니다(21:1-4).

성경에는 ‘가난한 자’를 교회 자체로 말하는 구절이 많습니다(행11:29; 2:16,17;롬15:25,31;고전16:1;고후8:4,9:1,12;갈2:10). 사도행전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그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묘사합니다. 이 표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친구들의 소유는 서로 통용 된다’는 말과 유사합니다. 정통교회에서 분리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후에 자신들을 에비온파(Ebionites), 즉 가난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교회사에는 ‘가난하다’는 말이 ‘경건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탈버트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 ‘가난’은 처음에는 사회적인 의미였지만 수 세기를 거쳐 오면서 영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말하며, 켁(L. Keck)은 '가난한 자'를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가난한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합니다. 젤린(A. Gelin)은 ‘가난한 자’는 사회적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경제적 상태가 인간의 내적 자세, 도덕 이상의 영적 가치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시컴브(D. P. Seccombe)는 누가-행전의 ‘가난한 자’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며, 부자는 인자와 연결되는 것을 거부하는 비(非)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주목할 만 합니다. 하지만 누가가 ‘가난한 자’와 ‘부자’를 인종적인 차이로 생각했다고 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은 오히려 인종적 차별을 배격하기 때문입니다.

평지설교의 ‘화와 부’에 대한 예수의 말씀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관점을 수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지금 배부르고, 지금 웃는 것만을 생각하면 이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복된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이런 복된 상태가 달라질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문하게 합니다. 지금 배부른 자가 되어 장차 주린 자가 될 것인가? 지금 웃는 자가 되어 그날에 울게 될 자가 될 것인가? 지금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자 하여 거짓 선지자가 될 것인가? 이런 물음을 무시하고, 지금의 현실에만 주목해서, 현재 배부르고, 웃는 자가 되려 한다면 그의 운명은 자명합니다. 주린 자가 되고, 우는 자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것을 문제 있다 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 복이 있다는 말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화 있다고 번역한 단어 ‘우아이(oujaiv)’는 사전적 의미는 ‘오호’ ‘슬프다’, ‘화 있도다’입니다. 개정역은 모두 ‘화 있도다’로 번역합니다. 학자들 중에는 이 단락을 저주단락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말을 근거로 해서 예수가 누군가를 저주하였다고 말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이 부분을 ‘오호 슬프도다. 부요한 사람들’, 혹은 ‘오호 슬프도다 지금 배부른 자들’, ‘오호 슬프도다 지금 웃는 자들’ 이렇게 번역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The Rich Man and Lazarus #1, Eugène Burnand (1850–1921)
The Rich Man and Lazarus #1, Eugène Burnand (1850–1921)

2. 황금율의 법칙(27b-31)으로

평지설교 두 번째 단락(6:27-38절)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B1. 도입(27a). B2(27b-36) 두 개의 법칙으로. B3. (37-38) 3개 명령(37)과 1개 명령(38). B2(27b-30)부분에는 9번의 명령법이 나옵니다. “사랑하라. 선대하라. 축복하라. 기도하라. 돌려대라, 금하지 말라. 주라. 요구하지 말라. 행하라” 이 명령들은 4부분(27-28; 29; 30; 31절)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27-28)과 이어지는 3개의 명령입니다. 이것들은 문형과 의미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원수’가 누구이며, 원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합니다. 원수는 ‘너희를 미워하는 자’, ‘너희를 저주하는 자’, ‘너희를 모욕하는 자’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위해서 축복하는 것, 너희를 모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원수 사랑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두 번째 명령은 한 빰을 치는 자에게 다른 빰도 돌려대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다시 네 겉옷을 가지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는 말로 확장됩니다. 세 번째 명령은 구하는 자에게 주라고 명령하면서 다시 그에게 요구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예수의 명령들은 실현할 수 없는 명령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누가는 황금률(마7:7) 방법으로 하라고 말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31)는 이 황금률 방법은 자주 오해받곤 합니다. 황금률 상황을 대접의 상황으로만 한정해서 이해하려 합니다. 하지만 ‘대접하다’는 원어는 ‘포이에오’로 그 의미는 ‘행하다’는 의미입니다. 황금률 방법은 대접 상황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공동번역은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고 번역합니다. 황금률 법칙은 대접 상황에서만 유효한 법칙이 아니라,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역지사지의 방식입니다. 황금률의 방법을 통해서 원수까지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원수의 입장에 서서 나에게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렇게 해 주라는 명령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마저 사랑하지 못하는 나에게 이 말씀은 얼마나 의미 있게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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