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선교 112주년에 부쳐

웨슬리안에게 있어 5월은 특별한 달이다. 존 웨슬리 목사님이 올더스게이트의 작은 모임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신앙 체험을 한 달이기 때문이다. 웨슬리 목사님은 비록 자주 흔들리기는 했지만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필자에게 있어 5월은 또 다른 특별한 달이다. 19095월에 영국 성공회 소속으로 전도도 하고 성경도 팔던 매서인(賣書人)이자, 삼척군 영덕면 부호감리교회 교인인 김병두(金秉斗)’ 님이 울릉도에 들어가서 선교를 시작한 달이기 때문이다. 김병두 님을 필두로 초기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이 피땀을 흘린 결과, 울릉도는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기독교 시군이 되었다(2005년 기준으로 31.7%). 울릉도 복음화를 위해 물을 주고 집을 지은 사람도 있었지만, 필자는 씨를 뿌리고 터를 닦아둔 사람이 감리교인지라 자부심을 느낀다. 사실 사람이 일은 계획한 거 같아도 그 걸음을 인도하신 분은 주님이시다.

 

감리교회가 울릉도에 관심을 가지다

필자가 목회하는 경북동지방은 포항시와 경주시와 울릉군을 포함하여 20개 교회가 있다. 울릉도 인구는 만 명 정도인데, 교회는 38개가 있고 그중에 감리교회는 죽암교회와 동산교회가 있다. 김병두 님이 여러 교회를 개척했지만 다른 교단에 교회를 인계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포항에 살면서 감리교회가 울릉도에 관심을 두는 현장을 목격하였다. 20076월에 S 감독회장이 영남선교대회를 앞두고 울릉도와 독도를 희망대심방일정으로 방문하여 동산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독도도 가서 위문품도 전달했다. 200910월에 울릉도 선교 100주년을 맞아 삼남연회 J 감독과 본부 선교국 L 총무가 동산교회에서 울릉도 선교 10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리고, 독도를 방문하여 기도회도 하고 죽암교회도 격려 방문했다. 이런 이벤트 행사를 마치자 울릉도는 기억에서 썰물처럼 사라졌다. 필자는 20194월에 죽암교회에서 교회 수리도 하고 집회도 하고 나서 울릉도 선교 110주년, 감리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글을 기고했다. 5월에 J 감독회장과 삼남연회 K 감독이 부랴부랴 울릉도를 방문해 기독교 대한감리회 울릉도 선교 110주년 기념비 건립 감사예배를 드리고 기념비도 세우고, ‘약간의격려금도 전달했다. J 감독회장은 죽암교회를 방문해 본부 차원에서의 지원을 약속했으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는 바람에, 교회 건축을 위한 토지 매입은 고사하고 기념비도 세우지 못하고 말았다. 울릉도에 두 개 교회가 있으면 두 개 교회에 다 기념비를 세우던지, 아니면 먼저 설립된 교회에 세우던지 해야 하는데, 도동항에서 가까운 동산교회만 기념비를 세웠다. 감리회 본부의 준비가 소홀하였다. 6월에는 삼남연회 청장년관 주관으로 울릉도 독도 평화통일 기도회를 가졌다. 감리교회는 빛 좋은 개살구처럼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없는 행사를 하였고, 젊은 목사들을 가이드와 기사로 불러 열정 페이(熱情 Pay)만 주고 봉사를 시켰다.

 

