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영광과 능력의 빛을 밝히라

  • 입력 2021.07.27 15:01
  • 수정 2021.07.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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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61)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등불을 보호하셨다. 그것은 꺼질 수 없는, 꺼져서는 안 될 거룩한 등불이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등불이 꺼져도 성소의 등불만은 꺼지지 않고 그 심지를 태워야 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또 다시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그렇게 성소의 등불이 켜진 이후로 한 번도 꺼지지 않아야 할 영원한 불빛이었다. 하나님은 성막을 짓고 난 이후에 거룩한 등불이 여호와 앞에 꺼짐 없이 항상 타오르게 할 것을 명령하셨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고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27:20-21)

 

엘리는 자신의 수면을 위해 자기 집의 등불을 껐지만 사무엘이 누운 성소의 등불은 꺼지지 않은 채 그 잔잔한 빛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제사 제도가 정착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어김없던 규례였다. 성소를 밤새껏 밝히는 등불은 이스라엘에 머문 여호와의 임재에 대한 가시적인 상징이었다. 사실 그것은 상징을 넘어선 거룩한 감동 덩어리였다. 사방이 어둠 속에 잠겨 깊이 잠든 그 순간에도 성소에는 잠들지 않는 등불이 제 자신을 태우며 빛을 비추었다. 온 세상이 어둠으로 화해도 하나님의 성막에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밝은 빛을 비추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리 캄캄한 밤중일지라도 성막을 바라볼 때면 사방을 밝혀주던 은은한 불빛에서 자신들의 삶속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천덕꾸러기로

화한 기독교

오늘 이 시대를 밝히는 하나님의 등불이 바로 교회이다. 그리스도인이다.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서 빛이 된 당신(5:8)이 세상을 밝히는 하나님의 등불 빛이다. 당신과 나는 주님이 어둔 세상을 밝히라고 산 위에 세운 등대 같은 존재이다. 온 세상이 어둠에 잠겨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사람들은 교회에서 마지막 구원의 서광을 보아야 한다. 모든 제도와 법령이 바뀌고 사회의 제반 시스템이 급변해도 세상을 지탱시키는 교회의 무게 중심은 항상 제자리를 고수해야 한다. 설령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진다 할지라도 교회만은 흔들림 없어야 한다. 우주의 모든 빛이 사그라져도 하나님의 광채를 반사하는 종 된 메신저들만은 빛의 입자를 지녀야 한다. 당신을 통해 비추려고 빛이신 주님이 임재와 내주의 은혜로 당신 안에 계심을 잊지 말라!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에게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4-16)

 

당신이 빛을 잃어버리거나 어두운 세상 비추기를 스스로 포기한다면 당신이 바로 엘리에 다름 아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빛을 숨기지 않고 지키는 한 당신은 사무엘이다. 사무엘에겐 여호와의 성소 불빛을 지키려는 당찬 의지가 그 어린 숨결 속에 깊이도 스며들어 있었다. 하나님께 구해 얻은 아들답게 사무엘은 어렸어도 하나님의 심중을 누구보다 잘 헤아렸다. 그런 사무엘을 이스라엘의 등불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역사의 필연이었다. 당신은 교회의 영광스런 빛을 세상에 비추는 사무엘이 되어야 한다. 빛은 아무리 숨기려도 숨기거나 감출 수 없다. 빛은 비추기 위해 존재한다. 빛이 임하면 저절로 비추어진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외쳤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60:1-3)

 

당신에게 임한 빛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빛이다. 어둠에 시달리며 어둠의 농간에 괴로움 당하던 당신에게 어느 순간 영광의 빛이 번개처럼 임했다. 그 빛은 잠깐 머물다 스쳐 지나가지 않고 계속 머무르며 당신을 영광스런 존재로 변모시켰다. 주님 안에서 변모된 당신의 영적 신분과 스스로도 놀랄 만한 정체성이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지 않는가! 당신은 완전히 변화되었다. 땅의 거류민이 하늘의 주민이 되었고 사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황태자로 바뀌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제 당신에게 임하여 당신을 은혜 안에서 한없이 고양시키고 세상을 향해 비추는 그 빛은 실제로 어둠을 부서뜨리는 능력의 빛이다. 당신의 빛으로 인해 세상을 온통 새까맣게 뒤덮은 절망의 먹구름이 사라지게 함은 마땅한 일이다.

