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해 반짝이는 등대가 돼라

  • 입력 2021.07.0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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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58)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처음 무릎 꿇고 눈물 흘렸던 헌신의 자리에 서라

목자의 눈이 어두워지면 양들이 고통당한다. 지도자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면 민중들이 깊은 한숨 속에 거한다. 이 시대의 문제는 시대를 꿰뚫고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는 안목이 없어진 자들이 지도자가 되었음에 있다. 정치, 경제보다 교계 혹은 영계의 지도자에게 이런 통찰력이 사라질 때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이다. 천상의 메시지를 올곧게 전하는 메신저가 되리라 작정하고 이 형극의 길로 들어설 때 초기의 헌신자들은 밝은 눈을 지녔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이 흐려졌다. 세상이 주는 허망한 목표에 현혹되었거나 꿈꾸기를 귀찮아하고 이상 품기를 거부하는 민중들의 등살을 견디지 못해서거나 둘 중의 하나가 그 이유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빛과 어둠의 기나긴 대쟁투 속에서 갈등을 이기지 못해 샛길로 빠지거나 비진리와 거래를 텄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아직도 메신저라 불린다면 더 부끄러워지고 더 괴롭힘 당하기 전에 첫 믿음, 첫 사랑, 바로 그 처음 무릎 꿇고 눈물 흘렸던 헌신의 자리에 서라! 메신저는 꿈을 노래하고 꿈을 해석하며 꿈꾸기를 즐기는 자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 때문에 안달복달하거나 꿈의 실현을 위해 목매달지도 않는다. 그저 거룩한 꿈에 사로잡힌 것이 행복해서 자신의 삶을 불사른다. 꿈을 붙들고 사는 자는 꿈의 실현이라는 강박관념에 늘 사로잡혀 살지만, 꿈에 사로잡혀 사는 자는 꿈의 현실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성취 여부 자체에서 자유롭다. 자신이 꿈을 붙든 것인지, 꿈에 붙들린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며 소위 성공신화에 갇혀 부지런히 일하며 사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꿈의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위해 전력투구한 매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

영적 시력을 회복한 엘리가 되어 시대를 분별하라

불시에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불어넣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정신 차리지 못했는가! 성공이 무엇이며 영화가 무슨 대수이겠는가? 한 순간 미세한 바이러스의 몸놀림에도 생사의 갈림길을 다투어야 하는 미약한 존재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메신저로 세움 받고 쓰임 받음이 놀랍지 아니한가? 사역의 성공이 헌신의 정점이란 엉터리 등식에 빠져 인생의 황금기를 허비하는 못난이들을 바라보면 가슴 한편에 구멍이 뻥 뚫린 기분이다. 동료들의 죽어나가는 장면을 뻔히 바라보면서 줄기차게 빛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에 비할 바 아니겠는가! 본디 당신의 걸음걸이는 그렇지 않았다. 사악한 왕 아합도 하나님 앞에서 거만한 행보를 그치고 걸음을 천천히 했을 때 재앙이 한 세대 뒤로 옮겨지는 은혜를 입었다. 성공지상주의의 환영에 사로잡혀 멈추지 않는 욕망의 전차에 몸을 싣고 달리는 질주 본능에서 벗어남이 온당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움푹 팬 지난 발자국들을 회상해보라! 그래서 원래의 행보대로 움직여라! 세상의 비탈에서 벗어나 하늘 가는 밝은 길로 들어서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상을 품고 기도 중에 거룩한 환상을 지녀라! 잃어버린 꿈을 되찾고 말세에 부어지는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말미암아 꿈과 이상에 사로잡히라!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2:28)

당신도 보아야 한다. 영적 시력을 회복한 엘리가 되어 이 황망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사탄의 흉계와 악령들의 역사를 꿰뚫어야 한다. 지옥의 화염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무저갱에서 울부짖는 영혼들의 비참한 정경을 목도할 수 있어야 한다. 불쌍한 영혼들의 실상을 바로 보아야 한다. 새끼줄에 생선 엮이듯 그렇게 포박되어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영혼들의 핼쑥한 모습을 똑똑히 보아야 한다. 가난한 이웃들의 맑은 영혼과 거짓 선지자들의 값싼 복음의 정체를 파헤칠 수 있어야 한다. 포스트펜데믹의 침울한 지구촌을 스케치하고 삶과 죽음의 시소를 타며 불안한 항해를 지속하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피난처와 항해술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당신이 먼저 진정한 피난처이신 주님 품에 안겨야 하며 파도 타는 서핑 정도가 아니라 홍수 때 좌정하신 주님에게서 지옥의 불길을 헤쳐 나가는 비상의 능력을 익혀야 옳다. 그것이 원래의 엘리 자리로 돌아감이다.