울릉도에 있는 감리교회를 방문하다

필자는 감리교회 선교의 성공 사례인 울릉도가 2년 동안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북동지방 선후배 목사 가정과 함께 518()부터 20()까지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울릉도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8인까지의 모임은 가능했다. 지난번엔 포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썬 플라워호를 탔는데 선박의 수명인 선령(船齡)이 다해, 이번에는 442명 정원에 388톤인 썬 라이즈 호를 탔다. 배가 작아져서 그런지 3시간 40분이나 걸렸다. 배를 30분간 더 탄다는 것은, 차를 더 타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썬 라이즈 호가 뿌웅~, 뿌웅~, 뿌웅~’ 힘찬 뱃고동을 세 번 울리고 초록색 물살을 가를 때는 언제 도착하나 아득했지만, 멀미약 때문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썬 라이즈 호는 검푸른 바다의 흰 속살을 거침없이 가르며 힘차게 순항하고 있었다. 여행객들은 IT 강국답게 스마트 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속이 메슥거렸다. 인내심이 바닥이 날 때쯤 저 멀리서 섬이 보였다. 울릉도는 고목 위에 붙어있는 매미처럼 바다에 누워 있는 작으면서도 야트막한 섬이었다. 지난번엔 도동항에 입항했는데, 이번에는 울릉도의 가장 큰 항구인 저동항에 입항했다. 썬 라이즈 호는 해로(海路)를 따라 오른쪽으로 입항했고, 마침 독도로 나가는 웨스트 그린 호는 왼쪽으로 출항하면서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람 좋은 고병태 목사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마중 나왔다. 캐리어를 끌고 가면서 무심코 뒤돌아보니 세찬 풍랑으로부터 항구와 배를 보호해 주는 방파제와 그것의 외피를 두껍게 입힌 다리가 네 개 달린 테트라포드(tetrapod)가 주님의 강한 오른팔처럼 느껴졌다. 주님의 팔이 감싸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 비릿하지만 싱그러운 바다 내음을 맡으니 매 멀미가 싹 가셨다. 오늘은 울릉도 일주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가는 코스를 택했다. 관음도에 가보니 괭이갈매기들이 여행객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으며 살이 통통히 올라 있었다. 문득 새들도 편하게 먹고 살려 하는데, 외로운 화산섬에서 불편을 감내하는 젊은 목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죽암교회는 리모델링과 건축이 필요했다

울릉도는 태풍으로 도로가 떨어져 나가 여기저기서 보수 공사도 한창이었고, 도로 확장과 포장 공사도 하다 보니 일방 통행길이 많았다. 비포장도로를 가다 보면 머리는 손잡이에 부딪히기 일쑤였고 몸은 앉아서도 춤춰졌다. 평지는 아예 없다시피 했고 대부분 급경사 길이라 그것도 차선도 거의 없는 도로인지라 자가 운전은 위험해 보였다. 고병태 목사의 도움을 받아 사륜구동도 가능한 코란도 투리스모 11인승을 타고, 해중전망대에 들러 수심 6미터 아래의 물고기도 구경하고, 호박엿 공장에서 시식도 하고 선물 세트를 구입해 택배로 발송하고 죽암교회로 돌아왔다. 죽암교회는 침례교회로 개척했다 감리교회가 되었다. 내년이면 설립된 지 70주년이 된다고 했다. 지난번에 괜찮았는데 사람도 피부에 각질이 벗겨지듯이 외벽의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죽암교회는 예전에는 울릉도를 1시간 정도 우회했기에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뎠지만, 울릉도 일주도로가 개통되면서 저동항에서 1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내부를 들어가니 초등학교 시절의 나무 바닥이었고 걸을 때마다 삐거덕거렸다. 역대 목사들도 진급만 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세월의 무게는 견딜 수 없었다. 교인들도 울릉도에 가장 많은 침례교회에 다니지 않고, 규모가 큰 장로교회(통합)로 옮기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했다. 죽암교회는 단기적으로 내 외부를 리모델링하고 중장기적으로 성전 건축이 필요했다.

고병태 목사는 안수받으러 온 목사가 아니라, 안수받고 들어온 목사다. 고병태 목사는 죽암교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울릉도는 복음화율도 높고 교인들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요. 울릉도 일주도로가 개통되고 바로 앞에 몽돌 해수욕장이 개장하고 비행장도 완공되면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올 텐데 그 중엔 감리교인도 있을 텐데, 감리교회 차원에서 성전도 건축해 주고 게스트하우스도 지어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수줍어했다. 필자 일행은 고병태 목사의 모친과 교우들로부터 따개비 홍합밥과 문어숙회와 적해삼을 대접받았다. 마침 쌀이 떨어졌는데 가져와서 고맙다고 했다. 울릉도는 과일값이 무척 비싸다. 준비해 가는 게 좋다. 필자 일행은 죽암교회로 가서 고병태 목사에게 딱 맞는 갈비뼈를 주시고, 죽암교회를 새롭게 건축하게 해달라고 뜨겁게 기도하였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엔 오징어 배들의 집어등(集魚燈)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었다.

