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필교수]최적의 공간_ 우물 밖

  • 입력 2021.11.12 08:26
  • 수정 2021.12.0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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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행 4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 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메시지이다.


깨뜨리는 힘은 우물 안에서 우물 밖으로 뛰어나가는 야성이다. 우물 안도 좋지만 우물 안은 야성이 운동하기에는 너무 따뜻하다. 야성은 야망을 밖으로 밀쳐내는 원초적 힘이다. 야성은 야망의 에너지이다. 우물 밖은 어떤 곳일까요? 야망이 있는 곳이다.

움직이는 것이 야망이다. 멈춰있는 것보다는 움직여야지 우물 밖은 자극을 만나는 곳이다. 자극은 깨어나는 과정이다. 과정1, 과정2, 과정3이 모여 결과의 모양을 만들어 내지요.

하나님이 인정하는 우물 밖은 틀이 깨지는 곳이다. 모세가 애굽왕자에서 목동으로 바뀌는 틀, 재벌 3세 야곱이 고향 산천을 떠나 머슴으로 바뀌는 틀, 사도바울이 지식인 율법학자의 교만의 틀에서 긍휼의 리더인 복음전도자로 바뀌어 지는 틀, 이러한 고정된 틀이 벗겨지는 곳이 우물 밖이다. 우물 밖은 광야라고 하는 곳이다.

우물 밖 광야는 익숙함 보다는 새로움이 많은 곳이다. 교육의 학습장이 바뀐 거다. 우물 안 수업에서 우물 밖 수업으로 알을 깨기 위한 훈련장이지요. 우물 밖은 새로움이 많은 곳이지만, 헛발 디뎌 미끄러지면 벼랑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당신의 영혼을 훔쳐가는 악마들이 있다. 하지만 목적과 소명의식만 뚜렷하다면 야성인에게 우물 밖은 자신의 미숙함과 연약함을 성숙시키는 최적의 공간이다.

 

우물 밖에서 만나는 자극에 대해 좀 더 대화를 나누어 볼까요? 왜냐하면 많은 인재들이 우물 밖 광야에서 목마름의 자극과 유혹의 자극에서 멈춰 버렸거든요.

광야에서 만나는 우물 밖 수업은 진보의 생각이 열려있다. 인간은 진보 사피엔스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성경 말씀 읽고 기도하고 독서하고 산책할 때 성령님과 동행하면 두뇌의 진화가 일어난다. 두뇌혁명이라고 할까요?

두뇌의 진보 없이 우물 밖 개구리가 될 수 없다. 두뇌의 진보는 자극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물 밖은 사색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자극의 사색 없이 어떻게 성장 할 수 있을까

한 송이 꽃도 꽃을 피우기 위해 벌과 나비들의 수없는 공격을 받았을 터고, 도자기는 또 어떻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일반 도자기 그릇은 800c 에서 구워진다. 백 도자기는 1350c 에서 구워진다고 하지요. 얼마나 뜨거웠을까요? 그것을 참고 견디며 흘렸던 눈물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 한계를 넘는 자극이 아니었다면, 백도자기는 출현 할 수 없다.


1인치의 장벽 확장하기


우리가 우물 밖 광야에서 겪는 그 자극을 환난이라고 하지요. 환난은 쎈 자극이 몇 개 모여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힘들게 싸우는 과정을 연단이라고 하지요. 사실 우물 밖은 상상력이 풍부해 지는 곳이다. 영감이 떠오른다. 우물 밖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 되어 질 때는 1인치의 장벽이 확장 된다. 감사의 문장이 기록되어지기도 한다.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물어볼게 있어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는 야성인 일까요, 야만인일까요? 아브라함,야곱,요셉,모세,다윗,에스라,다니엘,베드로,안드레,사도요한,사도바울,길선주,손양원,한상동목사등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우물 안에서 우물 밖으로 나갔어요.

나는 광야에서 외쳤던 자들을 야성인 이라고 부른다. 나는 오랜 시간 27년 정도 될 거에요. 누가복음 15장에 등판하는 부잣집 둘째 아들에 대하여 궁금한게 많았지요. 그를 만날 때마다 호기심은 날로 커져만 갔지요. 가엾은 탕자 그도 우물 안에 있는 자신의 알을 깨뜨리기 위해 우물 밖으로 나간 행위만큼은 야성이 아닐까요?

그래서 나는 야생마 탕자에 대한 관찰기를 쓰기로 결심했지요. 탕자의 필패론에서 탕자의 필승론으로 주제를 이끌어 갈겁니다. 왜냐하면 어느 신학자도, 목회자도 그가 걸었던 그 길을 광야라고 부르지 않는다.


44(四行四不)


이제 우물 밖 경주를 시작 해볼까요? 우물 안 세계에서 우물 밖 세계로 나가려면 필수도구가 있다. 44(四行四不) 4행은 꼭 실천해야할 네 가지를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긴 사명의 길을 달려갈 때 사용하라고 주신 도구다. 4불은 절대 해서는 안 될 가까이 가서도 안 될 악마의 덫이다. 4불에 걸리면 헤어나기 힘들다.

특히 60대 이상에서 4불에 걸리면 회복할 시간이 넉넉치 않다. 탕자가 실패한 것은 4개의 돌부리에 넘어졌기 때문이다. 4개의 장벽에 갇히지 마라.

광야(우물밖)에서 갇히거든 주님 손잡고 빨리 걷어차고 나와야 한다. 그리고 꼭 당신의 가슴과 머리에 새겨두어야 할 명구가 있다. 광야에서 버려야 할 네 가지를 명심하라. 유혹.교만.분노.무식이다. 동시에 우물 밖 광야에서 채워야할 네 가지가 있다. 온유.자족.절제.긍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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