영적 시력을 회복한 엘리가 되어

이 황망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영혼의 시력은 영혼의 거룩함에 정비례한다

오늘 당신이 엘리의 젊음, 그 기상과 영성을 회복치 못한다면 결국 비둔한 엘리가 되어 오래잖아 비참한 종말을 고할 것이다. 당신의 어두워진 시력으로 인해 자식들의 빗나감도 알아채지 못하고 말씀으로 훈계치 못하다가 그들이 파멸되는 모습을 당신의 눈으로 보아야 할지 모른다. 젊은 엘리로 돌아가 옛 영적 시력을 회복하는 일도 중요하고 어린 사무엘이 되어 지금의 영적 통찰력을 키우고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시대의 메신저로 부름 받은 당신도 마땅히 보아야 한다. 당신 영혼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보아야 한다. 멸망의 불에 타버릴 세상의 진풍경을 내다보아야 하고 주님의 나라가 영광 중에 도래함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눈이 어두워짐을 한탄하며 영적 시력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쳐야 한다. 다가오는 심판의 정경을 밝히 보고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내다보고 영광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주님의 성도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눈이 어두우면 사물을 제대로 식별할 수 없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리 없지만 소경 된 안내자들이 우리들 중에 너무 많음은 고통이요 재앙이다. 육신의 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이요 영적인 눈이다. 영안이 밝아야 한다. 거룩한 삶을 지향해야 함은 그것이 천상의 시야를 확보하고 시력 보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시력은 영혼의 거룩함에 정비례한다. 거룩한 사람 엘리는 사역과 삶의 변질로 인해 이전에 지녔던 본래의 거룩함을 잃었고 그것이 영안 감퇴의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반짝이는 등대가 돼라

신령한 눈을 치떠야 한다. 눈을 감으면 멀쩡한 눈이 있음에도 보지 못한다. 깨어 있다 함은 눈을 뜨고 있다는 말이다. 육신을 잠자리에 누일 순간에도 영의 눈은 감기지 않게 하라! 지금은 그리해야 할 때이다. 밤은 이미 깊을 대로 깊었고 새벽 먼동이 틀 시간은 지척에 있다. 베드로를 깨우기 위해 울었던 닭이 이제는 시대의 징조를 알리고자 울어댄다. 당신의 영혼이 깨어 있다면 자다가 깰 때가 이미 되었다. 경성하여 기도하며 순전한 마음과 열정으로 주님의 일을 수행해야 할 때이다. 당신의 마음눈을 밝혀 진리를 깨달으며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헤아려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 하나님이여! 저의 눈을 밝히소서! 탐욕과 무지로 어두워진 마음의 눈을 밝혀주소서! 나의 나 됨을 알 수 있게 제 속을 비춰주소서! 내가 나를 알지 못하고서 어찌 남을 비출 수 있겠나이까? 세상이 아니라 집 밖으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해 저는 어둠에 휩싸일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어찌 이끌겠습니까? 저는 지금껏 소경이었지만 소경이 아닌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 때문에 헛걸음질 쳤습니다. 이제 저의 영혼을 밝은 빛으로 가득 채워주소서! 티끌만 한 그림자라도 깃들지 못하도록 저를 정결케 하옵소서! 말씀이 경비를 서게 하시며 기도의 쇠사슬로 제 의지를 묶어주옵소서! 제가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지 못할 것이면 말씀의 몽둥이와 망치로 사정없이 내리치소서! 그렇게 깨어져서 생명의 싹을 틔우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심겨주신 씨앗으로서 세상에 밝음을 선사하는 열매 맺게 하옵소서!

눈이 어두워진 세상을 바라보며 한탄만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감상에 젖기만 할 뿐 변화의 몸부림을 꺼린다면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아직은 세상이 어둠으로 끝나지 않는다. 빛의 아들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빛 잃은 군상에 휩싸이지 말고 빛을 지닌 자들의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당신의 눈을 밝히면 어두운 세상도 거칠 것이 없다. 주님께서 당신을 세상의 빛으로 삼으신 것은 어두워진 세상을 위한 안전장치이다. 등대 불빛이 없으면 선박들은 야간 항해를 할 수 없다. 세상이 야간 상태라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등대 불빛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등대 불빛이 되어 당신을 인생의 야간 항해에서 도움을 베풀었듯 이제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반짝이는 등대 불빛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당신을 세상의 빛으로 삼으신 것은

어두워진 세상을 위한 안전장치이다.

모세의 불빛을 밝히기 위해 애굽의 430년 학정이라는 어둠이 필요했다면, 주님의 불빛을 밝히기 위해 그토록 긴 세월 인류가 어둠에 짓밟혀야 했다면 이 시대의 어둠은 불빛이 되어야 할 당신의 길을 예비함이 아닌가?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한다. 언제나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빛이 어두움을 이긴다. 어두움이 져서 빛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빛이 이겨서 어두움이 지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어둠이 물러가 빛이 오는 것이 아니라 빛이 와서 어둠이 물러가는 것이다. 비슷한 것 같지만 둘은 완전히 다르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이긴 자가 아닌가?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길을 따라 그리스도인 역시 고난으로 고난을 정복하지 않는가? 절망으로 절망을 박살 내지 않는가? 당신이 겪는 고난과 절망에는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 그 능력의 인자가 알알이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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