 

동산교회는 다음 세대를 키우고 있었다

울릉도에 입도하면 보통 둘째 날에 독도를 들어간다. 필자 일행은 19()이 공휴일이라 경북 도민에게 주어지는 30% 정도의 할인 혜택이 없어지고 또 수요일 저녁 예배에 쫓기지 않기 위해 과감하게 독도행을 포기했다. 독도는 기상 상황이 좋으면 동도에 접안(接岸)해 독도경비대와 사진을 촬영하기도 하지만, 해무(海霧)가 짙게 끼거나 파도가 거칠어지면 동도와 서도만 둘러보고 돌아간다. 필자 일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은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 전망대에 올라갔다. 울릉도와 자매결연을 한 포항시민이라 입장료를 할인해 주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예수님 믿으세요라며 전도용품을 나눠준다. 아내도 준비한 전도용품을 교환하였다. 전망대를 내려와 독도박물관으로 들어가려다 전도팀과 마주쳤다. 전도팀은 인천 송도의 J 감리교회 전도팀이며, S 목사는 자비량으로 전도여행을 왔다고 소개했다. 유튜브 찬영사역자를 만나 반가웠다. 필자 일행은 생전 처음 보았지만 감리교인이란 공통분모로 금세 친해졌다. 필자 일행과 전도팀은 서로를 위해 축복기도 해주었고 기념 촬영도 하였다. 이제 동산교회로 향했다. 동산교회는 올해로 설립 30주년이 된다. 조성태 목사의 아내인 유민정 목사는 감리교회에서 기관으로 인준된 햇빛 가득한 꿈마당 도서관을 섬기고 있었다. 교회 마당에는 대형 트램펄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아이들이 신나게 방방 뛰고 있었다. 조성태 목사는 감리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동산교회는 다음 세대를 키우고 있어요. 작은 도서관도 운영하고 있고 문화행사도 하고 있지요. 네이버 같은 데서 모금도 해 봤지만, 한계가 있더라고요. 현장에 나와 실사하기가 어렵잖아요. 교회 살림도 빠듯해서 감리교회 차원에서 관심을 두었으면 좋겠어요. 울릉도는 코로나 이후 어린이 예배가 없어져서, 다른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동산교회로 몰려오고 있어요. 동산교회 작은 도서관은 울릉도에서 하나밖에 없거든요. 저동초등학교와 도동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각각 100여 명씩 200여 명인데, 동산교회에 20명이 출석해요. 더 수용하려고 해도 인력과 프로그램이 부족해요. 교우들은 연세가 많아서 봉사하기가 힘들어요. 신간 도서를 보내주거나 내부 시설도 수리해 주고 프로그램도 운영해 주면 좋겠어요. 교회 1층은 난방이 안 돼 겨울을 견디기 어려워요. 이웃교회는 수도권에 있는 대형교회에서 선교를 와서 지원해 주는데 우리 감리교회도 본부 차원에서 아니면 대형교회에서 인력과 재정을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교회학교가 문을 닫고 있는데 동산교회는 어린이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조성태 목사 부부가 담임 목회도 하며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기에는 벅차 보였다. 필자 일행은 감리교회 차원에서 작은 도서관을 리모델링해 주고, 또 수련 목회자를 파송하고 생활비를 지원해 주어, 외딴 섬 울릉도의 다음 세대를 마음껏 키우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동광교회(통합)100주년 기념관이 준공단계였다

필자는 감리교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동광교회로 발걸음을 돌렸다. 동광교회는 2017320일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총회 울릉도(독도) 선교 100주년 기념관을 착공하였고 지난번엔 공정률이 40% 정도였는데, 섬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98% 정도의 공정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장로회 통합 측의 지원도 있었겠지만, 동광교회 담임목사와 교우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대역사를 이루어냈기에 가능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를 보낸다.