생각해 보라! 이 절망적 시대에서 하나님이 세상에 남겨놓은 마지막 등불인 교회마저 이 빛을 잃어버린다면 큰일이 아닌가! 우리 모두는 등불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역사적 교회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빛을 포기해서 어두웠던 지난 교회의 역사를 대할 때마다 부끄러움에 고개 숙이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아직도 온전히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한 교회의 실상에 침울해하며 점차로 감소되는 빛의 영향력에 울분을 느끼는 것은 그저 단순한 비관적 감상에 빠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한 때는 인류의 희망이기도 했던 교회가 어느 때부터인지 세상의 짐이 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을 욕보이고 비난하고 저주하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대부분 지나친 표현들이긴 하지만 그 글들을 볼 때마다 소위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빛을 잃어버린 발광체로 허깨비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비쳐졌구나!’ 하는 생각에 참담해진다. 교회의 초기에 보여주었던 감동의 알맹이는 다 빠져나가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오늘의 기독교는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과오와 수치의 순간들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교회는 지친 세상이 최후로 찾아와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포근한 안식의 능력이 사라졌기에 피곤에 지친 사람들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세상이 먼저 변한 것인지 아니면 교회가 먼저 달라진 것인지,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안식처라 자처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빼앗기지 않고

스스로 버린

교회의 영광과 능력

교회의 변질은 역설적이게도 세상을 포용하지 못한 배타성에서 비롯되었다. 세상 속에 교회가 거하지 못함으로 세상이 교회 안에 거하는 세속화에 머물고 말았다. 포용성의 상실이 세상의 외면을 부추긴 원인이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높은 하늘 보좌의 영광을 포기하고 낮고 천한 인간 세상으로 찾아왔는데 그의 제자인 우리들이 더러운 세상을 피하여 교회의 첨탑 안으로 숨은 꼴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지키고자 했던 거룩함은 위선으로 드러났고 더러운 세상과 자신을 구별하기에 바빴던 우리들의 생활 태도로 인해 영혼 얻는 사역에서 많은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 세상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을 벗어나기에 안간 힘을 쓰다 보니 세상을 구원하던 그 위대한 능력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은 세상이 강탈해간 것이 아니다. 교회 스스로 잃어버렸다. 불의에 항거하지 못함으로 공의의 칼도 그 날이 무디어져버리고 긍휼을 적절히 행치 못함으로 사랑의 꽃도 그 향기를 빼앗겼다. 전통과 교리는 어느덧 사람들의 영혼을 질식시키는 밧줄이 되었고 예배는 밀교(密敎)의 한 의식으로 변질되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제 이 땅에는 기독교의 널따란 지붕 밑에서 한가히 낮잠을 즐기는 영혼들이 득세하고 영적 비상을 포기한 사람들을 달래는 무미건조한 설교만이 환영받는다. 시대마다 주머니 속의 송곳 같던 각성의 메신저들은 주님의 아픔을 그대로 전했는데 말이다. 예레미야, 세례요한, 사보나롤라, 조세 얼라인, 무명의 신실한 메신저들에 이르기까지....... 에스겔, 이사야, 호세아 같은 메신저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시켜가며 파격적인 징조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런 메신저를 바라본지 하도 오래 되어 그들의 처절했던 삶과 사역조차 신화와 전설의 한 토막처럼 느껴지니 더 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 영적 자화상이다. 실로 영혼의 더러움과 얼룩을 제하여 거룩하고 순수하게 만들려는 참 말씀은 환영받지 못하는 오늘의 세상이다. 시편 기자는 일찍이 고백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등불인 말씀을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말씀의 빛에 자신들의 행위가 드러날까 해서 빛의 말씀에 가까이 오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진리와 생명의 빛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빛을 찾는 사람이 드물고 빛을 찾아도 한 줄기의 빛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빛이 보이지 않으니까 삶의 아득함은 더해만 간다. 과연 빛은 아예 사라져버린 것일까? 아직도 빛의 도래가 가능하다면 빛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빛다운 빛, 참 빛은 오직 빛들의 근원이신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 이 시대에 있어 여호와의 등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빛은 본래의 빛을 잃어버린 교회 내부에 있다. 보이는 교회가 잃어버린 그 빛을 보이지 않는 교회가 은밀히 간직하고 있다. 건물인 교회 안이 아니라 참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각자의 영혼과 삶 속에 이 빛이 광채를 발하고 있다. 이 남아있는 빛은 이 세상에 남겨진 하나님의 마지막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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