필자는 울릉도 좌측 코스를 달리는 내내 멀미가 나서 조수석으로 옮겼다. 장로회 통합 측은 선교 100주년 기념관을 준공하는데, 감리교회는 선교 110주년 기념비만 달랑 세웠고 그것도 감리교회 심볼 마크가 벗겨진 것이 지워지지 않았다. 필자는 늘 자랑스러운 감리교회 목사라고 자부했는데, 오늘만큼은 감리교회 목사라는 게 부끄러워지며 자괴감(自愧感)이 들었다. 감리교회가 내부 갈등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다면 울릉도 선교의 랜드 마크(landmark)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가득했다.

 

감리교회는 울릉도를 위해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달리는 차 안에서 울릉도의 절경(絶景)은 보이지 않고 자꾸 건축된 동광교회벗겨진 심볼 마크가 대비되었다. 올해 6월에는 삼남연회 청장년관 주관으로 울릉도 독도 평화통일 기도회를 한다. 아마도 H 감독과 감리사들도 참석할 것이다. 이번에는 독도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주안점을 두지 말고, 울릉도 심방에 방점을 두면 좋겠다. 동산교회와 죽암교회에서 심방 감사예배도 드리고, 조성태 목사와 고병태 목사에게 섬 목회하느라 고생이 많다. 감독으로서 고맙게 생각한다.”라며 따뜻한 말로 격려도 해주고 등도 두드려 주었으면 좋겠다. 두 목사는 가이드도 하고 기사로도 섬길 텐데, 도서비도 주고 격려비도 주면 어떨까? 감리사들도 선교비를 보내는 심정으로 감사헌금을 하면 교인들도 감리교회가 버리지 않았다(?)고 소속감을 느낄 것이다. 울릉도 방문객들은 그전에 빈손으로 왔다가는 경우도 왕왕 있었는데, 이번에는 섬 목회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면 좋겠다. 이철 감독회장도 공기가 텁텁한 감리회관 16층에서 격무(激務)에 시달리지 말고, 감리교회 동서남북 끝에 있는 교회를 십자가 심방으로 방문하면 어떨까? 감리교회의 산적한 현안들을 감독회장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풀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감리교회 동쪽 끝에 있는 죽암교회에 그 전 감독회장이 기념비를 세워준다고 약속했으니, 성직의 연속성을 위해서라도 대신해주면 어떨까? 누군가처럼 알박기를 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몸을 내어주고 우리를 다시 살리신 주님을 기억하며, 또한 교회를 개척하고 다른 교단에 아낌없이 넘겨준 김병두 님을 기념하며, ‘이철 감독회장, 황병원 감독, 고병태 목사이름을 새기면 어떨까? 그리고 세계에 내놔도 손색없는 우리 감리교회 대형교회들이 죽암교회를 수리해 주거나 가능하다면 성전과 게스트하우스를 건축해 주면 어떨까? 동산교회를 위해서는 작은 도서관을 리모델링하고 도서관을 운영할 인력과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어 다음 세대를 키우게 하면 어떨까? 우리는 너무 큰 일부터 시작하려다 보니 주눅이 들어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씩 하다 보면 어느새 큰일도 이루어진다. 바울은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바울이 기특하게 여겼던 빌립보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 건너와서 울릉도를 도우라.’라고 감동을 받았다. 우리 감리교회는 위대한 감리교회이기 때문에 선교 역량을 집중한다면 울릉도에서 점화된 부흥의 불길이 태백산맥을 넘어 한반도를 복음으로 활활 태울 것이다. 감리교회여, 건너와서 울릉도를 도우라.

삼남연회 경북동지방 포항창대교회 여성구 목사
삼남연회 경북동지방 포항창대교회 여성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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